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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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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따라 강남갈걸, 후회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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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도 수준이 맞아야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주인공 청소년들 가슴에는 대부분 아픈 가정사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인생의 산전수전을 참 많이 겪었습니다. 이 글은 유혹과 열정, 막무가내 용기로 살았던 자신들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그것을 통해 같은 청소년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하는 또래 멘토들의 이야기입니다. 




내 친구들은 고2. 모두 학교를 다니지만 나만 중간에 관뒀다. 나는 건축업을 하는 아빠랑 어렸을 때부터 단 둘이 살았는데 아빠가 출장을 가거나 멀리 현장으로 나가시면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보통 일반 가정에서는 아침이면 부모들이 빨리 일어나라고 잔소리하여 깨워서 밥 먹여 학교에 보내는데 나에겐 그런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무지 게으른 나는 아침에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었다. 아마 오후에 등교하는 학교가 있었으면 나는 갔었을까? 거기에 또 학교가 적성에 안 맞았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게 싫었다. 나는 아직 뛰어 놀고 싶은 데 규율이 있는 학교가 귀찮았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랑 놀고 즐거웠다. 그러다가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려면 또 싫고 그래서 하루 빠지고 이틀 빠지고…….


공부는 지구력이 부족해서 하다 안 하다 하다 안 하다 했다. 그래도 중1 때 까지는 하는 만큼 했다. 아빠랑은 지금도 친하다. 밖에 있을 때는 3시간 마다 아빠와 통화를 했다.
  “우리 딸, 밥 먹었어?”
이러면서 엄청 사이는 좋은데 아빠는 늘 바빴다. 내 친구들은 참 좋은 얘들이다. 중1 때는 나를 깨우러 날마다 집으로 찾아왔다. 남녀 공학이었는데 아침이면 남자얘, 여자얘들이 번갈아가면서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때까지 자다가  

  “학교 가자. 너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하는 친구들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나 학교에 가긴 갔지만 점심만 먹고 집으로 온 적이 많았다. 어느 때는 도망가다 아이들에게 잡히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귀찮았다. 나는 중2 초반 조금 넘어서부터 학교를 안 다녔다.


친구 부모님들은 두 종류가 있었다. 은비네 엄마, 아빠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알았다. 그분들은 나를 존중해준 분들이다. 학교를 그만 둔 나에게
  “그럴 수 있지. 검정고시 볼 수 있지. 그런데 학교 다니면 좋지 않니?”
그러나 그때 나는 검정고시를 할 생각이었다. 은비 부모님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분들은 자기 딸에게
  “은비야, 너는 유진이처럼 키, 언제 클래?”
하면서 내가 은비를 만나는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는 남의 집에서 자는 게 아니라는 꽤 보수적인 그분들은 나를 딸처럼 타일러 주시고 믿어주었다. 어느 때는 너랑 우리 딸 유비이랑 바꾸자는 장난 말씀도 하셨다.


채원이라는 친구는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와서 친해졌다. 채원 부모님도 엄청 보수적이었는데 채원이가 자기 엄마에게 내 얘기를 한 것이다.
  “엄마, 내 친구 중에 학교 가기 싫어하는 얘가 있는데 엄청 성격은 좋아. 단지 학교가 안 맞아서…….”
그때는 사고도 치지 않고 단지 학교만 안 갔을 뿐인데 그 엄마는 나를 안 좋게 보고 나랑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채원이가 직접 나에게 말해줬다. 학교를 안 다니는 얘는 나쁜 아인가? 이것은 하나의 선입견이다. 염색만 해도 쟤네들 양아치라며 어른들은 쉽게 판단한다. 사실 그런 아이들 보면 성격이 엄청 여리다. 그래도 채원이는 나를 만났다.

학교를 그만 두고 할머니네나 친척집엘 갔을 때 그분들은 말은 안 했으나 뭔가 몸으로 느껴져 갈 때마다 눈칫밥을 먹었다.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더 가기 싫었다. 다른 친척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못 간다고, 스케줄 때문에 못 간다는 핑계를 될 수 있으나 학교를 그만 둔 나는 그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네 집엘 가면 아빠도 안 하는 잔소리를 할머니한테 들어야 했다.
  “너는 학교도 안 다니면서 청소도 안 하냐? 설거지도 해야지? 빨래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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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보낸 즐거운 한 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중에서


친척 남동생 시원이는 아역 배우 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 앨 되게 이뻐했다. 시원이는 할머니에게 이쁜 짓도 많이 했다. 친척 언니들도 평소에도 할머니에게 자주 전화도 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할머니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다는데 나는 생전 안 했다. 더더구나 학교도 안 다니는데 갑자기 내가 안 하던 짓을 하면 할머니는 ‘이 얘가 뭔 일로?’ 하면서 이상하게 날 볼 것 같았다.


나는 학교를 그만 둠과 동시에 친구들, 친척들, 부모들에게 신뢰가 떨어졌다. 남한테 신뢰가 중요한데 말이다. 아빠도 엄청 속상해하고 힘들어 했다. 아빠는 대학을 졸업했다. 친척들은 모이면 걔는 전교 몇 등 이래, 걔는 무슨 학교 갔데. 그런데 우리 아빠는 그런 것도 없고, 내색은 안하지만 으쓱하지 못한 걸 난 안다. 아빠는 내가 1등 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학교라도 다니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그런 심정이었는데 그때는 아빠가 속상해 하든 말든 내가 가기 싫으면 그만이지 했다. 지금은 돌로 맞은 기분이다. 아, 그때 좀 다닐 걸, 그럼 아빠한테도…….


한때는 아빠가 나를 학교에 보내려고 일을 늦게 나간 적도 있었다. 그때 난 학교 갈 준비를 다하고 집을 나가다가 아빠가 일을 나가면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다. 선생님은 아빠에게 유진이 학교에 안 왔다고 전화하고, 아빠는 왜 안 갔냐. 가기 싫어? 내일은 꼭 가거라 하고 좋게 타일렀다. 어느 날은 아침에 학교 가려고 하다가 아, 가기 싫어하면서 변덕을 부리곤 안 갔다. 그런 나를 아빠는 억지로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아무리 말 안 듣고 해도 내 의견을 존중해 줬다.

나는 학교는 안가도 친구들과는 만나서 놀고 싶었다. 그래서 오후 3시 반쯤 되면 교복을 입고 아이들을 만나려 교문 앞으로 갔다. 아이들이랑 어딜 갔을 때 가끔씩 어른들이 

  “너네 어느 중학교 다니지?”
하고 물을 때가 있다. 나는 교복은 입었으나 학교 다닌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안 다닌다고 할 수도 없어서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미용실만 가도
  “어느 학교 다녀?”
  “아, 어느 학교 다녀요.”
하고 떳떳하게 말도 못했다. 


중2 때 끝날 무렵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지금이라도 오면 일수가 모자라도 3학년에 올려 주겠다. 빨리 와라. 오늘이라도 와라. 했을 때 나는
  “선생님 감사한데요. 학교는 가고 싶지 않아요.”
하면서 노는데 눈이 멀어가지고 내 복을 내가 발로 찼다. 그 선생님하고 지금도 연락한다.
  ‘선생님 그때 학교에 갈걸 그랬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간 친구들이 가을에 수학여행을 가서 나에게 사진을 보냈다. 난 그때 그걸 보고서 진짜 나도 똑같은 학생으로, 이 얘들이랑 몇 년 동안 같이 있었는데……. 하면서 혼자 씁쓸해 했다. 친구들은 다 공부하고 그러는데 나는 그때까지도 뒹굴뒹굴 맨날 놀았다. 내 주변에는 점점 노는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방해 될까봐 연락도 하기 어려웠다. 친구들은 그런 게 어딨냐고 했으나 만나면 그들에게 내가 피해주는 것 같았다.




나의 진짜 친구들에게



친구야!
미안하다. 왜냐하면 난 너희들한테 너무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으니까. 너희는 꿈이 확정되었지?
  “나는 꼭 성공할 거야.”
라고 자주 말했잖아? 그런 너희들하고는 달리 난 꿈도 없었어. 그래서 생각하길 ‘아, 나는 친구들 진로에 방해만 주고 있구나.’ 하면서 너네들한테 못해 줘서 항상 미안했어. 그러면 너희들은 
  “아니야. 우리가 되레 미안하다. 조금만 더 너에게 신경 썼으면 재판도 받지 않고 조금만 더 우리가 너에게 학교에 다니자고 했으면 네가 딴 길로 빠지지 않았을텐데……. 미안해.”
이렇게 말해 줬어.


친구들아!
난 대전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에 올라왔고 그때부터 우린 친구였어. 당연 트러블도 많았지만 자주 만나다보니 정이 들고 서로 믿었어. 혹시 모르지? 날 싫어하는 친구가 있을지도.


친구들아!
난 거의 4년 동안 공부를 안 하다가 이번 4월에 고입 검정고시를 봤어. 그리고 8월에 대검 볼 계획이야. 솔직히 6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끝낸다는 것은 대단한거야. 그럼에도 솔직히 기초가 없어. 그걸 나도 인정해. 교과서랑 검겅고시 책이랑은 완전 딴 판이야. 실력차이가 확 나버려. 누가 나에게
  “중학교 어디 나왔어요?”
물으면
  “저, 검정고시 했어요.”
하면 그런 게 있어. 더구나 나는 고검, 대검 모두 검정고시라 그런 게 더해.


친구야!
내가 너희들이랑 학교를 다녔으면 나중에 그땐 그랬지 하는 추억도 있고 그러는 건데 나는 너희랑 공유할 학교에서의 추억이 없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수련회 간 추억이 마지막이라 참 속상하다. 너희들은 졸업 앨범이 있는데 나만 앨범도 없잖아. 너희 중학교 졸업식날 내가 갔었잖아? 그날 솔직히 아, 내가 생각이 짧았나? 학교 다닐 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어. 그래서 난 어떤 아이가 검정고시를 보겠다하면 극구 반대야. 학교는 꼭 가야한다는 쪽이야.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이상한 아이들을 만난다고 말해 줄 거야. 물론 학교 안에도 안 좋은 친구들이 있어.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 더 많고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고등학교를 가면 다른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오니까 시야를 더 넓힐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난 한정된 느낌이 들어. 나이 먹으면 동창회도 있는데 난 동창회 그런 것도 못하고……. 옛날에는 그런 거 생각도 안 했는데 지금은 멀리 보는 것 같아.


친구들아!
학교라는 것은 꼭 공부만이 아니야. 학교는 생활을 공유해. 학교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도 계셔. 난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을 간다 해도 대학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무슨 과가 있다는 것은 대충 알지만 더 깊이는 몰라. 그러나 학교를 다니면 선생님들이 정보도 자세히 알려주시고 같이 공유도 하고 친구들과의 친분도 나누잖아? 난 따로 떨어져 혼자 남아 있는 기분이야. 그래서 내 일을 너희들한테 말하기가 그래. 학교를 다니는 너희와 난 생활도 다르고 시간적으로도 다르니까 내가 전화하면 너희들은 이러잖아? “미안, 나 바쁜데. 공부 때문에 바쁜데…….” 아무래도 너희는 그렇기도 하고, 그래서 솔직히 같이 어울리기가 좀 그래.
난 앞으로 너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해야 될 거야. 문화와 지적 수준이 맞아야 우정도 오래 갈 수 있어. 서로 동떨어지면 누가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못 끼고 어울리지 못해. 난 너희들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야.


친구들아!
난 너희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소년원에 가 있을 지도 몰라. 나에게 딱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줄 때도 난 너희들 말이 되게 따뜻했어. 만약 내가 틀렸는데도 친구들이 그래, 니 말이 맞아 해주었다면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봐. 나에게 학교를 같이 다니자고 말해줘서 고맙고, 사고치고 다닐 때도 그러지 말라고 충고해 줘서 고마워.


사랑하는 친구야!
너희들이 고1 될 때 학교의 중요성을 알고 나도 한 때 복학하려고 했어. 그러니까 중2로 말이야. 그런데 친척 동생이 같은 학교 중3인거야. 그 밑에 내가 다녀야 하는 상황이어서 내 성격에 그만 포기했어.


친구들아!
생각나니? 너희 고1 때 내가 아침마다 단체로 카톡 보내어 너희들 깨워준 거 기억나?
  “빨리, 빨리 일어나라. 안 일어나면 쳐들어간다. 쳐들어간다.”
너희들 늦지 말고 학교 가라고. 나처럼 학교 중단하지 말고 잘 다니라고 말이야. 그러면서 예전에 너희들이 아침마다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깨웠던 그 심정을 알 것 같았어. 나의 진짜 친구들아! 고마워.


* 지난 8월 6일 유진이는 대입검정고시를 보았으나 유진아빠는 그만 암으로 돌아가셨다.    

 




내 맘 같은, 꽃같은 벗들이여!
                                               

                                                   남민영 수녀님



홀로 걸어가는 길이라 여길 때
먼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었다.
오롯이 내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몫이지만
마음으로 함께 걸으며


‘넌 할 수 있어’
‘널 믿어. 조금만 힘을 내’
‘잠시 쉬어 가렴. 그리고 또 일어나 걷는 거야’
.......날 응원하는 우정의 목소리들


혼자 걷는 열 걸음보다
함께 걷는 한 걸음이 더 행복함을 깨닫게 해 준
꽃같은 벗들


주님,
‘우정’이라는 당신의 선물을 기억하게 하소서
주저 앉고 싶지만,
도망 치고 싶지만,
오늘도 저에게 주어진 길을 인내롭게 걸어감은
내 맘 같은,
나를 응원하는,
더운 여름 날 한줄기 바람같은 벗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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