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팍하게 굴지말고 네 진심을 보여줘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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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는 결국 갔다. 퇴소를 한 게 아니라 다른 기관으로 보호처분 변경이 되어 보내진 거다. 난 여기서 미지를 유일하게 믿고 가족보다 더 의지하고 지냈다. 그래서 지금 맨붕 상태다. 미지가 일으킨 마지막 사건은 강화도 수련회에서 터졌다. 그곳은 1박 2일 동안 부모님과 함께하기 위해 갔는데 프로그램 시작도 하기 전에 일어났다. 나와 미지는 그곳에 있는 흔들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있는데 소라 언니가 다리 끝에서 막 건너려던 참이었다. 미지는 그것도 모르고 다리 중간에서 뜀뛰기를 했다.
“아, 씨발.”
소라 언니였다, 그 소리에 미지는 뒤를 돌아보고 선
“네? 몰랐어요. 언니.”
이렇게 처음엔 좋게 대응했는데 언니가 아, 씨발년아.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계속 미지에게 욕을 해댔다. 이런 상황일 때 난 세 번은 참는다. 미안하다. 또 미안하다. 또 미안하다 했는데도 계속 그러면 이젠 못 참는다 하고, 그때는 언니고 엄마고 그 어떤 어른이고 상관없이 행동해 버린다. 그날 미지도 그랬다. 처음에는 몰랐어요. 몰랐잖아요. 하고 좋게 나갔는데 소라 언니가
“어린년이 좀만한 년이…….”
하는 말에 거기서 끝을 본 거다. 평소에도 작은 키와 나이 어린 게 콤플렉스인지라 미지는 눈에 보이는 게 없이 소라 언니에게 개욕을 하며 맞짱 뜨려 덤볐다. 순간 나는 기습적으로 달려가 미지의 몸을 통째로 부둥켜안았더니 미지는 두 손으로 내 머리채를 잡아 뜯었다. 이때 한 수녀님이 달려와 우리 둘은 떼어 놓으려 끼어들었다. 미지는 수녀님까지 발로 깠다. 팀장 수녀님도 저쪽에서
“미지야, 미지야.”
하면서 달려와 진정하라 했더니
“날 보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야 씨발년아.”
미지는 수녀님한테까지 공개적으로 욕을 했다. 주변에는 아이들과 그리고 그날 어렵게 어렵게 시간을 내어 참석한 부모님들이 그 광경을 괴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영화 <장화, 홍련> 중에서
미지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다. 집에서 내가 엄마한테 한 행동이 꼭 그랬으니까. 집에서만이 아니라 센터에서 엄마랑 터졌는데 그날 이후로 면회를 오지 않는다. 고검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 나는 세 군데 고등학교를 알아보면서 나름 고민하고 있던 중 면회를 온 엄마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계속 자기 생각만 말하는 거였다. 마치 엄마가 정해준 규칙대로 살라는 것 같았다. 그 말끝에
“나도 계획 짤 줄 알고, 머리가 있는데 왜 내가 엄마 계획대로 살아야 해요?”
그랬더니 엄마는 발끝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그럼 옛날처럼 너 마음대로 하고 살아. 나 여태까지 너를 달래도 봤고, 화도 내 봤고, 때리기도 했는데 너는 어떻게도 안 됐어. 알아?”
나는 나를 잘 안다. 이러면 본능적으로 더 세게 나간다는 것을. 나는 벌떡 일어서서 맞은편 엄마 얼굴에 내 몸을 가까이 들이대고 말했다.
“엄마, 나 알지? 엄마가 세게 나오면 내가 약해진 적 있어? 있었냐구?”
엄마는 계속 말을 돌리고, 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싸가지 없는 년.”
하면서 면회실을 나갔다. 나도 여기서 딱 터졌다.
“내가 뭐 때문에 싸가지 없는 년이란 욕을 먹어야 해? 싸가지 없는 년이 누군데? 꺼져. 다 꺼져버려.”
면회 온 다른 가족들이 모두 우리 쪽을 쳐다봤다.
언젠가 외박을 하고 집에 들어온 날이 생각난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시간은 아침 7시쯤 되었다. 나는 너무 졸려서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와 욕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듣고 있다가 나중에는 서로 말로 싸우다가 엄마한테 뺨을 맞았다.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고 그 다음 일은 쓰고 싶지 않다. 어느 수녀님께만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너의 그런 행동은 이유 여하 없이 ‘패륜아’에 가깝다고 했다.
얼마 전 퇴소한 경아는 나랑 가정환경이 비슷했다. 엄마, 아빠가 돈을 엄청 벌었다. 부모는 외동딸인 경아를 미국으로 유학시키려고 했단다. 경아 부모는 면회주일 때마다 햄버거와 피자에 아주 크게 쐈다. 그러면 경아는 아이들 사이에서 기고만장했고, 그런 것으로 아이들한테 힘을 썼다. 우리 집도 경아네 못지않게 잘 산다. 아빠는 회사에서 고위직에 있으며, 엄마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패션에 이번에도 이백만원 정도 투자했단다. 나한테 그 정도의 관심은 안 해 준 것도 없으나 강아지처럼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고집부리면 귀찮으니까 해줬다. 그래서인지 난 돈에 대해 개념이 없다. 돈 만이 아니라 행동도 기분에 따라 싫으면 안 하고, 하고 싶은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을 저지른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여기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미지처럼 폭력을 쓰지 않아서다. 대신 개기는 걸로 선생님, 수녀님들 진을 뺀다. 정규수업에 들어가기 싫으면
“감정이 내려가서 못 들어가겠는데요?”
하고 처음부터 안 들어간다. 중간에 들어갈 경우에는 선생님께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도 안 하고 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바로 잔다. 선생님이
“영주, 일어나세요.”
해도 난 꼼짝 안 한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영주, 계속 그렇게 자려면 밖에 나가서 주무십시오.”
하니까 나는 바로 나갔다. 지난 5월에는 새로 생긴 난타 수업이 재미있을 것 같아 들어갔으나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하기는 싫은데 그룹이라 중간에 빠질 수가 없어 뒤에서 드러누워 시간을 때웠다. 그랬더니 언니들이 잔소리를 했다.
센터에서는 긴 머리를 묶게 되어 있는데 난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녔다.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잡아매는데 4개월이 걸렸다.
“너 옛날에도 그랬니?”
선생님이 물었다. 맞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아무도 안 잡아 줬다. 날 제재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뭘 지적하면 그래서 어쩌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쳐요 한다. 또 머리 묶는 것과 같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센터에서는 땅콩이란 걸 주는데 그게 많으면 지위가 오르지 않는다. 난 퇴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위가 처음 입소 때처럼 그대로다. 남들은 땅콩을 받지 않으려고 의지 발휘를 하는데 난 개의치 않는다. 땅콩 줄라면 줘라. 식이다.
센터에는 만화를 비롯하여 책이 많다. 난 만화책만 무지 좋아한다, 그런데 며칠 전 너무 선정적이라 판단된 만화를 수거해 갈 때 유일한 재미가 이건데, 알 것 다 아는데, 우리 나쁜 짓 다하고 왔는데 왜 없애냐고 난리를 쳤다. 미지마저 떠난 후라 나는 더 슬럼프에 빠져 밥도 먹지 않고 수업은 아예 들어가지 않고 있다. 이런 나를 센터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내 아이큐는 130이다.
센터에서 내 담임은 요즘 눈에 띄게 나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조금만 잘 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따로 불러 먹을 것을 챙겨 주었는데 이젠 그것도 없다. 아마 그 일이 있는 후부터다. 센터에는 외부에서 학습 봉사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그날 담임과 봉사 선생님이 ‘나눔터’에서 만나고 계셨다. 나는 그걸 알고도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서 생각대로 행동해 버렸다. 노크도 없이 문 탁 열었더니 동시에 두 분이 깜짝 놀랐다. 난 무조건 탁자 위에 놓인 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 이거 먹고 싶어요.”
“영주야, 이거 선생님 드리려고 가져 온 거야.”
“내가 먹고 싶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난 과자를 집어 가지고 나와 버렸다. 그 후로 담임은 나에게 할 말만 하신다. 이젠 안 되겠다 싶어 포기하신 것 같다. 어린 나에게 어떻게든 희망을 걸었다는 것 다 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살다가는 미지처럼 나도 여기서 살기 어렵겠다는 걸 머리로는 백번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하도 그렇게 놀아버려서 몸이 안 된다. 지금도 누가 터치 하면 바로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여기 오는 아이들 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하고 받아칠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데 날 찾는 분이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너에게 친구야! 친구야! 그러시면서 이어지는 말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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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해’의 날개를 달고!
남민영 수녀님
그늘 넓은 푸른 나무를 그리며
자신의 넓은 품을 표현하던 너
아무도 없는 기도방에 앉아
친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너
모두가 싫다고 외면하던 곳을
선뜻 나서서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하던 너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며
가슴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그리움으로
사랑을 찾던 너
주님,
기도와 사랑만이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이들의 모든 몸부림은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다는 외침임을 저희가 알아듣게 하소서.
행동 너머에 그 마음을 바라보고
세상에 여린 가슴들을 품어 안게 하소서!
사랑과 이해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