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공동체 영국의 다벨 브루더호프 방문기
“너희는 왕자나 공주가 아니라, 서로 돕고 사랑하기 위해 왔단다”
부르더호프 공동체 사람들. 300여명이 한마을을 이뤄 공동생활하는 공동체다.
두번째는 한국인인 원마루와 미국인 에일린 부부.
세번째는 그들의 세아들과 함께. 맨아래는 역시 한국인 공동체원인 오정환씨와 함께
어린이용 목재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 공동체 할아버지.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특히 천국이다. 그런데 욕망하는 것을 다 채워주는, 터무니없는 천국을 기대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지옥일지도 모른다.
지난달 15일 다벨 브루더호프(bruderhof.com)로 향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 대학교 1, 3학년 두 조카딸과 함께였다. 굳이 가족과 함께하는 휴가여행 때 브루더호프에 간 것은 아이들이 깊게 물든 습관의 물길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과 만나 보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런던에서 기차로 한시간 반을 달리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핸드폰이란 습관의 깊은 골로 침잠하곤 했다.
시골역 로버츠브리지 옆에 있는 ‘다벨 브루더호프’는 초기 기독교의 형제애와 비폭력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기독교공동체다. 다벨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이다. 공동체 목사 중 한명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지어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 펴냄)에서 소개된 모습 그대로다. 그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욕심이 투영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다”라며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성공에 집착하는 교육으로 공부와 음악, 미술 등의 학원에 놀이시간을 빼앗긴 한국의 아이들과 딴판이다.
이 공동체엔 유아원과 학교까지 갖추고 있다. 마을 어른들은 모든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준다. 유아원과 학교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배치돼 교실에서 꾸중을 듣고 나온 아이를 안아주고 과자도 주며 달래준다.
평화로운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전경. 브루더호프는 농장과 목장, 유아원, 학교,
병원, 공장, 교회 등을 갖추고 300여명이 살아가는 자족 공동체다. 전세계에 40여개의 공동체가 있다.
마당 한쪽에선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 기단에서 마당으로 풀쩍 뛰어내린다. 날갯짓을 처음 하는 병아리처럼 어설프기 그지없다. 어떤 아이는 넘어지고 만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던 보모는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다. 기다렸다가 스스로 일어서자 격려해준다. ‘실패를 받아들일 기회를 빼앗지 말라’는 공동체의 격언대로다. ‘과보호는 사랑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해치기에 역경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두라’는 것이다.
브루더호프에선 드넓은 농장에서 대부분의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고, 소와 양, 돼지, 말 등 가축도 기른다. 공동체원들은 집도 옷도 가구도 식기도 개인 소유가 없다. 아침만 가족끼리 간단히 먹고 저녁은 공동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먹는다. 이 공동체는 목재로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나 장애인 보조기구를 조립해 완성하는 공장인 ‘커뮤니티 플레이싱스’의 판매 수입으로 살아간다. 공장 일뿐 아니라 농장, 주방, 빨래 등 모든 일은 이 공동체에서 기도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원 어른이라면 누구나가 참여하는 일과다. 설교보다는 참여, 입보다는 실천이 우선인 공동체다.
일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은 공장에선 일하지 않지만, 설거지와 정원 가꾸기엔 참여한다. 엄마만 또는 부모만 죽도록 일하고, 아이들은 왕자와 공주처럼 군림하는 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두세살 아기가 휴지통을 비우고, 대여섯살 아이가 변기에 손을 넣어 청소를 한다.
아기 때문에 어른들과 형 누나 언니를 따라 함께 일해, 일을 자연스러운 일상사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브루더호프 아이들.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 인간이 아닌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공동체적 인간으로
길러지기 위해, 함께 하는 일은 가장 좋은 훈련이 된다.
이 공동체는 방문자들에게도 숙식비를 받기보다는 모든 일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초보자들에겐 아주 쉬운 일이 맡겨진다. 이날 오후 4시쯤 우리 일행을 맞은 마틴과 헬렌 부부는 대학생 조카들에게 “공장에서 한두 시간 정도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조카들은 고개를 저었다. 속으로 ‘맙소사’다. 그러나 한국의 보통 아이들처럼 공주님 대우를 받고 자란 아이들에게 일이란, 더군다나 여행지에서 노동이 가당치 않게 생각되는 게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내게도 노동은 너무도 싫은 일이었다. 이번 여행길에서 한 동포가 “한국 유학생들은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도무지 뭘 배웠
는지 일상사에서 필요한 요리와 청소, 정리를 거의 할 줄 모른다”고 말했는데 이에 반박하기 어려울 만큼 공부밖에 한 게 없는 게 한국 청년들의 현실이다.
마틴·헬렌 부부는 조카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침 식사 뒤 헬렌이 다시 조카들에게 “주방과 빨래방에서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곳 분위기를 조금은 감지한 조카들은 이번엔 ‘하겠다’고 나섰다.
다벨 부르더호프에서 함께 일해본 조카들.
브루더호프에서 나온 날 런던에서 해방감을 만끽(?)하는 딸과 조카들
브루더호프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어떤 경우에도 체벌하지 않고 사랑으로 훈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변덕을 받아주지도 않는다. 이날 아침 한 부부가 내 숙소 밖 야외 탁자에서 어린 세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한 아이가 울며 밥을 먹지 않고 떼를 쓰는데도 부모는 달래거나 억지로 먹이려 하지 않았다. 젖먹이가 울 때 고무젖꼭지를 물려주거나 눈길을 돌릴 장난감을 서둘러 찾지도 않는다. 부모가 하는 거라곤 그칠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뿐이다.
브루더호프에선 버릇없는 아이들 뒤엔 버릇없는 부모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들의 변덕을 들어주며 순간의 만족이 행복을 안겨준다고 자위함으로 인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들고 만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이 토라지거나 화를 낸다고 해서 타협하지 않고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된다’고 말한다. 식탁에서 10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의 태도는 어른 못지않다. 이런 태도는 몇년 전부터 아프리카 등에서 굶주리는 이들을 돕기 위해 하루 세 끼 식사를 두 끼로 줄인 이 공동체 어른들의 삶에서 기인한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겐 세 끼 식사를 제공하지만 자신들은 두 끼만 먹는 어른들의 솔선수범은 아이들에게 배려심과 감사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갖게 한다.
공장에 간 나는 세 시간 동안 간단한 조립을 했다. 브루더호프에선 어떤 일도 더 고귀하거나 하찮지 않다. 이 공동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학교 교사들도 틈날 때마다 공장에서 일한다. 특히 이곳은 일이란 지겨운 것이란 고정관념을 깬다. 공장에선 아흔이 가까운 노인들까지 콧노래를 부르며 일한다. 아니 즐긴다. 특히 우리로 따지면 고교 3년생인, 마틴의 딸이 아름다운 외모를 화장이나 옷으로 가꾸는 대신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다.
언니들이 일하러 간 사이 초등학생 딸은 학교에 갔다. 처음엔 긴장감이 역력했던 딸은 한나절이 지난 뒤 마치 브루더호프에서 사는 아이처럼 다른 아이들과 대화하며 화색을 띤 채 돌아와서는 “채소밭에 물을 많이 줬는데도 아이들이 짜증내지 않고 웃으면서 하더라”고 했다. 일을 거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다.
조카들은 부엌에서 공동식사 재료를 손질하거나 빨래를 갰다. 세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힘들었다”면서도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찬송가를 불러가며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다벨에서 살다가 최근 비치그로브 브루더호프로 옮겨간 원마루(43)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이와 새벽마다 마구간에 가서 조랑말의 오물을 치워주고, 토요일 오후엔 그 조랑말에 어린아이들을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돌게 해주는 일을 한다. 아이는 그 일에 재미를 붙여서 정확히 새벽 5시5분이면 마구간에 가자고 아빠를 깨우러 온다고 한다. 브루더호프는 아이들이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라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따라서 원씨는 사랑으로 공동체성을 길러주는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을 전한다.
“너희는 왕자나 공주로 온 게 이니라, 사람들을 돕고 섬기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 왔단다.”
다벨 브루더호프(영국)/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