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었다. 주고 나니 행복했다. 더 주고 싶었다. 하지만 줄 것이 없었다. 마침내 더 줄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죽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죽음도 두렵지 않다. 죽음도 기다려진다. 그는 개신교 목사다. 하지만 목회는 안한다. 막노동을 한다. 하루 하루 공사판을 다니며 몸으로 벌어서 산다. 하지만 행복하다.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정식(57·사진) 목사는 모르는 이에게 콩팥을 하나 떼어주었다. 또 다른 모르는 이에게 간의 반을 떼어 주었다. 또 다른 모르는 이에게는 골수를 기증했다. 헌혈도 186번 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가장 많은 장기를 기증했다. 30년째 하루 한끼만 먹고 산다. 하지만 얼굴에 붉은 기운과 윤기가 흐를 정도로 건강하다. 남들은 가족에게도 하기 힘든 장기 기증을 그는 어떻게 ‘마음껏’ 하고 사는 것일까?
신장·간·골수 세가지 기증은 유일
고교 때부터 월2회 헌혈 186번
췌장기증도 등록...수혜자 기다려
스승 유영모·김흥호 목사 본받아
하루 한끼 먹으며 막노동 ‘헌신’
“대통령 표창 수치…왜 버티는지”
지난 25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최 목사는 멀리 지붕이 보이는 청와대를 보며 한숨지었다. 그리곤 반납하고 싶다고 했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장기 기증을 많이 했다고 받은 표창장이 수치스럽다고 했다. “빨리 하야 해야 하는데, 저리 버티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지.”
최 목사는 고교 때부터 한달에 두번씩 헌혈을 했다. 첫번째 장기 기증은 1993년 7월이었다. 우연히 본 장기 기증 안내서를 보고 콩팥을 기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땐 콩팥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두 개가 있는데 하나 기증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결심했어요.”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동갑내기 여성이 그의 콩팥을 기증받고 새 삶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뒤인 2003년에는 간을 기증했다. 콩팥을 기증했던 한 스님이 간도 기증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도 곧바로 간 기증을 결심했다. “두 개의 장기도 기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서슴치 않고 간 기증을 했죠.” 두 번째 기증에 대한 가족의 반대는 컸다. 특히 어머니의 걱정이 심했다. 최 목사는 형에게 가족동의서에 서명해줄 것을 부탁했다. 신장 수술에 기꺼이 서명했던 형은 간 이식 수술을 하는 의사가 예정보다 늦게 오자, 잘됐다며 병원을 나가버렸다. 최 목사는 스스로 서명하고 수술대에 올랐다.
2005년엔 골수(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백혈병에서 고생하던 고교 3년생이 자신의 골수를 기증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에서 콩팥과 간을 동시에 기증한 이는 25명인데, 골수까지 기증한 이는 최 목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비(B)형간염 바이러스가 몸 안에 침입한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헌혈이 거부될 때까지 186번의 헌혈도 했던 그는 2006년엔 췌장 기증 등록을 해 기증 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최 목사는 사후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시신 기증은 물론 조직 기증도 약속했다. 조직 기능은 기증자와 이식자의 조직형이 일치해야 가능한 장기 기증과 달리 누구에게나 이식할 수 있어, 1명의 기증자가 최대 100명의 생명을 살리 수 있다고 한다. 죽어서도 아낌없이 다 주는 것이다.
최 목사는 “왜 그리 기증을 하냐?”는 질문에 “식물의 열매가 익으면 열매의 양분을 다른 생물에게 주듯이, 줄 수 있을 때 주고 싶다”고 했다.
전북 김제 평범한 농부의 3남3녀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난 최 목사는 부모가 모두 기독교도인 모태신앙이었다.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개신교 종교철학가로 유명한 다석 유영모의 제자였던 고 김흥호 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와 개신교 수도공동체인 동광원을 설립한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을 스승으로 만나며 희생과 봉사의 삶을 꿈꾸었다. 신학대를 졸업한 뒤 한 때 수도원에서 생활하기도 했던 그는 스승의 삶을 좇아 1일1식을 하고 4시간씩 자며 영성수련을 했다고 한다.
200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한 때 필리핀 한인교회와 서울 쌍문동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그만 두었다. 목회보다는 어려운 이를 돕는 데 더 관심이 많았던 그는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했고, 졸업한 뒤 떡집·요양센터·출판사 등을 운영했다. 그의 꿈인 무료 요양원 운영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최 목사는 “진리를 추구하는 길은 욕심을 버리고, 나와 남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신약 성경> ‘로마서’ 12장 1절을 이야기 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또 ‘사도행전’ 20장 35절도 이야기 했다.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해야 할지니라.”
최 목사는 “유교에서도 가장 큰 효도는 바로 살신성인”이라 했으니, 자신의 장기 기증이 인(仁)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능력 안에서 남을 돕는 일을
계속 할 작정이다. 남의 돈을 빼앗아 재단을 만들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 안에서 남을 돕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비록 막노동을 하지만 마음엔 평화가 가득합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최 목사. 내 안에 가득한 이기심이 부끄러워진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