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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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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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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가족, 국가, 자기 종교, 이념만을 절대라고 우기는 자기중심성

김형태<공동선> 발행인·<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얼마 전,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제일 많이 빌려 본 책이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딸도 그렇고, 아는 미국 변호사 녀석도 제일 재밌게 읽은 게 “해리포러”라 하더군요.

알렉산더나 칭기스칸은 왜 살인자가 아니라 영웅일까
 내가 학교 다니던 40여년 전만 해도 빅톨 위고의 <레 미제러블>이나 톨스토이, 또스또예프스키 같은 소위 세계명작을 읽어야 어디 가서 책 읽었단 소리를 할 수 있었지요. 깨알만한 글씨로 수백 쪽이나 되는 <죄와 벌>을 끝까지 읽는 건 거의 고행에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소설이란 게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는 거란 점에서 어른들 말마따나 ‘간접 경험’이요, ‘삶의 양식’이었지요. ‘해리포러’를 백번 읽은들 남는 게 무얼까 생각해 보면 내 딸이나 요즘 젊은이들이 심히 걱정됩니다. 나도 이제 ‘꼰대’가 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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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벌레 같은 전당포 노파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해 놓고 이리저리 갈등하다가, 창녀인 쏘냐의 순결한 사랑에 회심을 한 후, 유형 간 차가운 시베리아 대지에 입을 맞추며 자신의 죄를 자복합니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모든 법전이나 종교 경전은 이러이러한 행위가 죄라고 선언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율법이 정해 놓은 죄를 그 자체 영구불변의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산 목숨을 죽이는 일은 우리 주위에 널렸습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정복전쟁에서 사람을 수없이 죽인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스칸 같은 이들이 살인자가 아니라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현실에 헷갈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매일매일 소, 닭, 돼지, 물고기들을 죽여 먹이로 삼습니다.

장발장이 훔친 은촛대 주인이 성당일까
 간음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인 단세포 생물은 이분법으로 제 몸을 둘로 쪼개어 번식을 했으니 ‘간음’의 여지가 애시당초 없었습니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두 세포가 서로 유전자 교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므로 암수 양성생식으로 진화가 이루어져 왔고, 사람의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도 원시 모계사회는 자식의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간음죄의 전제가 되는 일부일처제는 십만년 인류역사에서 불과 수백년에 불과합니다. 엊그제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는 동성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동성애를 법률로 보호하고 있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사형에 처하기도 합니다.
 도둑질은 또 어떻습니까. 장발장은 성당에서 은촛대 하나를 훔쳐서 평생을 쫓기는 신세가 되지만 사실 그 은촛대의 주인이 성당일까요? 교회가 신자들 시주를 받아서 은촛대로 성전을 화려하게 꾸밀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밥을 굶는 쟝발장에게 빵을 사주어야 하는 거겠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69절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창조된 재화는 정의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풍부하게 나누어져야 한다...누구나 재화를 사용함에 있어서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사유물로만 여길 게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한다...빈곤의 극을 겪고 있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타인의 재화에서 취득할 권리가 있다.”
 그렇습니다. 소유권이란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제도적 산물에 불과합니다. 국가가 세금을 거두면서 삼성 같은 대기업들에게는 여러 이유를 들어 법인세를 감면해주고 그래서 부족해진 세금수입을 영세 법인들이나 봉급생활자에게 거두면, 국가가 합법적으로 없는 사람들 돈을 빼앗아다가 있는 사람들 주머니를 채우는 게 되니 이거야말로 큰 도둑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은촛대 하나 훔치는 수준이 아닌 겁니다.

정의와 사랑 없으면 의원·대통령은 큰 도둑
 이제 봄이 오면 피어날 목련이 내 마당에 있다고 내 것이라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 겨울에 꽃눈이 맺히고 봄에 하얀 봉우리가 여는데 내가 도와준 게 전혀 없으니 그렇습니다.
 이처럼 살인이니 도둑질이니 하는 죄를 따지고 들어가면, 그저 우리가 피상적 수준에서 생각하는 ‘개개인의 도덕적 파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서, 인간 사회  그리고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 이 세상 만물 전체의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세금을 누구에게서, 얼마를 걷어,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를 정의와 사랑의 차원에서 제대로 정하고 이행하지 않는 국회의원이며 대통령은 큰 도둑이요, 8절지 넓이 공간에 닭을 키우고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죽여 잡아먹는 우리 모두는 살인범 못지않은 무서운 죄인들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에 비견되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죄에 대한 대목을 근세 인도의 철학자이자 대통령을 지낸 라다크리슈난은 이리 해설합니다. “죄란 그저 계율이나 율법을 범하는 행위가 아니고, 우리 ‘개체들의 유한성’, ‘무지’, 그리고 ‘자신의 자아가 다른 것들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여기는 확신’이 바로 죄다.”
 무한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개체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말입니다. 이 개체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개체들로부터 자신을 주장해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 이 유한성이 죄입니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면 이 개체는 생존 자체가 다른 개체들과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걸 모르고 저만 저라고 주장하니 무지와 자기중심성이 죄라는 겁니다.

법과 종교의 권위 빌려 단죄에만 급급하는 기득권
 이리 보면 겉으로는 아무리 일부일처제 혼인 생활을 하고 있어도 상대방을 자기중심성(그것이 성욕이 되었든 지배욕이 되었든)의 수단으로 삼으면 죄인이요, 교회가 손가락질하는 동성애자라도 상대방을 또 다른 자신이라 여기고 서로 위한다면 죄인의 반열 밖에 있는 겁니다. 현실의 법과 종교들은 대개 죄라 열거된 행위의 겉모습만을 중시하고 그 행위가 왜 죄로 규정되었는지는 도외시한 채 그저 단죄하고 처벌하는데 급급합니다. 왜들 그러는지를 잘 살펴보면 이건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그걸 놓지 않으려고 법과 종교의 권위를 빌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란 자기중심성입니다. 자기 자신, 가족, 국가, 자신의 종교, 이념만을 절대라고 우기고, 기독교, 불교, 이슬람이 다 그렇지만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만이 구원, 해탈한다고 여기고, 다른 생명들과 산과 강을 마구 해치는 게 바로 죄입니다.
 그런데 이 개체의 유한성 앞에 겸손하고, 개체와 개체들이 전체 안에서 하나라는 걸 잘 알고 살아가는 게, 우리 개체에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 글은 <공동선 2016.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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