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묻지 마세요?
-올바른 역사의식의 함양
일본 수상 아베가 과거를 묻지 말라고 한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른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모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속담이 말하려는 뜻은 인간이 개구리가 아닌 이상 옛 일을 잊어서 되겠느냐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도 옛일을 잊어버리면 개구리나 다름 없다는.
*개구리. 이종근 기자
학술적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을 강조하면서 인간을 ‘이성을 가진 동물’ ‘공작하는 동물’ ‘상징을 사용하는 동물’ ‘종교적 동물’ ‘놀이하는 동물’ 등등이라 말한다. 이것을 라틴말로 표현하여 각각 homo sapiens, homo faber, homo symbolicus, homo religiosus, homo ludens 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문맥에서 보면, ‘인간은 과거를 잊지 않는 동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심오한 종교적 경지에 이르면 인간도 과거나 미래가 없이 오로지 ‘영원한 현재’(eternal now)에만 머무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 생활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했지만 우리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로서의 과거는 그 만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각 주의 자동차 번호판에 간단한 문구를 써넣어서 그 주의 특징을 선전하거나 주지시키는 일을 한다. 밴쿠버가 속한 B.C. 주에는 ‘Beautiful British Columbia’라는 말이, 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 주에서는 ‘Keep It Beautiful’하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몬트리올이 속한 퀘벡 주는 주의 표어인 ‘Je me souviens’이라는 불어 문귀가 들어가 있다. ‘나는 기억한다.’는 말로서, 캐나다의 과거 역사에서 영광과 불운을 기억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자는 뜻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과거 캐나다에서 있었던 불란서 계통의 사람들과 영국 계통의
사람들 사이의 싸움에서 자기네 조상들인 불란서 계통 사람들이 패배한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라 새기기도 한다.
*‘Je me souviens’(나는 기억한다)는 문구를 넣은 퀘벡의 자동차 번호판.
유대인들의 절기는 거의 모두 과거 자기들이 어려웠을 때를 상기하기 위해 마련된 것들이다. 이른바 유월절이라는 것도 자기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를, 장막절이라는 것도 조상들이 사막에서 떠돌아다닐 때를 회상하기 위한 것이다. 수림절, 하누카 모두 비슷한 성격의 것이다.
이슬람교 사람들도 라마단이라고 하여 한달 동안 낮 시간에 금식을 하는데 이것은 자기들의 종교적 지도자 무함마드가 수행할 때의 어려움을 잊지 않고 자기들도 그대로 실천해보겠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도 물론 삼일절, 광복절 등 일제 치하의 어려움을 잊지 않으려는 기념식이 있고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하면서 6.25를 상기하는 노래도 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 동안 이런 기념식을 거행하고, 이런 노래를 불렀지만 사실은 우리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얼마 전까지도 겪었던 보리 고개를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6.25 피란 후 먹을 것이 없어서 송구, 들나물, 술지게미, 비지, 등겨, 심지어 꿀꿀이죽 등을 먹고 자라던 일을 까맣게 잊었다.
누가 그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할까? 우리 스스로도 잊으려 했고 우리 자손들에게도 말하기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일인도 모른다. IMF 한파라든가 현재의 경제적 부조리 같은 것도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 이렇게 과거를 잊은 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이제 이번 기회를 계기로 올챙이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개구리 식 ‘졸부’ 멘탈리티를 벗어 던지고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올바른 역사의식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족 : 그동안 캐나다에 살면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늦었지만 지금 읽고 있다. 여러 문학적 가치와 함께 우리의 쓰라린 과거를 회상하는데 이만한 글이 또 있을까?
*이 글은 '종교너머 아하'(http://www.njn.kr/)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