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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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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땀의 희망, 노래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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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jpg»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세계 최대의 예수상 뒤로 19일 거대한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선 20일까지 이틀째 벼락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리우데자네이루/ AP 연합뉴스

 “눈물은 거짓이 없어/ 땅에 뿌려진 만큼/ 너를 자라나게 할 테니 그저 견딜 만큼만/ 아주 조금만/ 내게 다가왔음을 감사해 니가 흘린 땀들이 모여/ 새로운 문이 열릴 거야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 인생의 계단인 거야  (신해철 “웰컴 투 더 월드”)
 아침에 차를 몰고 동네 골목길을 빠져나오는데 뒷거울에 내 외손자 녀석과 어머니 모습이 비칩니다. 여든넷 어머니는 초등학생만 하게 쪼그라든 몸에 낡아 헐렁한 메리야스 속옷만 걸치고, 아직 두 살이 안 된 당신 증손자 손을 잡고, 아들 차가 골목길을 돌아나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조그만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마음이 짠해집니다. 어머니 가실 날을 생각하면 슬프고, 저 땅바닥에 붙어 있는 꼬마 녀석이 앞으로 겪게 될 많은 힘든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2천년이 지나도 아직도 먼 하느님 나라
 어머니는 가수 신해철의 노랫말처럼 팔십 평생 눈물과 땀으로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오다가 삶의 마지막 계단 위에 서 있고, 저 꼬마 녀석은 이제 증조할머니가 걸은 길의 시작에 서 있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만큼 내가 자라고, 내가 흘린 땀들이 모여 새로운 문이 열릴 거라고 ‘희망’을 노래하지만, 우리가 살며 만들어 온 이 세상은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눈물을 요구할 겝니다.

a2.jpg»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곳으로 전해지는 베들레헴 메인저(말구유)광장에 위치한 예수탄생교회 동굴경당 옆에서 순례자들이 촛불을 밝혀놓고 기도를 하고 있다. 베들레헴/AP 연합뉴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지 2천 년.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아직도 멀어만 보이니 과연 우리가 ‘희망’을 노래해도 되는 걸까요? 그날 아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교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교회의 주요 직책에서 일하는 여러 신부님과 평신도들이 함께했는데 모임 끝 무렵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요즈음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주제였습니다. 
 정부는 그 첫 과제로  ‘저 성과자에 대한 해고 완화’를 내세웠는데, 말은 빙빙 돌려가며 그 발톱을 숨기려 했지만, 쉽게 말해 근무평가를 해서 아래 등급을 받은 노동자는 해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현행법에서는 근무성적이 하위여도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해고를 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자가 근무평가를 하면 누군가는 5퍼센트나 10퍼센트 하위 등급을 받게 마련이니, 이 ‘개혁’된 제도 하에서는 평가가 아무리 공정하다고 해도 상시적으로 일정 수의 노동자는 일자리에서 쫓겨나야 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사장님 눈 밖에 벗어나는 노동자는 실제 근무성적과 상관없이  낮은 등급을 받아 그와 그 가족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날 아침 모임에서 이런 지적과 함께 교회의 이름으로 ‘노동개혁’의 문제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여가는데 놀랍게도 몇몇 반대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효율을 반대한 적이 없다.’ ‘아직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았으니 기다려 보자.’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정말 크게 절망했습니다. ‘여기가 혹시 사장님들 단체인 전경련 모임 자리인가, 아니면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면 좌파 딱지를 붙여 가진 이들 이익을 챙기는 정치판인가.’
 
 노동개혁, 예수님이라면 뭐라 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선 지난 한국 방문 때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달면 어느 한편을 드는 셈이 되니 리본을 떼시는 게 어떠냐는 어느 성직자의 권유를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고통에는 중립이 없습니다.” 

a3.jpg»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 앞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2014.8.16 연합뉴스

 예수님이시라면 ‘노동개혁’에 대해 뭐라 하셨을까. 사장님에게 찍혔거나, 아니면 정말로 남보다 일을 못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노동자라 해서 직장 밖으로 내치라 하셨을까. 예수님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 답은 너무나 분명히 알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를 하는 게 사명인 교회에서조차 효율이라는 기득권 논리가 강하게 힘을 과시하는 걸 보며 나는 정말로 ‘희망’을, 아니 ‘믿음’을 잃을 뻔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얼 하고 계시길래 하느님 백성들이라는 사람들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요.
 그래서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가 봅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다 보면 반드시 모욕과 박해가 뒤따를 거라 하셨고, 바로 당신 자신이 그리되셨습니다. 이 자리를 피해보자는 베드로에게는 “사탄아 물러가라” 험한 소리까지 하셨습니다.
 전에는, 이 세상을 하느님이 내셨다면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이 자체로 이미 하느님 나라일 터인데 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겐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저 노랫말처럼 내가 땅에 눈물도 뿌려보고, 땀 흘려 낯선 세계의 문도 넘어 보고, 그 문을 열었다가 절망도 본 후에는 이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다른 말로 이 ‘개체’들을 ‘낳으신’ 순간, 이 세상은 더 이상 그 자체로 하느님 나라가 아닙니다. 개체들은 하느님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개체들은 개체 자신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자신이 개체로 몸을 나투셔서 모욕과 박해를 받아가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증손자, 끝과 시작이 맞잡은 손
 개체더러 서로 사랑하라, 다른 말로 개체 너 자신만 내세우지 말라 하면 그 말을 들은 개체들은 당연히 화를 내며 달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라는 말씀은 개체들에게 너무 어려운 말씀이니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와 똑같이, 하느님 백성들 모임이라는 교회 안에서도 우리 불쌍한 이 개체들은 여전히 자신을 버리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려면 모욕과 박해는 반드시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도 당신께서는 그 길이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라 가르치시니 우리 불쌍한 이 개체들은 그 말씀을 하느님 말씀으로 ‘믿고’ 그 길을 가는 겁니다. 
 많이 부족하나마 여든넷 우리 어머니는 그 힘든 길을 걸어 이제 그 끝에 서 계시고, 두 살도 안 된 내 외손자 녀석은 이제 그 힘든 길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 둘이 손잡고, 사라지는 내 차를 바라보고 섰습니다.
  김형태 <공동선> 발행인·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이 글은 <공동선 2015. 11.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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