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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같은 대통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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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동화 같은 대통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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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무히카는 대통령으로 일하면서도 농사일을 계속했다.(왼쪽) 무히카는 유엔 연설에서 “만약 현재의 세계 인구가 평균적인 미국인들처럼 소비하려 든다면,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이 세 개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오른쪽 위는 1987년식 폴크스바겐을 직접 모는 모습. 가운데는 두 살 때의 호세 무히카. 맨 아래는 게릴라 출신의 아내 루시아와 함께 1980년대 후반 농장에서 찍은사진. AP 연합뉴스, AFP 멀티비츠, 21세기북스 제공


대통령궁 노숙자에 내주고
낡은 차 직접 몰고 출퇴근
도시 게릴라로 하수구 누비며
투옥과 탈옥 거듭한 혁명가
평화와 생태의 지도자로 거듭나다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
송병선·김용호 옮김/21세기북스·1만6000원



에스엔에스(SNS)에서 풍문처럼 떠돌던 ‘가난한 대통령’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지구의 핵을 뚫고 똑바로 전진했을 때 도착한다는 정반대편의 나라 우루과이의 40대 대통령(2010년 3월~2015년 3월 재임)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80). 대통령궁을 노숙자에게 내주고 자신은 원래 살았던 허름한 농가에서 출퇴근한 ‘빈자’의 대통령,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도 화초 재배 일을 계속했던 ‘농부’ 대통령, 1987년식 폴크스바겐(폭스바겐)을 직접 몰고 다니며 월급의 90%를 기부했던 ‘천사’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1970년대 도시 게릴라로서 하수구를 누비며 무장투쟁을 벌이다 여섯발의 총상을 입었으나 병원이 가까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땅굴을 통해 두번의 탈옥에 성공한 탈옥수였으며, 결국 붙잡혀 살인적인 고문을 받고 13년간 독방생활을 한 장기수였다. 1985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의 도움으로 석방된 뒤 1994년 좌파 정치조직 민중참여운동(MPP)을 대표해 하원의원이 됐다. 게릴라 출신으로는 처음이었다. 1999년 상원의원이 됐고, 2005년 좌파연합인 광역전선(Frente Amplio)이 정권을 잡아 우루과이 최초의 좌파 정부가 수립되자 농축수산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대 남미에서 좌파의 집권은 보편적인 현상이므로 새삼 설명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무히카의 이야기다. 소탈하고 파격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행정가로서 일관된 철학과 뚝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히카 정부는 마리화나 경작을 합법화하고 정부가 경작과 유통을 통제하기로 했으며, 위험한 마약중독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해 무히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마약정책에 대한 다른 길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압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중독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확신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근심은 마리화나보다 훨씬 먼 곳에 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약 마피아를 겨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3년 동성결혼법이 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우루과이는 세계에서 열두번째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두번째로 동성간 결혼을 허용한 나라가 됐다. 여성의 권익을 높이기 위한 낙태 허용 법안은 2012년 통과됐다. 무히카는 이렇게 말했다. “매우 간단한 원칙을 적용해봅시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낙태는 이 세상만큼 오래된 것입니다. 동성결혼은 이보다 더 오래된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예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성결혼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인 현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합법화하지 않으면 불필요하게 그들을 고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무히카는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철학을 갖고 있으며 쉬운 말로 대중을 설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유엔에서의 두 차례 연설은 그의 생태주의적 세계관이 빛나는 명연설이었다.
“(…) 결과적으로 전보다 더 많이 일을 하는 셈이지요. 왜일까요? 돈 나갈 데가 그만큼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모터사이클, 자동차 등의 구매에 들어간 수많은 할부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갚고 또 갚고, 이런저런 할부금을 다 갚을 때쯤이면, 이미 저처럼 관절염을 앓는 노인이 되어 있고, 인생은 이미 끝나 있음을 깨닫게 되지요. 이것이 인간의 숙명인가 묻게 됩니다.”(2012년 6월12일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
“우리는 앉은 채로 일만 하면서, 알약으로 불면증을 해소하고, 전자기기로 외로움을 견디는 삶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 정치는 현상 유지 이상의 것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권력을 넘겨준 채, 어리석게도 그저 정권 장악을 위해서만 싸우고 있습니다. (…) 우리가 세계화를 막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지구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2013년 9월24일 제68차 유엔 총회 전원회의)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서는 콜롬비아 무장 게릴라 단체인 무장혁명군(FARC)과 협상하는 일에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고, 2014년 쿠바 관타나모에 수용 중인 포로를 난민으로 받아들였다. 네덜란드 마약평화연구소는 마리화나 합법화 정책을 높이 평가해 2013년 5월 무히카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독일 브레멘대학교 형사법 교수들도 2014년 1월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우루과이는 현재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평균성장률을 웃도는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 3월 퇴임 당시 무히카 대통령 지지율은 당선 때(52%)보다 훨씬 높은 65%였다. 그는 이제 상원의원 신분으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우루과이 작가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가 무히카 하원의원 시절 6개월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쓴 대담집이다. 무히카가 펼치는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마치 남미의 환상문학처럼 느껴진다. 이 아득한 느낌의 출처가 지구 반대편의 머나먼 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동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정반대의 철학과 행동을 보여주는 대통령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한계를 비감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무히카의 유엔 총회 연설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공화국들은 봉건적 향수 때문인지 혹은 소비주의 문화 때문인지 ‘부유하게 살기’를 그들이 나아갈 방향으로 수용했고, 보통사람들의 삶과 꿈, 생활의 요구들을 외면해버렸습니다. 정부는 결국 자기 국민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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