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이 넘어야할 영웅, 콜럼버스
세계3대성당의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 세비야대성당 안에 있는 콜럼버스 무덤.
스페인 통일전 4명의 왕이 콜럼버스의 관을 메고 가는 청동상.
세비야대성당
금은보화로 장식된 세비야대성당.
톨레도대성당 거대한 벽면에 그려진 크리스토퍼성인. 전설속의 크리스토퍼 성인이 아기예수를 안고 강을 건너고 있다.
이 성인의 이름을 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가톨릭을 세계의 가톨릭이 되도록 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스페인의 톨레도성당 엄청난 크기의 벽을 가득채운 금 치장들.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톨레도성당의 성구들.
스페인은 꽃보다 빛난다. 자연은 태양으로, 성당은 황금으로 빛난다. 최근 스페인을 갔다. 건축, 조각, 명화만으로 눈부신 성당은 금은 보화로 현란했다. 그러나 그 화려함에 감탄만 할 수 없었다. 예수상 뒤로 지난해 남미에서 봤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채찍을 받으며 금과 은을 캐는 인디언들이었다.
콜럼버스(1451~1506)는 5백여년 전 스페인을 떠나 인디언의 땅으로 솔로몬의 황금과 에덴동산을 찾아 떠났다. 세계 3대 성당의 하나라는 세비야대성당 그의 무덤엔 스페인 통일전 4명의 왕이 그의 관을 둘러맨 청동상이 있다. 스페인을 세계제국화하고, 유럽의 가톨릭을 세계의 가톨릭으로 만든 일등공신에 대한 예우다.
고도 톨레도에 가면 성당 벽면에 1백여개의 수갑이 걸려있다. 무슬림 치하에서 감옥에 갇힌 가톨릭인들이 찼던 수갑들이다. 8세기 동안 무슬림들과 치열하게 싸워온 가톨릭에겐 ‘치욕을 잊지 말자’는 전시물이다. 스페인이 무슬림을 몰아내고 통일시킨 바로 그해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의 지원으로 항해를 떠났다. 당시 스페인은 이교도 2천명을 화형시키는 등 유럽에서도 종교재판이 가장 성행한 광기가 지배했다.
콜럼버스는 69일의 항해 끝에 한섬에 도착해 ‘산 살바도로’(구세주)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그가 가져온 총과 병균으로 원주민들은 구원이 아닌 재앙을 맞았다. 지난 2002년 콜럼버스가 미대륙에 도착한 날인 10월12일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는 대통령령을 발동했던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은 “당시 1억명이던 원주민이 불과 150년 후 3백만명으로 절멸했다”며 “그들은 히틀러보다 더 나쁜 정복자들이었다”고 비판했다. 침략자 곁엔 늘 가톨릭 성직자와 성서가 함께했다. 그러나 양심이 깬 신부들도 있었다. 라스 카사스 신부는 “인디언들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절규했다. 또 예수회 비토리아 신부는 “정복자들은 자연을 파괴한 범죄자로 죄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복자들은 인디언수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아프리카 흑인 1천여만명을 노예로 잡아 채웠다. 콜럼버스의 항해는 유럽엔 대서양을 열어 산업자본주의를 촉발시킨 구원이 됐지만, 미대륙과 아프리카엔 노예제와 식민이란 대재앙이었다.
콜럼버스는 수도사로 여겨질만큼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그가 항해를 떠날 때 귀족 칭호를 받고, 총독이 되고, 귀금속의 10분의1를 소유할 수 있다는 약속을 왕으로부터 받고, 후엔 교황에게 자기 아들이 추기경이 되게 해달라고 청탁하는 등 챙길 것은 다 챙기려는 이였지만 표면적인 명분은 ‘선교’였다.
스페인은 교황권을 수호하고 확장해 ‘가톨릭의 장녀’로 꼽혔지만, 광기의 어둠은 오래 이어졌다. 가톨릭제국의 복원을 꿈꾼 프랑코는 1975년까지 36년간이나 스페인을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 국가로 만들었다. 댄브라운의 소설<다빈치 코드>에서, 필요하면 살인도 서슴치않는 광신도집단으로 묘사된 ‘오프스 데이’가 1928년 한 신부에 의해 스페인에서 프랑코정권 등장 직전에 탄생해 바티칸을 움직여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복음의 기쁨>에 이은 두번째 회칙을 발표했다. 지구가족의 공동체성과 생태적 감수성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았다. 미국 공화당과 에너지재벌등 콜럼버스식 개발과 성장론자들은 이 회칙에 대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 회칙은 첫장에서 “더불어 사는 집(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두 배경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다. 하나는 콜럼버스와 같은 이탈리아인의 후손이자, 정복국가 스페인에서 탄생한 예수회 소속이다. 그러나 불평등과 반인권 속에서 신음하는 남미적 상황을 목도한 남미의 사제 출신이다. 그러니 그 회칙이 국가와 재벌권력자들만 겨냥한 것일까. 회칙엔 콜럼버스식 욕망과 가톨릭 제국주의로 인해 과연 미대륙과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느냐는, 400여년 전 양심적 청년사제들의 물음도 담겨있다고 믿고싶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