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하여
시인 둘과 나란히 앉아 여행 얘기를 꺼냈다. 눈앞에는 독자들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등 뒤에는 붉은 석양이 깔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무얼 보고 무얼 느꼈는지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늦게 일어나는 사람인지, 얼마나 게으른지, 얼마나 방에 있길 좋아하는지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여행지에 대한 예찬을 시인다운 아름다운 말로 표현해줄 걸 기대했던 독자들은 실망을 했을 것이다. 어째서 우리 세 사람은 여행지를 예찬할 수 없었을까.
내 경우는 우선, 여행지에서 겪은 나의 일들에 대하여 온갖 미사여구를 곁들이거나 활기찬 모험담을 곁들여 발설하고 싶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낯선 여행지의 유명한 장소에 대하여 예찬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에 대하여도 예찬을 하고 싶지가 않다. 예찬 자체를 거절하고 싶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아름다운 풍광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아름다움은 번번이 징그러운 데가 있다. 누군가의 노역이 필연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에 놀라움의 이면에 더 놀라게 된다. 전혀 놀라울 것 없는 골목과 골목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의 생활에 놀라다가, 놀라움이 가신 자리에 잊었던 질문이 찾아올 때까지 그 여행지에 머무는 게 나에겐 여행이다.
그러려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오래오래 지내야 한다. 오래 있으면서, 이곳에서처럼 밤새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느라 늦잠을 자야 한다.
김소연 시인 /<김소연의 볼록렌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