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고민 해결사가 된 비결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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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내가 뭘 도와줬지?’
같이 살고 있는 센터 아이들이 ‘남을 잘 도와주는 아이’로 나를 추천했을 때 나의 반응이다. 솔직히 좀 어리벙벙했다. 사실 나는 일을 도와줬다니 보다 현재 같이 사는 언니나 동생들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결할까? 물어보면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해주고, 내가 해 줄 수 없는 어떤 것은 스텝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해 봐라, 말해 준 것 뿐이다.
엊그저께 일이다. 서영이가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요즘 민지가 마음이 변해서 기분이 안 좋다고 했다. 둘은 만날 붙어 다니는 껌 딱지다. 조금 있으니까 이번에는 민지가 왔다. 그러니까 양쪽이 다 나한테 와서 얘기 한 거다. 민지 말을 들어보니 이랬다. 요즘 서영이가 이상해서 쪽지 편지를 줬는데 “나랑 같이 다니기 싫으면 안 다녀도 된다.”고 써서 줬단다. 그런데도 서영이가 반응을 안 보여 30분 뒤에 또 편지를 썼다고 했다. 내용은, “우리가 안 맞는 거 같으니까 같이 다니지 말자.” 이런 식으로 썼단다.
그래서 나는 민지에게 일단 그렇게 금방 해결하려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봐라. 같이 다니고 싶지 않으면 다니지 말고, 다니고 싶으면 얘기를 해라.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런 고백을 하기 전에 민지가 나에게 묻는 첫 마디는 “서영이가 너한테 뭐라 하던?”이었다. 이럴 때 나는 상대에게 말을 전달하지 않는다. “으응, 별 얘기 안 했어. 그냥 다른 얘기 하던데.” 하고 넘어간다. 20분 쯤 뒤에 민지가 또 찾아왔다. 서영이한테 두 번이나 편지를 보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어 짜증난다. 그 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같이 다니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자기를 찾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민지에게,
“그럼 네가 서영이 한테 먼저 얘길 해봐. 그럼 오해가 풀리지 않겠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서영이가 날 안 찾아. 너무 짜증이 나.”
“그니까 이야기를 해. 그렇게 편지를 대뜸 쓰면 뭐하냐?”
하면서 직접 얘기를 해 보라고 권했다. 서영과 민지 둘은 그렇게 냉랭하게 한 3~4일 지내더니 결국 같이 얘기를 하고 잘 풀렸다. 친구들이 종종 고민을 털어놓으려 나를 종종 찾아오면 나는 그 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리고 들은 얘기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고 나의 생각을 말해 준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특히 할머니한테 나는 학교에서 뭘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털어놨다. 그때 할머니의 반응은 "아, 그랬냐. 다음부터는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였다. 항상 내 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참 편했다. 아마 내가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할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다정한 친구 사이. 영화 <써니> 중에서
중2때의 일이다. 나랑 정화는 같은 반이었다가 3학년 때 나는 1반이고, 정화는 3반이 되었다. 그 얜 공부를 잘했다. 반이 갈라진 정화와 나는 주말에만 만나서 밥도 먹고 얘기를 나누었다. 수련회가 얼마 남지 않는 어느 주말에 만난 정화는, 수련회 때 장기자랑으로 댄스를 하기로 했는데 춤팀 아이들이랑 의견 충돌이 생겨 현재 사이가 안 좋다는 거였다.
“아이들이랑 싸웠어. 그래서 나만 혼자 다녀, 나머지 얘들은 다 같이 다니고. 지운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니?”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걔네들이랑 직접 말해서 풀어봐. 그것이 안 되면 우선 수련회가 얼마 남지 않았고, 어차피 춤 연습은 같이 해야 되고, 걔네들도 너 자리 다른 아이로 채우기 좀 그러니까, 어려워도 그냥 자연스럽게 지내봐.”
그 다음날 정화가 말했다.
“아, 진짜 자연스럽게 지내는 거 너무 못하겠어.”
“얘들이 너에게 어떻게 하는데?”
“내 말에 대답도 안 해 줘.”
나는 정화에게 그러면 일단 남한테 피해 주면 안 되니까 같이 연습하고, 수련회 갔다 와서 풀어라. 어차피 연습 잘 해서 그날 무대에서 잘 추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풀라고 권했다. 정화는 수련회를 다녀온 후 공연도 잘 하고 아이들이랑 다 같이 밥 먹고 했더니 풀렸다고. 그 다음날에는 정화에게 카톡이 왔다.
“고민 상담해 줘서 고마워.”
내 성격은 활발한 편이며 센터에서 싸우지 않고 원만하게 지낸다. 또 좀 개성이 있다면 머리 스타일이 짧다는 것? 난 유소녀축구 선수로 10살 때부터 축구부 기숙사에서 살았다. 그러니까 5년 반을 축구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이런 개성 때문에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맨 처음 어떤 아이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놔서 들어줬는데 내가 맞는 답을 얘기해 줬더니 다른 얘들한테 가서 내가 고민 을 잘 들어준다고 소문을 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내 상태가 좋을 때 누군가가 고민을 얘기하러 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그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데 자기가 원하는 말을 내가 해 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답을 못해 줄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네가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게 옳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일단 말해줘도 상처받지 말라. 하고 나서 내 생각을 말한다.
고민을 말하려고 왔는데 나도 화가 나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지금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니까 조금 있다 하자고 말한다. 얘기하러 왔는데 싫어. 나 지금 짜증나. 그러니까 들어줄 수 없어. 이러면 그 얘는 더 외로워진다. 그런데도 계속 지금 이야기 하고 싶다고 조르면 난 이렇게 말한다. 너 얘기를 듣다가 중간에 괜히 내가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면 서로 안 좋다. 하면서 우선 스텝한테 가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같은 또래끼리 얘기하고 풀고 싶어 한다.
친구 사이에 좋지 않는 말을 전달해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 전달 때문에 친구끼리 싸워서 재판까지 받고 여기 들어오는 경우가 꽤 많다. 이간질로 서로 싸우게 하는 것, 청소년들 사이에 가장 나쁜 것 같다.
“야야, 쟤가 너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하면서 진실도 아닌 말을 전하여 불화를 일으키고 상처를 준다. 어떤 아이는 참지 못하고
“네가 그런 말 했다며?”
하면서 폭력을 하고 만다.
센터 안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지금은 퇴소해서 없는데 나리라는 아이가 있었다. 걔는 항상 혜주랑 같이 다녔다. 그런데 혜주는 나리가 자기편임을 알고 친군데도 꼬붕처럼 부려먹고선 뒤에 가서는 나리 뒷담을 했는데 우연히 기숙이가 그걸 듣고 선 나리한테 말한 것이다. 나리는 화를 못 갈아 앉히고 터져서 혜주랑 막 싸웠다. 나중에는 나리가 교실 벽을 치고 난리가 났다.
나도 축구 선수 때 그런 일을 겪었다. 팀에서 나처럼 머리 스타일이 짧은 효숙이와 지희랑 더 친했다. 그러다가 내가 부상을 입어 잠시 쉬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지희와 효숙이가 아주 친해지고 그들이 날 가지고 논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희가 나에게 효숙이가 나에 대해 안 좋게 얘기했다는 거다. 나는 효숙이 한테 직접 가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효숙이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랬느냐, 너무 화가 난다고 했더니 효숙이도 화를 냈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왜 네가 화를 내는데? 내가 화를 내야 할 상황이잖아? 이러다가 나중에는 서로가 미안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고 같이 잘 다니자 하고 풀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지희가 나에게 그런 말을 안 전해 주면 좋겠고 좋은 방법은 불만이 있으면 본인한테 직접 가서 하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나에게 전달하지 말고.
친구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어주는 거다. 그리고 고민이 있으면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친구다. 그러나 절친이라 해도 비밀이 없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비밀은 있을 수 있다. 꼭 그걸 숨기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런 걸 바로바로 얘기하라 하지 말고 비밀이라 하면 서로 믿어주고 존중해 줘야 한다.
말 전달 잘 하는 너에게 안녕, 친구야! 친구야! 내가 축구선수로 있을 때의 일이야. 내 포지션은 미드필드였어.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는 역할이야. 축구에서도 그 선수가 신뢰가 안 가면 솔직히 공을 잘 안 줘. 내가 얘기 했던 지희라는 내 친구 기억나니? 축구부는 학년이 다른 선후배가 함께 기숙사 생활도 하고 연습도 같이 해. 어느 날 외출을 허락받고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지희가 전화를 걸어 경은 선배 언니가 빨리 지금 숙소로 오라 한다는 거야. 그래도 난 안 갔어. 그랬더니 둘 다 짜증이 났고 지희는 옛날에 잘못 했던 것들. 학년 끼리 비밀스런 것들을 싹 다 그 언니한테 말했어. 저녁에 숙소에 들어간 나는 선배가 오라는 데 안 왔다고 긴 시간 벌을 섰어.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
아름다운 ‘입’과 ‘귀’를 주소서!
남민영 수녀님
가시 돋친 말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달되면
세상은 가시덤불로 덮이고
가슴을 누르는 돌덩이 같은 고민을
귀 기울여 들어주면
고운 모래가 되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난다.
내 이야기를 단비처럼 흡수해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친구는
사막 같은 마음에 나타난
오아시스 같은 친구!
주님,
저희의 입을 통해서
위로의 말, 공감의 말, 격려와 사랑의 말을 건네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통해서 들리는 누군가의 외로움과 아픔은
기도의 꽃송이로 피어나 하늘로 올리는 아름다운 향기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