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당할 때 신실한 사람이 위로를 얻기에 충분한 논거를 대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는 약간의 위로라도 없는 고통은 없다는 것, 즉 순전히 상실이기만한 상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라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미쁘심과 그 분의 특징인 본질적 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나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고후 10:13-14). 하나님은 항상 고통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위안을 제공하십니다. 그래서 성인들이나 이교 지도자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든 자연이든 온통 악과 고통뿐인 악과 고통을 허락하는 법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백 마르크를 갖고 있었는데 사십 마르크를 잃어버리고 육십 마르크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만일 그가 항상 잃어버린 사십 마르크를 생각한다면 그는 고통을 겪을 것이고 괴로움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자신의 상실과 불행에만 관심을 고정시키는 사람이 어떻게 늘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그 상실을 끊임없이 마음 속에 그리며 떠올린다면, 또한 자신의 상실을 말하면서 눈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면, 뿐만 아니라 상실과 그 사람이 마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듯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마침내 상실이 그 사람을 설득시킨다면 어떻게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여전히 갖고 있는 육십 마르크만을 생각한다면, 즉 잃어버린 사십 마르크는 잊고 갖고 있는 육십 마르크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잃어버린 사십 마르크를 잊고 육십 마르크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는 틀림없이 어떤 위로를 찾게 될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과 선한 것은 위안을 줍니다. 하지만 잃어버렸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선하지도 않고 아직 내 소유도 아닌 것은 불행과 불안과 괴로움의 느낌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곤고한 날에는 형통한 날들과 그때의 즐거움을 잊지 말라.(전도 7:14)"이것이 뜻하는 바는, 일이 잘못 되어가는 것 때문에 그대가 고통을 겪는다면 아직은 그렇게 되지 않은 좋은 일들과 행복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잘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육십 마르크를 갖고 있다면 자신을 부유한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감사드릴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대는 왜 위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레이몬드 B.블래크니 엮음, 이민재 옮김, 다산글방) '하나님의 위로의 서'중에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기독교 영성사와 인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3~14세기 사상가요, 신비가요, 사제요, 수도원장이요, 설교가요, 행정가요, 시인이요, 여성주의자였다. 하지만 당시 가톨릭교회는 이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과 불화하였고 마침내 이단의 딱지를 붙이고 만다. 도미니크회 소속이었던 에크하르트의 영성의 깊이와 무게를 당시 기독교회가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콜로뉴 대학의 대주교였던 하인리히 폰 비르네베르크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에게 이단 심사를 맡겼고, 그들은 에크하르트의 오류 목록을 작성했다. 이에 대해 에크하르트는 《변론》에서 이렇게 답했다. “제가 오류를 범할 수는 있으나, 저는 이교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정신과 관계된 것이고, 후자는 의지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론과 함께 에크하르트는 교황청에 항소하지만 1327년 2월 22일 로마로부터 항소 기각 통보를 받는다. 1329년 3월 27일에 내려진 요한 23세의 칙서(In Agro Dominico “주님의 땅에서”)는 그가 죽었다고 적고 있다. 20세기 에크하르트 부흥을 일으킨 매튜 폭스는 수도사나 영성가들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 선 사상가들과 힌두학자들, 시인들과 예술가들을 매혹시킨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 에크하르트의 영적ㆍ지성적ㆍ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수사적 물음이겠다. 그렇다. 인간과 삶의 진실, 그리고 종교의 궁극을 추구하는 맑고 정직한 영혼들에게 에크하르트는 언제나 매혹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헌정된 모든 찬사들을 떠나 그는 그저 ‘진리의 길벗’인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