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수좌 서운암 성파 스님
도자기판 11년간 16만장 구워팔만대장경 인쇄서예, 옻칠, 염색도 독학으로 ‘경지’산수화 그리고 시조문학상 제정물도 산도, 안 좋은 것까지도 스승암자 주변 장르 다른 9개 작업장행복한 삶?“나도 감당 못하는 주제에 어찌 아노”왜 출가를 했냐고?“옛날 일이라 다 잊었어”“벽에 틈 생기면 바람 들어오고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끼여”
큰스님은 스스로를 ‘풍운락자’(風雲樂者)라고 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즐겁게 떠다닌다는 뜻이다. 자유롭고, 거침이 없다. 예로부터 스님을 ‘운수’(雲水)라고 불렀다. 구름처럼, 물처럼 자유로움을 부러워해서 일컫는 말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와서인지, 웃음조차 해맑다. 마치 동자승이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까르르’ 환하게 웃는 표정이 노스님의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
“승려가 좋은 것이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거야. 뭐든지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어. 그것이 제일 좋아.”
물론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번뇌를 극복한 용맹정진의 용기와 인내가 있기 때문이다. 노스님은 그냥 웃는다. 부럽다. 그래서 여쭈었다. “어찌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나요?” 스님은 미소를 머금으며 “나도 감당 못하는 주제에 그걸 어찌 아노”라며 답을 피해 가신다.
“뭐가 어려워. 손 이리 내봐.”
“자꾸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이 많아요.” 다시 파고들었다. “음식도 먹기 싫은 것은 안 먹으면 돼. 왜 필요 없는 생각을 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지?”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기가 어려워요.”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끼는 거야. 행과 불행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야. 하나야. 붙어 있다는 말이지. 몸에 병은 외부에서 오지 않아. 몸 안에 있다가 약해지면 발병하는 거야. 병균과 저항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거지. 모든 것이 하나야.”
“이해하기 쉽지 않네요.” “뭐가 어려워. 손 이리 내봐. 여기가 어디야? 손등이지. 여기는 어디야? 손바닥이지. 이건 뭐꼬? 손톱이지. 이건? 손가락이지. 근데 이건 모두 뭐야? 손이지. 손이잖아. 한 개인데 달리 부르는 거야. 장님들이 코끼리 만지고, 서로 아무리 자기가 옳다고 우겨도, 그건 코끼리야. 하나잖아.”
그래서 다시 여쭈었다. “스님이 하신 예술도 불교 수행과 하나인가요?”
» 성파 스님이 자신이 11년에 걸쳐 구운 8만여개의 도자기판으로 만든 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걷고 있다.
통도사의 수좌이며 조계종 원로 스님인 성파(77) 스님은 각종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활동을 해왔다. 우선 오랜 세월 불교 수행과 함께 한 서예는 ‘성파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경지에 올라 있다. 팔만대장경을 도자로 구워낸 도자기의 달인이다. 옻칠로 각종 민화를 그리는 옻칠 그림의 고수다. 천연 염색도 한다. 중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전시회를 했을 만큼 산수화를 그렸다. 시조문학 발전을 위해 ‘성파시조문학상’을 제정했다.
“나는 예술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즐겁게 재미난 것을 한 거야. 남들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할 뿐이야. 다 남들의 이야기지.” 의문이 들었다. 스승은 누구일까?
“누구에게 배웠냐고? 나 밖의 모든 것이 스승이야. 예술 대상 자체가 스승인 셈이지. 자연이 큰 스승이야. 물가에 가면 밑바닥이 보이는 물의 맑음이 스승이고, 바위는 그 단단하고 야문 것이 스승이야. 산에 올라가면 산이 보여주는 고상하고 높은 기상이 스승이지. 안 좋은 것마저 모두 스승이야.”
3년 만에 중국 미술관에서 전시회
실제로 스님은 서예를 옛 ‘법첩’(본받을 글씨를 담은 책)을 보고 혼자 써왔다. 팔만대장경을 도자기로 굽기 위해 일본에 갔으나,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아 혼자 터득해서 깨지지 않는 넓은 도자기판을 11년간 16만장 만들어 대장경을 인쇄했다. 삼천도자불도 구었다. 도자 대장경을 건물 전체를 옻칠한 목조건물인 장경각에 보존해두었다. 장경각의 기와도 손수 구운 도자 기와이고, 단청도 구워서 옻칠을 했다. 짙은 색 일색인 옻칠도 천연색 물감을 합쳐 화려한 전통적인 그림으로 재탄생시켰다. 옻칠 불화, 옻칠 불상도 스승 없이 혼자 터득했다.
» 성파 스님이 그린 옻칠 불화. 옻칠 불화는 거의 영구히 색깔이 변치 않는다고 성파 스님은 설명한다.
오직 산수화만 스승이 있다. 산수화를 배우고 싶어 3년간 베이징을 오가며 중국 국가 1급 화사(왕원팡)에게 산수화를 배웠다. 그 스승도 스님을 보더니 “그림은 배우는 게 아니다. 본인이 그리는 거다.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없다”고 말해 그림책 한 권을 사서 베껴 가면, 한마디 가르침을 주는 그런 방식으로 산수화를 배웠다. 그리고 3년 만에 중국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했으니, 예술적 소질은 타고난 듯하다.
스님은 경남 양산 영축산 주변 700만평을 다 품고 있는 통도사가 ‘내 집’이라며 크게 웃는다. 스님이 머물고 있는 서운암 주변엔 모두 9개의 작업장이 있다. 모두 다른 장르의 예술을 하는 작업장이다.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장도 있으니 부러울 것 없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왜 출가를 했냐”는 물음엔 단호하게 “옛날 일이라 다 잊었어”라고 끊는다. 살짝 더 여쭈었다. “집안에 종교인이 더 있나요?” “없어. 집안에서는 출가를 반대했어.” 한국전쟁 끝나고 바로 해병대에 입대한 스님은 선임들이 모두 인천상륙작전이나 백마고지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군 생활은 고생이라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험했다고 한다. “행자 생활이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엔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 힘들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이 힘들어지는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큰스님을 뵈니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여쭈었다. “스님, 윤회는 정말 있는 건가요?” 중생이 죽은 뒤 그 업에 따라 또다른 세계에 태어난다는 윤회사상은 현세를 사는 일반 대중에겐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지만, 불교에서 윤회는 결국 괴로움이기에 영원한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건 수행을 한다.
야생화 가꾸고 사찰음식 보존 작업도
스님은 곤충을 비유한다. “곤충이 가을이 되면 알이나 애벌레 형태로 겨울을 나. 겨울을 지난 곤충에게 ‘겨울에 내린 눈을 봤니?’ 하고 물으면 보지 못했으니 답을 못할 거야. 보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와 같아. 윤회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없다고 해도 부정 안 해. 관심을 주지 않을 뿐이야. 단지 인과를 이해하면 돼.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기지.”
40대에 통도사 주지를 지낸 스님은 서운암 주변에 차밭과 들꽃 축제를 열 만큼 광대한 야생화 단지를 가꾸었고, 손수 콩을 길러 오래된 장독 5천여개에 간장과 된장도 담갔다. 사찰음식 보존 작업도 하니 하루하루 쉬는 날이 없다.
“건강의 비결은 뭔가요?” 하니 “건강을 생각하고, 건강을 위하니까 건강이 안 좋아지는 거야. 일해봐. 굳이 헛걸음질(걷기 운동)하지 않아도 건강하지”라고 대답한다. 비탈진 산길을 걸어 내려가신다. 뒷모습은 청년이다.
양산/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