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를 만나 편지를 건네받고 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제공
이탈리아 아퀼라. 우리나라로 치면 태백산맥쯤의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아펜니노 산맥의 작은 마을입니다. 가보고 싶었습니다. 2013년,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교황의 자진 사임 소식과 함께 그보다 앞서 종신의 힘을 내려놓았던 첼레스티노 5세(1294년 8월-12월)의 무덤을 사임 몇 해 전 이미 방문했었다는 보도를 접하고부터 그랬습니다. 첼레스티노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도 그렇지만 무덤 앞에 선 늙은 교황의 모습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아퀼라는 상상과는 달랐습니다. 하얗게 눈 덮인 산맥들을 배경으로 펼쳐진 도시는 거대한 폐허였습니다. 2009년 4월 강진 이후 8년 남짓 방치되었다가 올해 본격적으로 복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 낯선 풍경이 이해되었습니다. 첼레스티노가 잠들어있는 성당은 전면 파사드와 측벽 일부만 남기고 모두 주저앉았고, 학교와 박물관, 광장의 가게도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벽걸이 책장의 책들이 모두 쏟아져 내린 것을 보고 밤사이 지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던 로마에서의 나의 8년 전 아침이 기억났습니다. 아퀼라 사람들과 내가 지나온 8년의 시간은 그렇게 사뭇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강진 이래 8년이 실재였다면 내게는 관념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이 감당하는 시간의 농도야 제삼자의 그것과 비교될 수 없을 테니까요.
»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의지를 상징하기 위해 녹슨 철판을 뚫어 함정 모양으로 만든 설치작품 너머로 강정마을 앞바다가 보인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그렇다고 이 낯선 방문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이 이역의 생면부지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 같은 인류애적 감성 때문은 아닙니다. 내가 두고 온 사람들의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폐허와 함께 살아야했던 아퀼라 주민들의 8년의 시간과 평행으로 놓인 또 다른 8년, 나와 나의 사람들의 ‘실재’의 시간이 생각나서였습니다. 몰아치듯 살아온 지난 시간들 속 인연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대한문과 광화문, 용산과 영도, 밀양과 강정, 공장과 철탑 아래의 인연들, 그 틈에 염치없이 끼어 살던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그 언저리만 서면 주책없던 눈물이, 간절했고 뜨거웠던 가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내게 나눠준 그들의 실재의 시간이 고맙고, 또 미안해서였습니다.
» 밀양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2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바드리 마을 송전탑건설번호 89번 건설 부지터에서 중장비를 이용 터잡기와 외부인 출입을 막는 팬스설치공사를 하고있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몸에 쇠사슬을 묶은 채 진입로에 누워 경찰및 공사 관계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밀양/김봉규 선임기자
사실 조금 지쳐있었습니다. 인연들이 나눠준 시간이 어떤 밀도인지, 그것으로 내가 감당할 실재가 무엇인지를 차츰 알게 되면서 더욱 그랬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덜 아프고, 덜 빼앗기고, 조금은 ‘세련되게’ 살고 싶은 마음 역시 자랐겠지요. 내가 나눠받았던 실재들도 차츰 관념이 되었을 테지요. 8년 전 아침 분명히 감지했지만 어느새 관념으로 사그라졌던 지진이 누군가에게는 8년의 실재로 건재했던 것처럼, 여전히 지금도 흐르고 있는 내 인연들의 시간은 이제 나의 시간이 아닌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내가 나의 자리로 돌아온 날은 마침 재의 수요일이었습니다. 제삼자가 아니라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목격하고 감당한 당사자로 인간사 한 가운데를 지났던 스승을 기억하는 절기. 기대와는 달리 폐허들만 마주했던 그날의 낯선 방문이 불러일으켰던 동요 때문일까요. 이름이 아니라 육으로, 관념이 아니라 실재로 인간을 살았던 그의 모범이 새삼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삼년을 헤아리는 포도원 지기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루카 13, 6-9) 내 소유라는 관념으로 포도원을 바라보던 주인의 시간과 포도원지기의 동고동락의 시간이 같을 수 없겠지요. 애틋함도 자비도 인내도 모두 그 실재의 시간이 맺어준 열매겠지요. 동고동락의 당사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썰미, 지금 폐허를 지나 돌아온 나의 자리에서 다시 청해보는 선물입니다.
장동훈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