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그라고 말해불면 대주교님께서 내가 ‘대빵(대장)질’한 줄 아시제~. 니, 웃겨분다, 이~!” “그라믄 신부님이 우리 ‘대빵’이제, 대빵 아니요?” 지난 22일 오전 광주시 서동 거북언덕길 노숙인 쉼터 ‘아름다운 동행’에서 최민석(55·맨 왼쪽) 신부와 한 노숙인(45)이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쉼터 옆 무료급식소 지하에 최신 샤워장이 마련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가 방문한 날이었다. 이 노숙인은 김 대주교에게 “저 샤워실은 최 신부님 전용입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 유리 칸막이가 된 샤워실 하나를 가리키며 최 신부가 “내 것!”이라고 농담한 것을 들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지난해 9월 한옥 무료임대 받아
노숙인 12명 공동체로 ‘둥지’
김희중 대주교 ‘샤워실’ 지원
도시빈민사목 전문 최민석 신부
“(노)숙자씨”라 부르며 거리 순례
“복지 그물망 빠진 사각지대 메워”
“올 설날 대주교님께서 ‘거기선 뭐가 당장 필요하당가?’라고 물으시기에, ‘씻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오래된 한옥에서 “60년대 방식으로” 물을 데워 큰 대야에 담아 씻던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장은 무엇보다 시급하고 긴요한 선물이었다. 최 신부의 얘기를 잊지 않고 2500만원을 지원한 김 대주교는 이날 샤워장을 둘러보고 축복식을 한 뒤 쉼터에서 노숙인들의 손을 잡고 용기를 북돋웠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는 빈집이었던 낡은 한옥을 신자한테서 무료로 빌려 지난해 9월부터 노숙인들의 쉼터를 만들었다. ‘달방’을 놓던 이 한옥은 건넌방까지 방이 5개나 있어 노숙을 했던 12명이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이들은 아침·점심은 바로 옆 무료급식소에서 식사하고, 저녁은 직접 지어 먹는다.
노숙인들은 최 신부를 “가족이고 친구고 형”이라고 여긴다. 최 신부는 지난해 6월부터 광주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 소속으로 도시 빈민사목을 준비했다. 사회사목 담당으로 전남 진도 팽목항에 상주하며 세월호 희생자 및 미수습자 가족들과 5개월 남짓 고락을 함께한 뒤였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복지 그물망에서 빠진 사각지대를 찾아 틈을 메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는 광주지역 대형 병원과 터미널, 지하철역과 공원 등지를 떠도는 노숙인들을 찾아다니며 만나기 시작했다. 때론 술을 함께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반신반의하던 노숙자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최 신부를 만난 윤아무개(45)씨는 “최 신부님은 (우리에게) 장난을 걸잖아요. 그래서 다들 더 편하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지역신문사 기자, 한 보훈단체 사무국장을 했던 그는 그때 아내와 불화를 겪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공원 부근 노숙자들과 어울렸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가정불화나 사업 실패 뒤 길거리로 나와 노숙자들과 어울리며 술로 산다”고 했다. 윤씨는 “그러다가 점차 노동 의욕을 상실하고 자포자기한다. 그리고 남과 눈을 맞추질 못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생긴다”고 경험을 털어놓았다.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가 있지만, 대다수 ‘진짜 노숙자’들은 여전히 거리를 고집한다. “왠 줄 아세요? 답답하기 때문이에요. 규율에 얽매이는 것도 싫고요. … 거기선 밖에 나갔다 오면 알코올 측정기를 불게 해요. 그게 싫어 다시 거리로 나옵니다.” 윤씨의 이야기다. 노숙인들 중엔 매주 화요일 교회에서 주는 1000~2000원의 ‘구제비’를 모아 술값으로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노숙인은 “시내 거의 모든 교회를 찾아 30㎞ 정도를 걸으면 하루에 2만5000원 정도 걷힌다”고 했다.
이곳 쉼터로 온 노숙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말소된 주민등록을 복구하는 것이다. 윤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도와주는 코디네이터 노릇을 하고 있다. 쉼터 규율도 자율적으로 정했다. 한 달에 한 차례 월례회의를 한다. 신자들이 헌옷과 반찬도 지원한다. 6~7년 동안 노숙생활을 하며 간경화와 당뇨가 심해졌던 이아무개(60)씨는 “쉼터로 들어온 뒤 술을 단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있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지난겨울을 못 넘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소자 17명 가운데 5명은 구청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고 달방을 얻어 독립했다.
최 신부는 이들을 ‘노’자를 빼고 ‘숙자씨’라고 부른다. 선교를 겸한 봉사를 일컫는 아웃리치엔 신자들도 참여한다. 월~금요일 다섯 조로 나눠 밤 11시부터 빵과 따뜻한 차를 들고 노숙지로 찾아 나선다. 쉼터 노숙인들도 동행해 ‘옛 동료’들을 설득한다. 최 신부의 노숙자 명단에 오른 이가 지금까지 127명에 이른다. 광주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는 지난해 11월 오리털 침낭 90여개를 나눠주기도 했다.
신자 이복순(60)씨는 “밤이면 신부님이 노숙자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눈 뒤 꼭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뭉클했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숙자씨들이 세상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