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이 인정하니, 보이네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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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내 멋대로 살겠으니 찾지 말아요.”
아버지한테 전화로 이렇게 통보하고 석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시기에 나는 학교에 흥미가 없는 건 물론이고 부모님과 완전 소통 불통에 오해까지 겹쳐 밖으로 돌며 애들이랑 어울려 다녔다.
그런 차에 한 선배가 나를 찍었다.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고 지각, 결석을 밥 먹듯 하면서 후배들에게 힘을 쓰는 선배는 어떤 학교에든 꼭 있다. 그들이 후배들을 섭외하는 이유는 남들에게 난 이렇게 넓은 인맥으로 내 밑에 후배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서다. 또 그들은 새로운 애를 키워서 나처럼 만들고 싶어 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새로운 재미다. 그래서 평소에 자기가 데리고 다니기 수월하고 잘 놀러 다닐 것 같은 아이를 눈여겨 두었다가 직접 접근을 시도한다. 아니면 자기 패 후배들에게 요새 친한 애 있냐고 묻어본다. 난 후배가 선배한테 소개된 케이스였다.
그 첫발을 들이면 안 되었는데 돌아보면 그때 난 그런 선배들이랑 은근히 어울리길 바랐으니 내가 미끼를 주고 여지를 준 셈이다. 철없던 나는 선배한테 선택되었다는 뿌듯함에 신이 났다. 그들은 전국구라 그 선배를 통해 다른 지역 선배들도 알게 되었다.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전학을 가도 빠져 나오기 힘들다. 그들은 새로 후배가 들어오면 처음에는 좀 잘해 주다가 점점 부려 먹기 시작한다. 또 선배 말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선배가 한 후배를 왕따 시키면 나머지 후배들은 선배가 두려워서 방관만 하고 있어야 했다. 그들과 만나면 pc방이나 노래방, 당구장을 가거나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진짜 별로 한 게 없으면서 내 행동은 CCTV처럼 모든 것이 노출되어 개인 생활은 없었다. 어디서든 선배가 전화로
“어, 여기 시낸데 놀러 올래?”
하면 100% 오라는 뜻이다. 그러면
“아 예, 알겠습니다.”
하고 가야 한다. 거절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선배가 알려준 대로 그 노래방으로 찾아 간다. 들어가면 먼저 일단 깍듯이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러고선 함께 놀지만 후배들은 노는 게 아니라 선배들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놀고 싶을 때까지 웬만한 사정 아니면 후배들을 집에 보내주지 않는다. 만약 가겠다고 말해도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그러다보니 담배와 술을 배우고 점점 집에도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폭력조직에서 나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주인공. 영화 <파파로티> 중에서
한 번은 선배를 피하려다 들킨 적이 있었다. 그날은 다른 또래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서 집안에 일이 생겨 못가겠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선배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 아니라 후배들 모두 단체로 욕을 먹고 얻어맞았다. 그 안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장소도 상관없이 선배는 후배들을 집단으로 때리고 욕을 했다.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큰일 난다.”
“네. 알겠습니다.”
집을 나온 석 달 동안 나는 그들과 더욱 뭉쳐 다니면서 오직 흥미와 쾌락과 재미만 을 추구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고 지금은 재미있게 놀러 다니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뭘까 생각해보니 나중에는 결국 후회와 상처 밖에 없고……. 정작 하나도 좋은 의미가 없었다. 사실 나 같은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재미있긴 한데 그냥 좀 그러네? 이런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밀어내면서 현실을 도피하며 다닌다.
나는 어느 때부터 절도, 무면허운전 등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였고 보호관찰 대상자가 되었는데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까짓 거 난 필요 없어. 내가 무슨 큰 죄를 졌냐?”
하면서 보호관찰등록을 하지 않고 계속 피하고 또 피하고 다니다 결국 구인장이 날아오고 나는 법원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재판 받기 전까지는 너무나 초조했다. 법원이라는 그 자체가 긴장을 안 하려 해도 긴장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소년원에 갈 거라고도 하고 거기 갈 정도는 아니라고도 했다. 나는 5, 6호를 받았다. 믿을지 모르겠으나 속이 정말 후련했다. 내 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끝없이 질주하려던 나의 비행이 여기서 멈춘다는 안도감이었다. 재판이 끝나고 분류심사원으로 갔다. 나의 터닝 포인트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분류심사원이 나는 처음이었으나 그곳이 익숙한 애들이 꽤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여기 며칠 있다가 나가겠지 하였다. 그러던 차에 아이들이 각자 자기가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를 말하는데 그 죄들이 엄청 났다. 폭행, 강간, 강력범죄에다 살인미수로 들어온 아이도 있었다. 너무 놀라웠다. 나는 내 잘못을 말하는 게 너무 부끄러운데 저렇게 큰 죄를 별게 아닌 것처럼, 자랑스럽게까지 얘기 하다니! 완전히 죄의식이 없었다. 충격이었다. 사람이 한두 번 죄를 지을 때는 죄의식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저렇게 되는구나. 계속 죄를 짓다보면 못 느끼는구나. 나도 언제 저렇게 될 줄 모른다. 머리가 온통 얼음덩어리 같았다.
만약 내가 여기서 깨닫지 못하고 살다보면 다시 죄를 짓고 나도 똑같이 될 것 같았다. 그게 너무나 두려웠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았고 좀 부끄럽긴 하나 아 뭐, 나는 이렇게 들어왔어 라고 말하려 했던 게 너무 창피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러고 살았을까? 조용히 부모님한테 답답한 거 말했으면 모든 게 잘 흘러갔을 텐데. 내가 마음을 닫음으로서 모든 게 다 잘못되었구나. 뒤늦게 후회가 밀려 왔다.
나는 어떤 처분을 받더라도 불평하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오히려 반성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며 마음 준비를 하였다. 분류심사원에서 한 달 반 정도 살고 있을 때 센터에서 날 데리려 왔다. 나는 센터에 들어올 걸 짐작했다. 이번에도 집으로 돌아가 보호관찰만 받는 건 내 죗값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데리러 온 센터 선생님을 만나자 마자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인사했더니 너처럼 해맑게 인사하는 아이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날 인호라는 아이가 선생님하고 같이 왔다. 차 안에서 인호랑 이런저런 얘길 나누었는데 모범적인 아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인호처럼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나도 센터에 가면 아이들을 이끌만한 정말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했는데 지금 내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가. 나는 내가 너무 뿌듯하다.
센터 아이들 중에는 자기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꽤 된다. 어제 같은 경우에도 이탈미수 사건이 있었다. 네 명이 화장실에 숨어 있다 발각되었다. 그날 밤 ‘또래 법정’이 열렸다. ‘또래 길잡이’라고도 하는데 그들 네 명과 선생님 한 분,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도움말을 줄 수 있는 아이들 네 명이 참석했다. 이탈을 계획한 아이들 얘길 들어보니 하나같이 사는 게 힘들고 이곳 단체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자기 처지가 너무 힘들어서 그랬단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 이상한 것이다. 밖에는 더 힘든 사람이 굉장히 많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벌을 받으러 여기 온 건데 힘들다고 이탈할 생각을 하다니…….
네 명 중에는 센터에 들어온 지 3개월째 된 녀석도 있었다.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3개월이면 벌써 절반을 살았는데 나가고 싶다고 나가는 그 자체가 화가 나서 냉정하게 말해줬다.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또 여기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은 뭘 잘못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자기 위안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때문에 그랬다…때문에 들어왔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안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참 신기하다. 그들의 핑계는 아직도 현실을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다가 차차 변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는 애도 있다. 변하는 아이는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예요. 제 잘못이었어요 한다. 어떤 아이들은 여기보다 분류심사원이 더 좋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그 아이는 아직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유의 중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인정하기 두려운 너에게 친구야! 안녕? 친구야! 또 ‘열매’로서는 처음으로 세탁방 담당을 맡았어. 난 책임을 맡은 만큼 잘 해야 되겠다 싶어 열심히 했어. TV만 보고 가만히 있기가 싫어 이모들을 도왔던 건데그게 나한테 다 이득이 되었던 거야. 이런 일도 있었어. 여기 온지 두 달쯤 되었을 때야. 새로 입소한 아이 두 명이 이탈계획을 짰다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
이탈을 모의하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자연스럽게 처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어. 계획대로라면 그날 저녁은 모두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려 했으나, 계획을 변경하여 새로 입소한 아이들만 컴퓨터를 하게 해서 이탈을 막았어. 그 아이들은 그때 실패하고 다시는 안 했어. 친구야! 친구야! 그날 굉장히 좀 그랬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일이 크게 된다는 것. 이것도 나에게 교훈을 주었어.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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