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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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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어서 꽉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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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442.JPG

가야산 들머리에 갤러리와 개인작업실을 함께 가진 화가 부부가 찾아왔다. 방안에 앉자마자 병풍을 보더니 “김양수 화백 작품이네!”하면서 첫마디를 내뱉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방을 드나들며 ‘그림 좋다’는 덕담은 많이 했지만 작가 이름까지 들먹인 경우는 흔치않다. 역시 고수끼리는 서로 알아보는 법이다. 전문가답게 병풍 유래까지 설명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전쟁으로 날밤을 지새던 시대에는 여러 개의 ‘자루 없는 도끼’ 문양이 병풍 그림의 주제였다고 한다. 전장에서 왕이나 장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뒷배경의 장식품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무인(武人)용인 셈이다. 전쟁이 일상인 시대가 마무리되면서 병풍의 그림은 순해지고 글씨 등 소재도 다양해진다.

8할 이상이 여백…시절인연 만나 제 빛깔
 8폭 병풍은 2008년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린 ‘김양수 화백 전시회’에 나온 작품이다. 워낙 대작이라 마지막 날까지 소장하겠다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8할 이상이 여백으로 처리된 그야말로 소병(素屛)에 가까웠다. 아래쪽 2할은  군데군데 약간의 황토색을 입히긴 했지만 주로 먹의 농담을 이용한 산수화였다. 한때 월간지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작가에게 몇 년 동안 신세진 것이 많아 빚 갚음의 뜻으로 ‘원가(?)’에 구입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 칸짜리 방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펼쳐두고 음미할 만한 공간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할 수 없이 접은 포장상태로 암자 한 켠에 밀쳐두었다. 그렇게 잊고서 떠돌아다닌 세월은 강산이 바뀔 만큼 되었다.
 두어 해 전 적묵당으로 몸을 옮기게 되었다. 그 방은 세 칸짜리 큰방이었다. 마루를 통해 방문을 열면 정면에 고방과 세면장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런 까닭에 한쪽 벽면은 전부 문이였다. 그것도 한식과 양식이 반반씩이다. 그 부조화가 엄청 눈에 거슬린다. 어떻게 무엇으로 가릴 것인가? 그때 섬광처럼 그 여덟 폭 병풍이 생각났다. 우선 포장 겉면에 쌓여있는 먼지부터 털어냈다. 그 다음 유물을 발굴하듯 조심조심 끄집어내 가만가만 펼쳤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듯하여 하루 정도 거풍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난 뒤 펼쳐 위치를 잡았다. 그야말로 제자리였다. 그 앞에 놓인 차 탁자와 더불어 잘 어울렸다. 오는 사람마다 ‘다실 분위기 괜찮다’는 말을 보태준다. 무엇이건 시절인연이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제 빛깔이 나는 법이다.

병풍에 다관 뚜껑이 콱…상처 입어 되레 정감
 그해 여름은 바람이 매우 심했다. 그럼에도 늦더위에 앞뒷문을 모두 열어 두었다. 바람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뭔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병풍이 넘어져 차 탁자 위로 쓰러진 것이다. 화들짝 놀라 일으켜 세우고는 모든 문을 황급히 닫았다. 탁자 위에 미처 치우지 못한 차 도구들도 깨진 것 없이 무사했다. 안도하며 다시 살펴보니 다관의 뚜껑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 동안 여기저기 있을만한 곳을 뒤졌다. 도대체 어디다 두었지? 건망증을 탓하다가 고개를 들어 병풍을 쳐다보았다. 
 “저게 뭐야?” 
 하늘의 태양처럼 병풍 그림의 빈 허공에 둥근 방패처럼 뭔가 붙어있다. 헐! 다관 뚜껑이다. 조심조심 떼냈다. 이미 병풍에는 구멍이 났다. 내 가슴에 구멍이 난 것만큼 쓰라렸다. 병풍이 쓰러지면서 다관을 덮쳤고 그 다관 뚜껑이 병풍에 박힌 사실을 모른 채 얼마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다관 뚜껑 꼭지부분으로 인해 안쪽으로 밀려난 종이를 바늘을 이용해 살살 앞쪽으로 끄집어내어 대충 구멍을 가렸다.
 눈썰미 있는 방문객이 그 구멍의 연유를 물을 때마다 ‘쓰라린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고는 함께 웃었다. 스토리텔링까지 가미되니 이야기거리가 되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차 마시는 즐거움을 더해주니 상처 없는 병풍보다 훨씬 더 정감을 느끼게 된다. 몇 년 동안 다락에서 새 것처럼 있다가 펼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중고가 되었다. 그만큼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까닭이다. 겨울에는 방안이 건조하고 뜨거운 탓에 더러 주름진 부분까지 보태졌다. 함께 한 연륜이려니 하고 별로 개의치 않을 만큼 무덤덤해졌다. 생활 소품은 생활 속으로 녹아들 때 비로소 가치가 더해짐을 알겠다.

삼라만상이 먹이 되고 종이가 되는 백경              
 어쨌거나 사치를 금하는 절집에서는 금강경 반야심경 달마도 등 절제미가 강조된 흑백 병풍이 대세였다. 이즈음의 무인양품(無印良品·무지)은 광고와 포장을 가능한 한 생략하기 때문에 품질에 더 믿음을 준다. 병풍의 최종판은 소병(素屛)이다. 그림이나 글씨가 전혀 없는 흰 종이 바탕의 하얀 공백만으로 이루어진 병풍을 말한다. 보는 이마다 각자 상상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넣을 수 있다. 언젠가 마주쳤던 아무 것도 없는 흰 종이 바탕의 테두리만 있는 빈 족자가 주던 감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비석에도 백비(白碑)가 있다. 그 사람의 일평생 청빈을 어떤 언어로건 감히 나열하는 자체가 오히려 오염이기 때문에 그대로 비워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텅 비어있는 공(空)은 좋은 것이다. 해석에 대한 모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이건 자기만의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까닭이다. 이 봄날 계곡 물소리와 푸른 산빛이 주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삼라만상이 모두 먹과 종이가 되는 ‘백경(白經)’이 된다는 이치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나에게 있는 한 권의 경전은(我有一經卷)
 종이나 먹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不因紙墨成)
 펼치면 한 글자도 없지만(展開無一字)
 언제나 지혜로운 빛을 내고 있구나.(常放大光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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