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말 뭘 알까?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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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센터 아이들과 거실에 앉아 9시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 “서울의 한 모텔에서 가출 여중생(15)이 침대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ㅎ양은 지난달 온라인 대화방을 통해 김 아무개(38), 최아무개(28)씨를 만난 뒤 성매매를 해온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나는 그만 현기증이 일었다. 남자 아나운서의 또박또박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유력한 용의자인 김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손바닥을 짚고 버티었다. 뉴스 속의 죽은 ㅎ양, 열다섯 살 가출 여중생.
성매매 소녀는 성과 이름만 달랐을 뿐 바로 나였다. 이마의 식은땀을 아이들이 눈치 못 채게 가만히 닦아냈다. 여기 오기 전 나는 열다섯 살에 가출하여 얼마 동안은 친구 집에서 신세를 졌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갈 수 없다. 집을 나오면 먹고, 입고 특히 날마다 잠 잘 곳이 문제라는 걸 우리는 정말 모른다. 감이 안 온다. 급기야는 잠잘 때가 없어서 성을 팔고 모텔에 가서 잔다. 性. 그게 뭔지도 잘 모르면서 하고, 당하고, 나중에는 性을 이용하여 상대를 협박하여 큰돈을 뜯어내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다 겪었다.
*돈을 벌기 위해 채팅에서 만난 남자와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 영화 <사마리아> 중에서
그런 돈으로 원룸을 얻어 혼자 살 때 즈음엔 난 이미 조건만남에 익숙해져 있었다. 조건만남 남자는 30대에서 40대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내 원룸으로 왔는데 항상 새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성매매는 불법이어서 양쪽 다 잡힌다. 그래서 그들은 생판 모르는 아이한테 가는 것보다 안면이 있는 아이한테 간다. 그래야 걸리지 않고 안전도가 높다. 그런 정보를 알기에 구면인 사람에게는 돈을 더 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들은 더 준다. 그렇게 번 돈으로 월세 40만원을 내고 나머지는 노는데 더 많이 썼다.
집을 나오기 전, 그때는 네이트온으로 자기 아이디를 뿌리는 게 유행이었다. 어느 날 모르는 한 언니가 네이트온에 들어왔다. 쪽지로 내가 먼저 말을 걸고 친구를 신청했다. 그 언니와 나는 채팅으로 점차 친해졌다. 그 언니를 구로구에서 처음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주위를 둘러보다 ‘저 언니구나.’ 하고 탁 잡히는 게 있었다. 언니 이름은 유리. 나보다 한 살 많은 열여섯 살이었다. 그날은 언니랑 햄버거를 먹고 돌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가 가출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그날 학교에 가지 않고 언니랑 밥 먹고 돌아다녔다. 그 언니랑 있으니까 집에 가기가 싫었다. 그날 나는 엄마, 아빠에게 말 안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전까지 난 외박이나 가출이 한 번도 없었다. 다음날 집에 가려고 하니까 무서웠다.
가출하면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이 있는데 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당장 집에 들어가면 엄마, 아빠의 반응이 두려웠고 야단치고 때리지 않을지 그것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집에 못 들어가고 하룻밤 잤더니 이제는 더 무서워서 이틀 밤 자게 되고 아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유리 언니를 만난 그 해 겨울에 나는 이미 비행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 동안 나는 그 언니랑 같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언니의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 내 자신이 참 불쌍했다. 어느 날 언니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누구야, 언니?”
“아, 짜증나? 안 나오실 거냐고 하잖아.”
나는 언니 대신 내가 나가야 될 것 같았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 신세지고 있는 입장이라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게 뭔지 좀 알고는 나갔지만 솔직히 뭘 어떻게 하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성매매 그런 일을 그렇게 선뜻 할 수 있었을까. 그 전에 나는 쉼터에 사는 친구를 보러갔다가 거기서 잠깐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명이 노트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면서 새벽에 몰래 나갔다. 쟤네들은 뭘 하러 저렇게 나가나 했다가 나중에 알았다.
나는 그 남자를 지하철역 출구에서 만났다. 그 전에 미리 서로의 옷은 어떻게 입었고 인상착의는 어떻다는 것을 주고받았다. 그 남자는 나를 보더니 네가 맞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나는 대답했다. 우린 걸었다. 그 남자가 앞에 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갔다. 우린 모텔에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바라보면 나는 그 남자 뒤에 있으니까 잘 안 보였다. 만약 카운터 사람이 나를 봤어도 아마 방을 줬을 것이다. 관계 후 그 자리에서 나에게 현금을 줬다. 돌아온 나를 보고 언니는 왜 나갔냐고 했으나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 뒤로부터 계속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으나 수치심까지는 들지 않았다. 나는 갈수록 당돌해 졌다. ‘까짓것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한 두 시간만 가만히 있으면 돼……. 난 우선 돈이 필요해. 그러니까 하는 거야.’ 했다. 받은 돈은 누구한테 뜯기지 않았다. 개인으로 했으니까. 몸이 아픈 적은 없다. 있어봤자. 질염? 그냥 간단한 그 정도밖에. 이상하거나 때리고 그런 사람들은 다행히 만난 적이 없다. 가끔 짜증만 나고 아무렇지 않았다. 익숙해지니까 진짜 별것도 아니었다. 가끔 혼자 생각하다가 갑자기 우울해 질 때는 술을 먹었다.
조건사기도 했다. 원래 알고 지내던 남자들이랑 갑자기 나쁜 생각이 들어서 한 것이다. 협박과 폭행으로 돈을 뜯어내는 사기였다. 나는 남자를 부르는 역할을 했다. 한 건에 큰돈을 벌어들였다. 그때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백만 원 돈을 하루에 다 쓰면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경찰에 체포되었다. 조건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신고를 한 거다. 그날부터 4일 동안 유치장에 있으면서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재판날짜를 기다렸다. 공범들은 구속되고 나만 풀렸는데 한 달 뒤에 재판을 받았다. 현재 내 팔목에는 칼자국이 꽤 많다. 유치장에서 나온 후 부엌칼로 막 긁었다.
본드를 하게 된 것은 원룸에서 조건만남으로 생활할 때부터 하게 되었다. 내가 원룸을 얻어 혼자 살 때 친한 친구 경미도 가출을 했는데 갈 곳이 없다보니 나와 같이 지냈다. 나와 같이 있을 때 경미는 본드 종류인 토끼코크를 흡입했다. 나도 호기심으로 같이 했다. 그 후 난 머리가 아프다. 본드를 하고 부터 갑자기 생겼다. 어느날 내가 조건만남을 하는 것을 보고 내 친구 경미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친구에게 정말 미안하다. 마치 내가 집을 나와 유리언니에게 신세지고 있으면서 그 언니 따라 내가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경미를 보면서 ‘내 몸이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너도 돈이 없어 하는 거니까.’ 그랬다. 유리 언니도 나를 보면서 똑같이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성관계를 통해 임신이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알면서도 자기는 임신 안 한다고 착각을 한다. 임신이 맨 날 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아니겠지. 아니겠지 한다. 친구 경미는 여러 번 임신을 해서 두 번 유산되고 낙태하고……. 왼쪽 난소에는 낙태를 불법으로 하다가 제대로 안 되어 아이 잔해물이 난소에 끼어 그게 혹이 생겼다. 그 혹이 너무 커져서 왼쪽 난소를 잘랐다. 경미는 이제 난소가 하나 뿐이 없다. 또 성매매 하는 아이들이 성병에 걸려 산부인과에 가지만 난 임신도 안 했고 성병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까?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 그래서 술 먹고 혼자 울고 자해하고 그랬을까?
나는 뭘 훔치고, 누구 때리고 그런 거 진짜 싫어한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안 했다. 그러다 보니 집을 나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이 속이고 땜빵으로 고깃집 서빙도 좀 하고 전단지도 한 번 돌렸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나가 보니 너무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세상이었고 집을 나오기 전까지는 감조차도 안 온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친구에게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
스태인드글라스 (색유리화)
남민영 수녀님
맑고 투명한 유리그릇이 깨졌다.
어느날 작은 금이 가더니
겉잡을 수 없이 틈이 벌어지고
충격에 산산조각이 났다.
흩어진 파편들을 바라보며
절망스러워 울었다.
내 삶 같아서……
어느날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그 조각들을 주워 모으더니
알록달록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하여
유리화를 만드신다.
조각난 나를 사용하시어……
사람들의 마음에 감탄을 일으키는 아름다운 작품을!
주님!
산산히 부서진 이 소녀들을
당신손길로 어루만져주시어
세상에 빛나는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설 수 있게 도와주소서.
깨어진 영혼의 파편들을 다시 모아
사랑으로 채색하고
용서로 이어 붙여
새롭게 태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