습관, 어떡하지?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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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 나에게 계속 패스를 안 하는 동수가 괘씸하다. ‘동수 새끼 손 좀 봐 줘?’ 운동화를 벗으며 속으로 이러고 있는데 동수가 내 앞을 지나친다. 나는 잽싸게 동수 앞을 가로 막고 내 얼굴을 그 새끼 면박에 들이대고선 시비조로 말한다.
“동수 너, 나한테 무슨 엇감정 있냐?”
“뭐라고?”
“너, 아까 나한테 패스 안 했잖아.”
“나 너 못 봤는데?”
뒷걸음질 하는 동수에게
“못 봐서 패스 안 했어? 너 말투가 왜 이러냐?”
“아, 이 개새끼 죽여 버려?”
“어쩔 건데 새끼야.”
화가 끝까지 오른 동수가 갑자기 우리 부모를 들먹거린다. 부모에 대한 욕은 남자 얘들이 싸울 때 상대를 가장 기분 나쁘게 하는 마지막 칼이다.
“니네 엄마가 니 그렇게 갈켰냐?”
“이 개새끼, 니가 뭔데 우리 엄마 욕하고 지랄이야.”
부모 욕까지 나오면 더 이상 말로 할 게 없다. 나와 동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치고, 박고, 엎어지며 피터지게 싸운다.
며칠 전, 성민이와 창호가 한 방 붙었을 때도
“니네 엄마 병신이잖아.”
“우리 엄마가 왜 병신이냐? 니네 엄마가 병신이지.”
하면서 둘이가 막 엉키려는 순간 내가 끼어들어
“창호 니가 뭔데 성민이 엄마를 욕하냐?”
면서 나는 둘 다 때렸다.
여기 센터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형님뻘이다. 거기다 내 왼쪽 팔목 전체에 구렁이 문신이 새겨 있어 아이들은 속으로 ‘아, 저애 문신도 있고…….절대 그 앞에서 까불면 안 되겠네.’ 하고 겁을 먹는다. 그러면 나도 속으로 ‘아, 너가 나를 세다고 인식했구나. 그래 잘 봤어. 나 좀, 세니까 내 밑에서 넌 기면 돼.’ 한다. 그래서 인지 대부분 아이들은 내가 뭘 시켜도 다 한다. 난 절대 윽박지르거나 협박 투로 안 한다. 항상 부탁조로
“제동아, 미안해. 내 빨래 좀 해 줄래?”
그러면
“아, 네.”
하고 절대 복종이다. 어느 때는 장난으로
“야, 놀자. 놀자. 놀자니까.”
하면서 아이들 머리를 탁탁 치고 다닌다. 그때 만약 나에게 인상을 쓰거나 한 마디 했다 하면
“장난인데 왜 그래? 기분 나빠?”
하면서 그 자식 머리를 또 탁 때린다. 나는 이렇게 습관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버릇이 있다. 안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배운 권투 실력으로 이가 왕창 나갈 정도로도 때리고, 눈가의 뼈를 함몰시킨 적도 있다. 이래저래 난 센터 어른들께 여러 번 걸렸다. 그래서 나쁜 기록이 많이 올라가 있다.
*영화 <친구2> 중에서
나도 그렇고 여기 들어온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나쁜 습관을 반복하다 결국 걸린 것이다. 나는 폭력으로 들어왔고 여기서 사귄 태현이는 절도로 왔는데 새벽 2~3시쯤, 사람들이 거의 없는 틈을 타 동네의 작은 슈퍼, 미용실, 옷가게, 정육점 등을 털었다 한다. 지난 주말에 태현이는 외출을 했다. 나가서 예전 범행 동기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이
“우리 이젠 가게 안 털어.”
하더란다. 그래서 태현이가 잘 생각했다고 했더니 그들은 웃으면서
“이젠 가게는 안 털고, 휴대폰 매장 털어.”
하더란다. 그 말에 태현이가 너무 당황해 하니까 진짜 돈이 필요할 때만 한다고 했단다.
“최대한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친구들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
나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맨 처음엔 누구나 다 걸릴까봐 무서워한다. 그러나 몇 번 하다보면 '잡히면 잡히는 거지'하면서 계속 하게 되고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하게 된다. 그러나 좀 더 큰 충격은 도벽이 심했던 정우 이야기였다. 할머니랑 살았던 정우는 훔치는 게 습관이 되어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것을 가져 온다고 했다. 자기도 하기 싫은데 정신을 차려 보면 자기 손에 뭔가가 있었다.
“특별한 목적이나 계획적으로 훔치는 게 아니야. 나도 하면서도 몰라. 진짜 훔치기 싫은데 내 손에 쥐어져 있어.”
그래서 정우는 무조건 결과만 놓고 혼내는 할머니나 선생님께 속마음을 말하지 못했다.
정우는 늘 불안했고, 그 불안한 마음을 훔치는 걸로 한 것 같다고 했다. 훔치면 불안한데도 그 느낌이 좋았다고. 그러다가 6학년 때는 잠잠 했다. 할머니랑 잘 통하고 얘기도 잘 했던 기간이었다. 중학교에 올라 와서도 정우의 도벽은 잠잠했다. 그러다가 가출을 하여 밖에서 지낼 때였다.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자기 앞에 서 있는 아저씨 뒷주머니에 까만 지갑이 삐죽 나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자기 손이 막 그 주머니 쪽으로 가려고 했다. 너무나 놀란 정우는 ‘왜 왜, 왜 이래, 내가 돌았구나…….’ 하면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두 손이 움직이지 못하게 버스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자기 행동에 스스로 충격을 먹은 정우는 그날부터 일주일 동안 밖엘 못 나가고 있다가 그 일을 친구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정우의 도벽을 다 알고 있는 친구는 정우에게 용기를 주었다.
“원래 한 번 그렇게 충격을 먹어야 도벽을 끊을 수 있어. 잘 된 거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 그 기회가 좋은 거야.”
정우는 그때부터 자기를 의식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내 눈으로 본 진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날은 내가 재판을 받으려고 법원으로 송치되던 날이었다. 수갑을 차고 복도 코너를 돌아 걷는데 저 앞에 수의를 입은 어떤 아저씨가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그분도 나처럼 수갑을 찼기에 두 손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양 옆구리는 경찰관 두 분이 붙들고 걸었다. 나는 복도가 끝날 때까지 그 아저씨의 뒷모습을 정면으로 보고 걸었다. 하늘색 수의는 바짝 마른 몸 때문에 더 더욱 초라해 보였다. 아저씨는 고무신을 질질 끌면서 고개를 흔들며 걸었다. 마치 '될 대로 되라. 난 인생 포기했소'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아저씨의 뒷모습은 나도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법원을 들락거리다보면 결국 저렇게 된다는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충격이었다. 어른들이 가는 교도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나이 들어 거기 온 게 아니라고 했다. 젊을 때부터 끊지 못한 습관 때문에 교도소를 안방처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가 된 것이라 했다.
한 달 후면 나는 여기 센터를 퇴소한다. 요즘 여러 생각이 많다. 이제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나는 이젠 완전 소년원 깜이다. 그래서 퇴소가 좋기도 하지만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다. 그런데 지난 주일날, 신부님의 말씀이 나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미사 때 신부님은 물이 들어 있는 두 개의 와인 잔을 가지고 나오셔서 말씀하셨다.
“맑은 물이 넣어져 있는 이 잔의 물은 ‘나’를 나타냅니다. 처음에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는 이 물처럼 아주 고귀하고 깨끗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몸도 크고 마음도 큽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나이가 되고, 판단할 나이가 됩니다. 태어났을 때의 상태대로 그대로 깨끗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는데 인간은 그렇게 성장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스스로 만든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쁜 행동을 합니다.”
신부님은 다른 와인 잔에 들어 있는 먹물을 ‘나’라는 맑은 물에다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서 말하였다.
“거짓말을 합니다. 욕을 합니다. 남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부모님이 해준 게 뭐냐며 윽박지르고 소리칩니다. 남의 물건이 너무 좋아보여서 슬쩍합니다. 내 자신을 막 대합니다. 자해를 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등등의 나쁜 행동과 생각들을 함으로써 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태어났을 때의 고귀하고 깨끗했던 게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 보세요. 혼탁해졌습니다. 어두워졌습니다.”
신부님 말씀대로 '나‘라는 그 맑은 물은 어느새 혼탁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혼탁해진 나를 어떻게 하면 다시금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철저한 반성과 함께 어두워져 있던 나에게 선한 것들을 주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제는 혼탁해진 물에 맑은 물을 한 방울씩 한 방울씩 계속 떨어뜨렸다.
“거짓말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부모와 내 친구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남의 물건이 좋아보여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니까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좀 더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등의 선한 것들을 내 안에 자꾸 자리 잡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변한 그 물을 보았다.
“자, 보세요. 눈으로 확인 되죠? 이렇게 깨끗해집니다. 다시금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조금은 어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계속 걸어 나아갈 때 우리 자신은 이렇게 깨끗한 사람, 고귀하고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용기 있게 좋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눈으로 확인한, 탁한 물이 깨끗한 물로 변하는 걸 직접 보면서 그날은 정말 용기가 났다.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꿈이 있으면 방황할 수가 없어. 자신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래. 우리가 범죄를 저지를 때도 내가 저걸 어떻게 해서 가져 올 것이다, 라는 목표가 있었잖아?” 친구야! |
비상(飛上)
남민영 수녀님
패배의 시선은 절망을 낳고
긍정의 시선은 희망을 낳는다.
산 아래에서는 한 그루의 나무도 버겁게 느껴지고
산 위에 올라 바라보면
거대한 숲도 품 속에 들어온다.
주님,
이 젊은이들이
독수리 날개 쳐 올라 飛上(비상)하듯
힘차게 꿈을 향해 날아올라
드넓은 세상을 희망으로 훨훨 날게 하소서.
이 젊은이들이 가슴에 희망의 숲을 품고
어제를 용서하고,
오늘을 인내하며,
내일을 희망찬 가슴 벅참으로 기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