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천국행 티켓을 돈으로 사던 시절

$
0
0


인터넷 신문을 보니 300여 년 전에 죽은 한 주교(1605~1680)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잘 보존되었다는 것과 그 관 안에 5~6개월 정도 되는 태아시신도 들었다는 기사가 연일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과연 이 태아는 누구인가? 어찌해서 관속에? 그것도 주교의 관속에? 주교에게 부인이 있었던가? 등등 많은 의문을 던졌다.


필자는 생각한다. 혹 부모가 이 태아를 주교의 발치에라도 놓으면 주교의 빽(?)으로 천국에 다다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이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h1.jpg


그 이유를 풀어보면; 중세 사람들은 사후 영혼의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이들은 연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자 고심했다. 설령 연옥에 갔다 하더라도 그곳은 잠시 속죄의 장소로 여겼을 뿐이다. 이런 사고가 죽은 이의 시신에도 늘 영향을 미쳤다 보니 바로 지상에서 성인처럼 경건하게 살았던 이들의 시신들이 자주 수난을 당했던 거다. 성인의 유해를 갖기 위해 도둑질을 했고 성물 장사 까지도 등장했다. 수도자의 시신이 나중에 성인성녀로 추앙 받기라도 하면 그 가격은 끝없이 치솟았다. 그러니 이 태아의 부모도 이런 사고에 젖어 있었기에 태아를 덜렁 외딴 곳에 묻기보다는 어쨌든 종교적인 삶을 살았던 주교의 시신 옆에 태아를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 그럼 몇 몇 예를 통해서 이들이 어느 정도로 사후세계를 중요시 했는지를 보자.

먼저 유언을 통해 미리 장례 문제를 언급했던 팔츠의 선제후 루프레히트 2세 의 경우다. 1398년 1월6일 그는 고해신부, 궁중경제 담당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구두로 자신의 장례의식을 명했다.

“내 시신은 흰 수건에 감아달라. 하지만 관에는 넣지 말고 그냥 무명으로 된 긴 치마를 입힌 뒤 묻기를 바란다. 평평한 비석을 하나 놓고 그곳에 십자가 하나만 꽂으라. 내가 지녔던 고가의 보석은 내가 33년간 홀아비로 지낼 때 함께 지낸 세 명의 정부에게 선물하라.”

하지만 그의 가장 간절했던 원은 그의 사후 영혼을 위해 평생 기도해줄 수 있는 수도원을 찾는 것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반드시 거금을 수도원 기부해야만 했다.


1427년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오토가 죽으면서 친척과 친구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는 자기 집을 팔아서 그 값의 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고, 나머지는 빈의 스테판 교회에 희사한 뒤 그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왕족이나 귀족들은 대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장엄한 장례를 원했지만 루프레히트 2세나 오토 같은 경우는 그래도 간소한 장례를 원했던 이들이다.


그 다음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다. 당시 교리에 따르면 살아생전 악하게 산 사람이 당도하는 곳은 지옥 아니면 연옥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연옥이나 지옥에 가는 것을 무지 두려워했기에 가더라도 가급적 짧게 머물 수 있는 방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의 영혼을 천국으로 보내기 위한 기도를 올려주어야 했다. 불교의 49재처럼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으로 3일, 7일, 30일, 때로는 1년까지 기도하는 날이 있었다. 귀족이 죽으면 온 교구와 수도원에서 30일간의 기도를 바쳐야 했고, 시민들도 죽은 제후를 위해 의무적으로 기도를 바쳐야 했다. 1482년 튀링겐 방백 빌헬름 3세가 죽자 과부 카타리나는 죽은 빌헬름을 위해 30일간 기도를 올리라고 공표했다.


바이에른 지방의 루트비히 7세(1413〜1443)는 죽고 나서 30일간 기도로는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영혼을 위해 매일 열 차례 미사를 올리게 했다. 매일 20명이 그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노래를 부르고, 그의 무덤 앞에서 16명이 매일 성서를 읽으라고 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중세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지상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면 결국 죄 사함을 받고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자들은 다른 기도처를 특별히 찾았다. 주로 교회와 수도원이었다. 그 덕에 수도원과 교회의 재정은 나날이 풍족해졌다. 1400년경 빈 시민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 서른 번 미사를 청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부자들은 이것으로는 부족했는지 1000번의 조상 미사를 교회에 바쳤고 더 나아가 영원히 기도가 제공되는 장소를 찾았다. 첫 번째 장소는 교회였다. 물론 많은 기부금을 바쳐야 가능했다. 서양에서는 교회의 제대 아래에 지금도 많은 시신이 묻혀 있다. 그 자리가 신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이런 명당(?)을 차지하려고 많은 돈을 교회에 희사했다.


두 번째 평생 기도처는 수도원이었다. 지옥과 연옥에서 시달리는 기간을 줄이려면 수도자들이 기도를 해주어야 한다고 중세 사람들은 믿었다. 귀족과 왕족은 많은 돈을 기부하고 수도원에 그들의 사후 영혼을 맡겼다. 1482년 빌헬름 3세가 죽으면서 한 수도원에 부탁했던 서류가 마그데부르크에 남아 있다. 기도 부탁을 받은 수도원이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망자의 기도와 미사를 어길 경우, 수도원 원장은 28페니히와 그에 따르는 이자를 죽은 빌헬름 3세의 후손들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당시의 28페니히가 아마도 28억쯤 되지 않을까? 사후 영혼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투자였을 것이다.


1517년 당시의 대부호였던 푸거가문에서는 자그마치1000굴덴을 아우구스부르크의 가타리나 수도원에 기부했다. 돈 단위를 잘 모를지라도 일단 0이 3개 붙었으니 큰 액수라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푸거 가에서는 수도원에 가문의 방패를 모셔 달라고 청했다. 가문의 방패를 두고 기도를 바치면 신이 푸거가를 대뜸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1410년 빈에 살았던 사람이 유언을 남겼는데, 그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성지순례를 가 달라고 요구했다. 장소와 회수도 정했다. 로마와 아헨에 각각 한 번, 성모성지에는 다섯 번, 그리고 다른 성지에는 서른 번 가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 빌어 달라고 했다. 죽은 영혼을 위해서 교회에 많은 돈을 희사하고 교회에 성물을 갖다 바치는 물질 공세가 그치지 않자 예수처럼 가난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했던 수도원들이 부자들의 사후 기부금 때문에 부를 쌓는 경우가 속출했다. 물질(기부금)과 정신(기도)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물질과 정신이 실과 바늘처럼 늘 따라 다녔던 것이다.


중세 사람들은 왜 이토록 천국행을 소원한 것일까? 모든 근원은 그리스도교의 천국에 대한 교리에서 비롯된다. 마태복음 19장 23절을 보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런 교리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간인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생전에 지은 죄를 본인이 직접 사죄하고 죽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자신은 죽었지만 남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해 주면 그 죄를 탕감 받고 언젠가는 천국에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상이 천국에 가는지 갈 수 없는지는 지상에 사는 후손들의 몫이었다. 교리에 따라 후손들도 열심히 기도하고 수도원 등에 물질을 많이 갖다 바쳐서 조상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이다. 돈 있는 부자는 평생 부자로 살다가 쓰고도 남은 돈을 기부하여 ‘영원한 미사’를 올리게 하고, 사람을 사서 기도를 시키거나 성지순례를 보내서 조상의 영혼을 연옥에서 빨리 천당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인데, 그 말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h4.jpg


수녀들의 입에서 현시 체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의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1357년에 죽은 아델하이드 랑만Adelheid Langmann은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 수녀였다. 그녀가 한번은 그리스도 현시 체험과 동시에 그녀의 기도 덕분에 연옥에서 구제된 영혼의 수를 발표했다. 한번은 4000명, 다음은 1만 명, 그 다음은 2만 명, 마지막엔 3만 명이 구제되었다고 그녀는 발표하였다.


또 다른 예는 13세기 중반의 멕틸다(Mechtildis, 멕틸디스)라는 수녀의 이야기이다. 역시 그녀도 처음에는 1000명, 그 다음에는 7만명이 그녀의 기도 덕분에 연옥에서 영혼을 건졌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현시 체험 중, 사람을 죽인 중세의 한 학생이 30년간 속죄를 하는 것도 보았다고 얘기했다(혹은 들었다고 얘기했다). 그가 지상에서 30년을 더 살 수 있었는데 죄를 짓는 바람에 30년을 덜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이 그녀에게 3만 번의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고 언급했단다.


이렇게 온통 천국에 대한 갈망이 강했던 당시인들 이었다. 그러기에 이 부모도 5~6개월 된 태아를 천국에 보내기 위해 주교의 관에다 태아 시신을 넣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 해본다. 그리고 이 태아가 주교관에 들어갈 정도면, 틀림없이 영향력 있는 가문 출신이라는 것도 덧붙이고 싶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 해보면 말이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