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넉넉하게 늙어가기
며칠 전 지방에 사는 후배 집을 다녀왔다. 베이비부머인 그는 조기 은퇴 후 시골집을 고쳐 살고 있다. 그 집은 수리하기에는 너무 낡았고 새로 짓기에는 대지가 좁아 오랫동안 매물로 나와 있었다고 했다. 지붕은 새고 기둥은 기울고 서까래는 거의 다 허물어졌고 대문 없는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으며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담은 무너져 있었다. 여기저기 덧붙여놓은 창고와 외양간 건물로 그야말로 흉한 폐가였다고 한다. 오래된 집을 고쳐서 살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던 후배는 지저분한 것들을 털어내고 아끼고 다듬어주면 원래 제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자주 마을에 들러 집을 들여다보곤 하다가 친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사들여 정성스레 돌보니 그 사랑으로 살아 숨쉬는 집이 다시 태어났다.
*행복을 찾아 가족과 함께 섬으로 떠난 주인공. 영화 〈남쪽으로 튀어〉중에서
집을 짓고 가꾸는 와중에 든든한 친구들도 생겨났다. 텃밭 농사를 함께하는 할머니, 집을 돌볼 줄 아는 목수, 그림 그리는 딸과 함께 사는 바느질 달인, 고향에 돌아온 게스트하우스 주인, 카레 식당의 주방장 일본인 친구 등등이 그와 호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사촌들이다.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한옥 마루에서 그는 이제 고요를 즐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날’이 오리라 믿으며 일상을 하찮게 여겼던 나날, 늘 허기지고 불만스러워하면서 함부로 몸을 굴렸던 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냉장고 가는 길이 마치 뱀들이 득시글거리는 길처럼 느껴졌던 날들, 밥상을 차리지 않게 되면서 떠나버린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일상의 예술화’를 시도했던 19세기 사회주의자 윌리엄 모리스의 책을 읽고 있었고 ‘일상의 성화’라는 단어를 즐겨 썼다. 소박한 밥상 앞에서 숨결을 고르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가을걷이를 끝낸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화두를 풀어가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집은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고 죽는 장소이고, 인간은 역사적 시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 신화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잘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최근 하버드 의과대학 아툴 가완디 교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에서 질병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면서 신체적 생명연장에만 집중해온 현대 의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면서 과학에 몸을 맡겨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하는 어리석음에 몸을 맡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그는 당부한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하는 존재임을 잊지 말자면서 말이다. 그러나 보험회사와 의료산업은 노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 베이비부머 은퇴 설계 콘서트”, “남국의 귀족처럼 즐기는 은퇴 생활”, “2억으로 즐기는 인생 2막”, “은퇴하면 돈줄이 마른다. 그 대책은…. 1억원대 보증금으로 6500만원 고정 임대수익, 특별한정 상품이니 서두르는 편이 유리하다.” “인생 이모작을 위한 은퇴 후 최적 직업 17가지 모델.” 신문과 스마트폰을 가득 메우는 이런 문구들 또한 삶을 향한 욕망이 어느 세대보다 강한 베이비부머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일상의 성화’를 말하면서 성스러운 것을 발견한 삶을 살아가는 후배가 남다르게 자랑스럽고 고마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후배는 100여만원으로 생활하는 연금생활자다. 그는 주변에 자기보다 부자인 사람이 많지만 연금이 주는 안정성을 못 당하는 것 같다며 연금 개혁과 시민수당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논의가 일어나려면 우선 삶과 죽음이 구별되지 않는 전쟁터 같은 시간에서 벗어난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일상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예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유, 고요가 살아있는 시간을 우리 안에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시장의 편에 서버린 국가권력에 요구하기 전에 내 안의 국가, 그 부서진 집을 고치는 일부터 해내야 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국가권력을 길들여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 조한혜정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