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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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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재다, 보물상자를 열었다…큰일 났다, 나를 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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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60766_P_0.jpg-1.jpg» 과천 서울대공원 유인원사의 오랑우탄 보람이가 유리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행동을 하고 있다. 과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애초 가진 것 없이 태어났는데 살다 보니 큰 빚까지 지고 말았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했고, 끝내 아무도 살지 않는 깊은 숲으로까지 숨어들게 되었다. 그 인생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사내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어둔 숲을 이리저리 내달렸으리라.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황망하게 헤매다 문득 멀리서 번쩍하는 무엇인가가 눈에 띄었다. ‘저게 뭐지?’ 아, 그건 아주 커다란 보물상자였다. 순간 주변을 재빨리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하긴 며칠 동안 지내봤지만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횡재다. 보물이 넘쳐나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뚜껑은 채 닫히지 않았다. 그런데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연 순간 사내는 기겁하고 말았다. 보물상자 안에 웬 남자가 한 사람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뚜껑을 열다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사내는 당황해서 허리를 깊게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나는 상자가 비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이 계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모쪼록 제 무례함을 용서해주십시오.”
 사내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사죄했다. 그리고 그 보물상자에서 부리나케 멀어져갔다. 백 가지 비유를 담고 있어 ‘백유경’이라 불리는 경에 담긴 이야기다. 
 그런데 보물상자 속 사내는 대체 누구일까. 뜻밖에도 상자 속에는 사람이 아니라 거울 하나가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벌판을 헤매다 보물상자를 만난 사내가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었을 때 그는 보물 위에 놓인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본 것이었다. 눈이 마주칠 수밖에….
 이 경에는 항상 이야기 끝에 각각의 소재가 비유하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도망친 사내는 인생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다니는 우리들 보통 사람이다. 들판을 헤매고 다닌다는 것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보물상자는 성공이나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에, 보물상자를 발견했다는 것은 자신이 바라던 지위에 올랐음을 비유한다. 
 그런데 그 속에 거울이 들어 있다는 설정이 절묘하다.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보물상자에서 물러난다는 비유는 또 어떤가. 성공을 향해 나를 잊고 죽어라 뛰어왔고, 그래서 갖은 고생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는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그만 ‘나’를 봐버린다는 게 문제다. ‘나’를 본다는 것, 불교에서는 이것을 아상(我想)이라고 말한다. 내가 누군데…, 이만하면 이젠 내 목소리도 좀 내고 살아야지 않겠어, 라는 생각이다. 
 세상이 조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요즘처럼 어지러운 적도 없었을 게다. 돈에 눈이 멀어서,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해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다 못해 주검까지 훼손하고 있다. 어버이와 엄마라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살포시 떨렸던 단어까지 그 결이 짓이겨졌다.
 이럴 때 이른바 사회 저명인사, 지식인들이 등장해서 양심과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목소리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동경해 마지않던 이들까지 우리를 실망시키고 한술 더 떠서 부정과 범죄에 앞장선다. 
 얼마나 고생해서 그 자리에 이르렀던가. 그런데 황량한 숲에서 보물상자를 어렵사리 발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쩐지 그들은 성공하고 나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것 같다. 보이는 거라곤 그저 자기 자신뿐인 게 틀림없다. 그들의 타락은 세상을 절망의 나락으로 더 깊이 밀어 넣는다. 뿐이랴. 명예와 성공의 절정에서 빳빳하게 고개 들고 찾아오는 ‘나’에 사로잡혀 결국 스스로도 보물상자에서 물러섰다. 경전에서는 그런 이들을 바보라고 부른다.
 이미령/불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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