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후 배달 일을 했다. 생활이 흐트러질 때마다 지국에 들어갔다. 지국은 배달하는 이들이 함께 먹고 함께 자는 공동체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새벽일 하고 함께 밥 먹는 그곳은 내게 지치고 가난한 마음으로 찾아가던 수도원이었다. 민주화와 언론개혁에 함께한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배달 뒤에도 <한겨레>를 몇 부 더 가져가 마주치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낮에도 도서관, 식당 같은 데 두곤 했다.
<한겨레> 독자는 까칠한 사람들이 많았다. 배달이 늦거나 분실되면 바로 전화가 왔다.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한겨레>를 기다리는지 알기에 밥 먹다가도 뛰쳐나가야 했다. <한겨레>는 목마른 이들의 샘물이었다. 몇 년 동안 배달하는 사이 배달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격려해주는 독자들이 점차 늘었다. 배달 노동이 주목받고 존중되는 것 같아 뿌듯했다. 당시 <한겨레> 독자들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집,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나 연립주택, 그것도 높은 층에 많이 살았다. 주로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는 내겐 배달이 녹록지 않은 집들이었다. 좀 높아도 여러 집이 있으면 좋으련만, 열심히 4, 5층 뛰어올라 겨우 한 집. 이렇게 몇 번 배달하고 나면 다리는 후들거리고 마음마저 출렁거렸다. 그나마 오토바이를 타면 가파른 길에는 꽤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자전거가 좋았다. 오토바이는 일을 좀 편하게 해주고 시간도 줄여주지만, 운동이 주는 상쾌함이나 기도하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았다. 속도감에 마음이 쉽게 홀리고, 긴장된 집중을 일으켜, 더 지치게 만들었다.
배달 끝나고도 잠이 덜 깨 몽롱한 적도 많았다. 속도감에 홀린 마음과 긴장된 집중은 노동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위협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배달하는 게 노동과 기도에 늘 훨씬 도움 되었다. 청소기 돌리지 않고, 몸 굽혀 비질, 걸레질하는 게 마음을 더 밝게 만드는 것처럼. 약간 불편하고 늦어도 몸이 지닌 힘으로 하는 노동이 소중하다는 게 느껴졌다. 모든 큰 가르침과 수행 전통은 한결같이 노동으로 하는 기도와 단순 소박한 삶을 소중히 여긴다.
‘밝은누리’로 함께 살면서 같은 걸 깨닫는다. 공동체는 먹고 입고 자고 일하는 일상이 곧 기도와 수행이 되도록 힘쓴다. 가능한 기계에 의지하지 않고, 함께 힘 모아 밭 생명 돌보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든다. 마을밥상에서 함께 밥 먹고, 아이들 돌보고 가르치며 더불어 산다. 서울 강북구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서 농촌과 도시가 서로 살리는 마을공동체를 일구었다.
밥상 부산물은 뒷간 똥오줌과 함께 밭으로 돌려보내고, 씨앗과 만난 그것들이 먹을거리가 되어 다시 밥상으로 돌아온다. 더불어 사는 삶은 노동을 상품으로 전락시키지 않게 돕는다. 그런 노동과 기도는 마음을 깨우치게 하고, 꿈을 오늘로 살게 하는 힘이 있다.
최철호 밝은누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