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6월26일 동성결혼이 헌법적 기본권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 백악관은 외벽에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조명을 밝히며 환영했다.
페이스북 이용자 2600만여 명도 자신의 프로필에 무지개 색깔을 입혔다. 사진 AP연합
미국연방대법원에서 스윙보트 역할을 해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앤서니 캐네디 대법관.
동성애 타도에 목매달던 한국 보수개신교에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은 믿기지 않는 소식이다. 그러나 배신은 현실이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그 이틀 뒤인 지난달 28일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때 반대시위를 한 개신교 쪽을 찾기는커녕 동성애자들에게 가서 응원했다. 3월 피습을 당했을 때 보수 개신교인들이 부채춤까지 추며 응원을 해준,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었다.
그들에게 미국은 단순히 우방 정도가 아니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는 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전했지만, 130년 전 들어온 개신교 선교는 대부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들에게 선교사는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아주고, 산업과 자본주의에 눈을 뜨게 해 경제부흥을 이루게 한 구세주였다. 특히 미군정 이후 이승만 장로를 비롯해 개신교인들이 늘 이 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한 가장 큰 뒷배경이었다. 기독교의 종주국을 미국이라고 버젓이 말할 정도로 그들에게 미국은 그 자체가 신화다. 미국을 천국으로 여기는 그들에겐 ‘미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이 미국의 이번 결정에 배신감을 토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해방 뒤 70년 동안 신앙보다 더한 열정으로 반공 이데올로기에 몰입한 보수 개신교가 또 하나의 악이라며,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게 ‘동성애자’였다. 구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신의 노여움을 사 유황불로 멸망당한 게 동성애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약자들에 대한 집단강간을 저지르려는 불의에 분노한 것이라는 해석이나 동성애자인 남자친구를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는 로마군 백부장을 예수가 따뜻하게 맞이하는 성경 구절들을 제쳐두고,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일부분만을 부풀리며, 성전을 위한 배수진을 쳤다. 그런데 우군인 줄 알았던 미국이 성전을 무력화시키고 만 것이다.
미국을 포함해 동성결혼을 허용한 21개국은 하나같이 기독교가 주류 종교인 선진국들이다. 그들은 수많은 청소년들이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들으며 자살을 선택하고, 동성 부부들이 가족들에게조차 드러내지도 못하고 신음하며, 배우자가 죽으면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보며 차별과 배타를 버렸다. 대신 인권과 사랑, 평등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도 이런 공감대의 확산으로 1996년 27%에 불과했던 동성결혼 찬성 여론이 60%로 올라선 데 따른 귀결이었다.
지난 28일 서울광장 일대에서 펼쳐진 퀴어문화축제. 사진 이종근 기자
보수 개신교단체의 동성애 반대 시위. 사진 이종근 기자.
미 연방대법원의 5 대 4 판결의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도 ‘사탄’이 아니다. 그는 보수적인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공공기관에서 성직자를 초대하는 기도모임이 타종교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소송으로 제기된 연방대법원 재판에서 지난해 5월 ‘수정헌법 1조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며, 기독교의 손을 들어준 장본인이 바로 그다.
퀴어(Queer)는 ‘기묘한’, ‘색다른’이란 뜻이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병자 목록에서 삭제하기 전까지도 보수 개신교의 주장이 기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죽인 중세의 마녀사냥꾼들도, 히틀러도, 스탈린도 당시엔 기묘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쪽이 기묘한지 분명하다.
얼마 전 외국의 교회를 찾았을 때 천국을 그린 성화 앞에서 현지 가이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천국의 열쇠를 맡은 베드로가 외출할 때 가끔 요셉(성모 마리아의 남편)에게 열쇠를 맡겨두었는데, 그때마다 너그러운 요셉이 천국 문을 활짝 열어 많은 사람들을 받아주자 베드로가 화를 냈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요셉이 천국 문을 박차고 나가며 그랬단다. “여보(성모 마리아) 갑시다. (아이)예수야, 너도 가자.”
가톨릭에서 베드로의 공식적인 후계자인 교황 프란치스코도 차별받는 자들 편에 섰던 예수의 뜻을 새겨 동성애자 포용을 시도 중이다. 그런데도 보수 개신교계가 정죄만을 능사로 삼다가는 미국이 아닌 진짜 구세주로부터도 버림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