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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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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수록 침묵과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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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태산 같은데 어떻게 쉴 수 있나요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신한열의 테제일기'


2014년 7월과 8월에 중국과 한국을 다녀왔다. 떠날 때는 여름이었는데 돌아오니 벌써 초가을이다. 여름 막마지라 순례자의 수가 줄었지만 떼제의 언덕은 여전히 젊음의 물결로 넘친다.

한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 오후에 공동체 시간이 있었다. 반나절 동안 떼제를 떠나 우리 형제들끼리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여기서 5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 성당에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많은 형제들이 자전거를 타고 갔고 일부는 걸어서, 또 일부는 차를 타고 가서 집결했다. 우리는 노래와 침묵을 곁들여 함께 기도했고 원장 수사가 공동체의 규칙 한 구절을 중심으로 짧은 묵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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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성당에 모이는 떼제 공동체 수사들 ⓒ신한열


“우리가 매일 매일 하느님의 자비심을 살아갈 때 복음의 샘터가 열립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용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으니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도 노력합시다! 복음의 이 요청에 더 주의를 기울입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마을 성당은 천년 가량 되었다. 우리는 성당 안에 남아 있는 벽화를 둘러보고 나와 목초지의 아름드리 참나무 밑에서 준비해 간 차와 과자를 들었다. 삼삼오오 얘기하면서 쉬는 시간이었다. 일부는 풀밭에 앉거나 누웠다. 초가을의 하늘은 높고 파랬고 들판은 고요했다. 우리는 건너편 농가에서 오리 떼가 주인을 따라 길게 줄지어 뒤뚱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함께 웃었다.


3천 명의 손님들이 와서 머물고 있는데 공동체 전체가 오후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봄에도 부활절 바로전 성주간의 화요일 오후, 수사들만의 짧은 피정이 있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수도 공동체이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우리 수사들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한다.

“매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는게 지겹거나 피곤하지 않나요?” “어디서 그런 힘을 얻지요 ?”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일년 내내 언어와 문화가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은 아름답고 보람있지만 때로는 힘겨운 일이기도 하다. 순례자들이 특별히 많은 부활절 방학이 끝난 다음이나 긴 여름의 막바지에는 늘 앓아눕는 형제들이 생긴다.

그래도 우리가 기운을 잃지 않고 대규모의 손님맞이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과 이곳의 모임이 비교적 단순 소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백 명에서 수천, 수만 명이 참가하는 국제 모임이라 해도 모든 면에서 소박하다. 시설이나 도구가 꼭 필요한 것은 있지만 절대로 복잡하거나 도에 넘치는 것은 없다. 고용된 직원이 없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자원봉사자들에게 많은 책임을 맡긴다. 또 이곳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청소나 배식, 설거지 등의 일을 돕는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떼제의 많은 것이 어설프게 보일지도 모른다. 떼제의 기도에서 노래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전문 음악인이 아니다. 성경 묵상을 인도하지만 모두 성경학자인 것도 아니고 일부 형제들은 많은 것을 조직하지만 우리의 본분이 “조직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그냥 ... 수사들이다.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의 생활은 마치 예수께서 5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이 매주 반복되는 것과 같다.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었지만 예수께서는 불평하시거나 걱정하지 않으셨다. 군중의 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것이었지만 감사 기도를 드리며 축복하시고 나누어 주게 하셨다. 빵의 기적은 무엇보다 '나눔의 기적'이었다. 우리 형제들 역시,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적다 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들과 나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적은 것, 소박한 것, 가난을 나눌 때 우리는 더없이 풍성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거듭거듭 체험했다.


단순소박함과 곁들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침묵과 휴식이다. 떼제의 생활은 하루 세 차례의 공동기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나 중요한 대화를 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모든 것을 중단하고 교회로 향한다. 기도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휴식 시간이기도 하다. 떼제의 기도에는 늘 성경 봉독 뒤에 긴 침묵의 시간이 있다. 사건과 상념의 소용돌이가 멈추고 마음이 잔잔해지면 주님과 본질을 바라볼 수 있다.

공동체의 형제들이 모두 모이는 점심 식사 때도 15-20분 가량은 고전 음악을 들으며 침묵 가운데 음식을 먹는다. 그런 다음 음악이 그치면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대개 공방에서 일을 하거나 청년 프로그램 진행 등으로 바쁜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식사 때의 이 침묵은 일을 떠나 쉼을 얻고 자연과 주위 사람을 응시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형제들은 매년 2주 가량 휴가를 떠난다. 손님맞이와 청년 모임을 진행하는 우리는 보통 5-6월 혹은 여름 직후인 9월에 서너 명씩 프랑스와 스페인의 산이나 바닷가로 간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빌려준 소박한 집에서 숙식하면서 많이 걷고 많이 자면서 푹 쉰다. 장시간의 산행이나 자전거 하이킹이 대세다. 나의 경우, 평소에 오래 하지 못하던 운동을 마음껏 하면서 쌓인 피로를 땀으로 다 쏟아내면 더없이 상쾌해진다. 알프스의 고산 준령을 보름동안 걸으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즐기고 나면 또 한 해를 살아갈 에너지가 불끈 솟는 것을 느끼곤 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바쁠수록 마음의 평화와 여유가 필요하다. 사실 나도 예전에는 잘 쉴 줄을 몰랐다. 공동체의 어른들과 형님들은 나더러 일만 하지 말고 틈나는 대로 쉬라고 거듭 권하셨다. 하지만 “내가 쉬려고 수도 생활을 택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쉴 수 있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해 동안 잘 쉴 줄 모르고 일하다가 마침내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나를 동반하는 형님은 “건강을 잃으면 기쁨을 잃게 되고, 기쁨이 없으면 공동체 생활에 의미가 없다”고 간곡히 말해 주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일주일 가운데 하루 오후는 가능하면 다른 약속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밤에 일하는 것도 줄였다. 일이 많고 바쁠 때일수록 더 잘 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쉬면서부터 더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 많은 일을 내가 직접 해야 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다.

중국과 한국을 다녀오면서 이번에도 지친 이들을 많이 보았다. 만나면 화제는 흔히 자신과 주위의 여러 “문제”와 “갈등” “분노”와 “좌절”이다. 옳은 일을 위해 애쓰고 많은 봉사를 하면서도 쉬지 못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이분들에게 침묵과 휴식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분열과 대립과 갈등이 격화된 곳, 대화가 단절된 곳에서 당사자들이 하루나 이틀 푹 쉬고 만나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든다.


프랑스의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살면서 지금도 남을 위해 밥을 굶고 찬 바닥에서 밤을 보내는 분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크다. 그래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그분들에게 쉼을 선사하고 싶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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