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진 자들아, 모두 나에게 와 성인과 바다의 품에서 쉬라.”
독도에서 미사를 올리고 있는 울릉도의 사제와 신자들
울릉도 태하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풍감(왼쪽)과 현포항 일대(오른쪽)
울릉도 도동성당과 천부성당,
‘영혼의 쉼’인 ‘소울스테이’ .
올해 5차례 조기 마감해 끝나
내년에 개별 또는 열명씩 스테이 진행
산과 해안 걸으며 몸 재충전.
자연 속에서 기도와 묵상 통해 힐링.
도동성당은 독도도 가고,
천부성당은 영성센터 지어 손님맞이.
오랜 세월 파도에 닳고닳아 단련돼 더욱 아름답고 신비로운 섬 울릉도. 동해에 너무 멀리 외따로 떨어진 독도의 모섬으로서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인 울릉도가 관광지로서뿐만 아니라 영혼을 맑히는 ‘소울스테이’의 힐링 처소로 떠오르고 있다. 해발 986.7미터의 산 이름이 ‘성스런 사람’이란 뜻의 ‘성인(聖人)봉’이고, 그 아래 신령스런 물이 솟는 신령수가 있는 울릉도는 섬 전체가 영적인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가톨릭 대교대교구 문화융성사업단은 지난 7월부터 경북도내 11곳의 수도원, 공동체, 복지시설 성당 등에서 영혼을 위로하고 마음을 격려할 수 있는 ‘소울스테이(soulstay.or.kr)를 열고 있다. 소울스테이는 불교의 템플스테이와 비슷하다. 경북도와 경북관광공사의 지원으로 식비나 숙박비 정도의 실비만으로 영혼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만 소울스테이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니, 가톨릭적 영성프로그램을 통해 가톨릭적 생명과 사랑에 눈을 뜨고 ‘참자아’와 ‘참하느님’을 체험케하는게 그 목적이다.
울릉도엔 두개의 성당이 있다. 울릉도의 행정관청이 밀집해있는 중심가인 도동에 있는 모교회 도동성당과 반대편 에 있는 천부 성당이다. 이 두 성당의 소울스테이가 조기마감돼 31일까지 2박3일씩 5차례의 프로그램이 모두 끝났다. 도동성당에서는 독도를 다녀오고 도동 인근 전망대 등을 걷고, 천부성당에선 나리분지와 석포 등을 트레킹하는 걷기 치료에 중점을 두었다. 참여자들은 낮엔 천혜의 자연을 걷고 밤엔 미사와 묵상을 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두 성당은 첫 소울스테이에 대한 호응이 의외로 크자, 하반기에 더 준비해 내년엔 도동성당의 경우 개별적으로 신청을 받고, 천부성당은 10여명 단위로 봄 가을에 10차례의 소울스테이를 마련해 더 많은 참여자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소울스테이를 이끄는 두 성당을 둘러봤다.
도동성당 내에서 `독도지키는 성모상'에 오르는 손성호 신부
성인봉에 오른, 도동성당 소울스테이 참가자들
도동성당
“무거운 짐진자 모두 나에게 오너라.”
울릉도 인구 1만여명의 대부분이 모여 사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전형적인 달동네를 오르면 십자가를 진 예수상이 이 글귀와 함께 맞는다.
1960년 설립된 도동성당은 지난 2010년 50돌을 맞아 말끔히 새단장을 했다. 울릉도는 오징어잡이로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도동성당도 천장을 오징어잡이 배 모양을 땄다. 언듯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한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도 실제 오징이배에서 사용되는 전구를 썼다.
성당 내엔 가파른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급경사에 설치된 88개의 계단을 오르면 도동항과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 성모상이 서 있다. ‘독도 지키는 성모상’이다. 이 성모상은 날이 맑은 날이면 87.4킬로미터나 떨어진 독도까지 보인다. 도동성당 신자들과 소울스테이 참가자들은 묵주기도로 한계단한계단 오르며 ‘독도 지키는 성모상’에게 다가간다. 기도를 하면서 서서히 오르내리는데 각각 20여분씩 소요된다. 성모상 왼편 숲길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숨지기 전까지 고난을 당한 지점등을 상징화한 ‘십자가의 길’ 14처가 배치돼 묵상하도록 했다. 성모상과 함께 밤을 맞으
면 울릉도 앞바다를 훤히 밝히는 오징어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3년 전 울릉도에 반해 이곳에 자원해 부임한 손성호(59) 주임신부는 생명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거의 매일 성인봉에 오르다시피하며, 야생화를 사진에 담는 그는 신자들에게 수천만년 이어내려온 울릉도의 자연 가치는 몇푼의 이익과 바꿀 수 없는 것이란 점을 새겨주고 있다.
손 신부는 “울릉도는 옛부터 도둑, 공해, 뱀이 없는 삼무(三無)와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은 오다(五多)의 섬으로 인심과 자연이 최고인 평화로운 섬이었지만, 이젠 꼭 그렇지만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실제 사동항에 들어설 경비행장 공사가 시작되면 처녀봉의 목이 절개될 위기에 처하는 등 난개발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들도 울릉도의 개발을 원해 사목자로서 고뇌가 깊다. 더구나 북한으로부터 동해 어엽권을 획득했던 중국 어선들이 쌍끌이 저인망으로 울릉도 인근까지 오징어잡이를 해서 어장의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그 무엇보다
도 그와 신자들을 아프게 하는 것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이다. 이 평화롭고 신비롭기만 한 울릉도에도 탐욕과 폭력이 목을 죄어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손 신부와 신자들도 ‘독도지키는 성모상’과 성인봉에 오르며 평화와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성모상이 지켜보는 오징어배 불빛은 마치 불나방처럼 달려가는 개발, 폭력, 탐욕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한밤 트레킹길에서 한 신자가 유하 시인의 <오징어>를 읊는다.
‘눈앞의 저빛!/찬란한 저빛!//그러나/저건 죽음이다//의심하라/모오든 광명을’
독도에서 미사를 드린 도동성당과 천부성당 신자들
천부성당
도동항에서 차로 한시간쯤 돌아 반대편으로 가면 해안절벽 대풍감을 비롯해 송곳봉, 노인봉, 코끼리 바위 등 많은 비경들을 인근해 안은 천부성당이 있다.
푸르디푸른 바다와 하얀 성당지붕이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한다. 울릉도 북쪽 현포와 천부항 인근은 인구 1500명에 불과하다. 천부성당도 한때 공소(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성당)가 됐을만큼 신자수도 30~4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래뵈도 이 마을은 왜관베네딕도수도원 박현동 아빠스(수도원장)와 여러명의 수도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천부성당은 2년전에 온 나기정 주임신부가 오면서 영성센터로 거듭 나고 있다. 나 신부는 내년 50돌을 앞두고 본당 건물 신축보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드는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성당은 해풍에 삭을대로 삭아 벽체 페인트가 벗겨져 너덜너덜하다. 그런데도 나 신부는 성당을 허물지않고 리모델링을 택했다. 이 성당은 왜관베네딕도수도원에 살던 알빈 신부의 작품이고, 50년 넘은 건물이 남아있지않은 울릉도에서 상징성과 역사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가치를 위해 ‘빨리빨리’를 포기한 것이다.
성당 옆과 뒤엔 교육관과 영성센터 2개동을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성당 앞에 짓는 교육관은 천부성당을 찾는 신부나 수녀, 수도사들의 기도실과 숙박시설을 갖춘다. 성당 뒤 언덕에 새로 450평을 구입해 짓는 영성센터는 1층에 주방과 식당을, 2층에는 평신도나 일반인들의 기도실과 숙박시설을 배치한다. 영성센터는 3인실이 3개, 5인실이 6개여서 4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각 방마다, 바다나 주변의 산이 시야에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특히 식당은 3면이 창이어서 동해 바다와 코끼리바위가 들어온다.
천부성당 나기정 신부
현포에서 가까운 거리에 바다가 보이지않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인 나리분지
천부리 맨왼쪽이 영성센터 신축 현장
나 신부는 신축 건물 옥상에 태양열판을 설치해 태양광을 통해 전기를 자체 조달하고, 쌀뜨물발효액을 사용해 마을 전체 하수구까지 정화할 수 있는 오폐수 정화를 꾀하고 있다.
나 신부는 “어렵게 시작했는데 의외로 전국에서 많은 신자들이 호응을 해줘 오는 10월 영성센터와 교육관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감개무량해했다. 천부성당에선 영성센터 건립을 위해 1백만원 이상 도운 기부자에겐 가족들과 함께 숙박하며 쉴 수 있는 혜택을 줄 예정이다. 머지않아 영성센터와 교육관에서 수도자와 일반인들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인근 나리분지에서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명이와 부지갱이 등의 나물비빔밥을 먹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센터가 탄생하는 것이다. 나 신부는 “내년엔 새 영성센터와 자연 속에서 영혼이 충분히 힐링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손짓했다.
울릉도·독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