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우화작가인 이반 크릴로프가 지은 우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관 구석에 빈 자루 하나가 굴러다녔다. 하인들이 종종 발걸레로 사용한 자루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자루가 아주 귀중한 신분이 되었다. 주인이 자루에 금화를 넣었다. 주인은 친구가 찾아오면 자루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주인이 어쩌다가 자루를 열면 다들 아양을 떨며 자루를 바라보았다. 자루 옆에 나란히 앉을 때는 자루를 가볍게 두드리거나 쓰다듬기도 했다. 그러자 자루가 오만해지며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엉터리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옳지 않아. 저 사람은 바보 같아.” 이렇게 모든 것을 판단해댔다. 사람들은 자루가 지껄이는 말이 비록 귀에 따가워도 들어주었다. 그런데 도둑이 자루에서 금화를 꺼내 가자 자루는 다시 구석에 버려졌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사라졌다.
어떤 사실을 실제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현상을 착각이라고 한다. 사람의 뇌가 오감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1초에 1100만개 정도인데 그중에 정작 뇌에 저장되는 것은 40개 정도다. 결국 사람의 뇌에는 보고 들은 정보가 편집되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믿는 것만 남게 된다. 이때 생기는 정보의 오류가 착각이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자기중심성의 본능이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은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과 내가 아는 것을 남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내가 아는 것이 상식이고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듯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평가는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착각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착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삶의 동기부여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착각 속에 삶을 바꾸는 힘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안 된다고 하는 일도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은 동기부여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 착각은 사람을 더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다. 실제로 인간이 개발한 대다수의 것이 착각이라는 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착각은 원활한 소통에 방해물이 된다. 자칫하면 자신의 감정과 주장을 우선시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만 믿다가 상황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뭔가 의사소통이 답답하고 불편하다면 잠시 자신의 인간관계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절대로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리고 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회복의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