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걸으며, 오롯이 나를 마주한 시간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온 엄선용·엄승재 부자
<복음과상황> 오지은 기자 ohjieu317@goscon.co.kr
*사진: 엄승재 제공
이번 ‘그들이 사는 세상’ 주인공은 작년 10월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을 다녀온 부자(父子)다.
지난 10월에 24일간 생애 처음으로 오롯이 둘이서 걷는 휴가를 보낸 엄승재(43) 독자와 그 아버지 엄선용(75) 선생. 애당초 계획에 없이 급작스레 아버지를 아들이 모시고 순례길에 들어섰으나, 결국 아버지가 순례길의 첫 코스인 피레네 산맥에서 아들 배낭까지 짊어지고 걸었다는데…. 연로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다녀온 특별한 여행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아버지는 무려 강원도 횡성에서 영하의 날씨와 눈을 뚫고 인터뷰 장소인 양평으로 달려와 주셨다!)
― 어떻게 아버지랑 단 둘이, 그것도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을 다녀올 생각을 하셨나?
승재: 직장 안식 휴가중이어서 원래는 혼자 다녀오려고 했었다. 지난 일도 되돌아보고 앞으로에 대해서도 생각하려고. 4, 5년 전부터 머릿속으로 여행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떠나기 2주 전인가, 같이 가자는 아버지 제안이 왔다. 너무 촉박하기도 하고 처음엔 거절했었다.
선용: 4, 5년 전부터 염두에 둔 여행인 줄은 나는 몰랐다.(웃음) 혼자 여행을 가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아서 같이 가려고 했는데, 내심 방해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 두 분이 다른 마음이었나 보다.(웃음) 그런데 어떻게 같이 가신 건지.
승재: 아내한테 말하니까, 평생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 갈 기회가 어디 있겠냐고 하더라. 아내한테 혼났다. 아버지가 말수도 적으신 분인데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신 게 걸리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비행기 표 한 번 더 끊고, 아웃도어 쇼핑몰에서 산 거 한 번 더 사기만 하면 될 것 같아서 같이 가는 걸로 바꿨다. 내가 아내 말을 잘 듣는다. 아버지는 며느리 공이 있었는지는 모르셨다.
선용: 정말 몰랐다!
― 아버지 연세가 있으신데, 걷기 여행이 부담스럽진 않으셨나.
선용: 평소에 늘 걷고, 어릴 적부터 아침운동으로 쭉 걸어왔기 때문에 별 걱정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신당동에서 남산 중턱 꼭대기까지 걸어오르곤 했었다. (신당동에서 남산 꼭대기까지 도보거리는 대략 4~5킬로미터다.-편집자)
승재: 아버지보다는 내가 걱정이었고, 걱정이 적중했다. 산티아고를 걷는 중에도 제 뒤에서 걸으실 때면 자세를 똑바로 하라며 잔소리가 많으셨다. 다만, 여행 전에 아버지가 중간 중간 잘 사라진다(?)는 어머니의 경고가 있었는데 정말 그러서셔 몇 번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웃음)
선용: 나는 사라진 게 아니라 앞서 걸으며 구경하고 있었을 뿐인데, 길동무들에게 뒤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찾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리나케 아들에게 돌아갔다. 아주 혼났다.(웃음)
승재: 전화 통화도 자유롭지 않고, 경찰한테 안 통하는 말로 잘 설명할 수도 없고, 정말 미친 듯이 찾았다. 몇 번 겪고서는 아버지가 “조개 표시로 순례 길이 안내되어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 두세 번 정도 위기를 넘겼다.
― 모녀 여행은 많이 들었는데, 사십대 중반의 아들과 칠십대 중반 아버지의 오붓한(?) 부자 여행은 좀 특별하게 다가온다.
승재: 한국 여행객들 중엔 우리가 유일했다. 더 특별한 건 아버지가 아들을 끌고 다니는 바람에 같은 시기 길동무들 사이에선 꽤 유명해졌다. 첫 코스인 피레네 산맥이 정말 난코스였는데, 내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서 그만 무릎에 쥐가 나 주저앉고 말았다. 아버지는 벌써 나보다 훨씬 앞에서 가고 계셨는데, 아들이 주저앉아 있다고 알려주는 길동무들 말을 전해 듣고 뒤돌아 오셔서 내 배낭까지 들고 산맥을 넘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암 환자기도 하셔서 아버지가 안마를 많이 해주시는데, 힘들어하는 길동무들에게도 안마를 해주셔서 정말 인기가 좋으셨다.
선용: 아들이 길동무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봐서, 젊은 사람들끼리 이야기 나누면서 걷느라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하고 앞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같이 걸어오던 아가씨가 나를 만나서 아들이 쥐가 나서 못 오고 있다고 알려줬다. 얼른 내 배낭을 길에 던져 놓고 온 길을 내려갔다. 차라도 구해서 태워 가야 하나 하다가, 선뜻 세우기도 어렵고 하니까 내가 부축하고 배낭 들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 특별한 여행의 추억으로 남았겠다.
승재: 그것도 그렇지만, 아버지와 함께 걷는 기회 자체가 처음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았고, 아버지와 난생 처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다. 여태껏 궁금해도 못 물어봤던 것을 물었고, 여행을 하면 이야기도 더 잘되었다. 아버지가 워낙 말수가 없으신 분이었다. 온유한 품성이셔서 괄괄한 사람들한테 늘 당한다고 생각했었고 그게 가슴이 아팠었다. 이번 여행 중에 처음으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봇물 터지듯 많이 말씀하시더라. 고1 때 아버지의 어머니인 내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산부인과 이름까지 아직 기억하고 계시더라. 아버지의 사회생활 이력에 대해 품고 있는 궁금함도 풀게 되고, 그러면서 이해하게 된 부분도 많다.
▲ ⓒ복음과상황 이범진
― 아버지는 모르던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셨는지.
선용: 글쎄, 물어보려다 못 물어본 건 있고, 지금 아들이 40대 중반이 되는 나이니까 자기 인생을 살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연구하면서 잘 살아가려니 한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면 먹는 게 고생이려니 했는데 정말 맛있는 거 잘 먹고, 아들이 요리도 많이 해줘서 좋았다. 세탁도 도맡아서 하고.
승재: 주로 저녁을 많이 해먹었는데 식료품들이 싸서 왕새우나 연어를 토막으로 사서 스테이크로 구워 먹기도 하고, 순례자 숙소 내 식재료는 공유하니까 흔한 게 스파게티 면이라 스파게티는 정말 쉽게 해먹었다. 아버지가 원래 빵과자를 좋아하시는데 여기선 빵이 정말 싸고 맛있으니 좋았다. 나중에 감기 기운이 돌 땐 아껴놓은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 콜롬비아에서온 부자 Mauricio와 Mejia (사진: 엄승재 제공)
― ‘순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들이 있다면?
승재: 작은 마을마다 어딜 가도 중심엔 성당이 있는 걸 보면서, 야고보 사도가 2천 년 전 이 길을 걸어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러 다녔을 걸 생각하면서,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발걸음이 이 작은 마을들을 바꾸고 전 세계 사람들의 발걸음을 여기로 향하게 한다는 것이, 편히 가도 발이 아픈데 그 먼 길을 오직 걷기만 하면서 숙식할 마땅한 곳도 없이 복음을 위해 다녔다는 것이 새삼 귀하게 다가왔다. 믿음은 그런, 길을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 길을 걸으면서 내 속 깊은 곳에 있는 응어리들이 쑥 올라오기도 했다. 분노한 일들, 증오한 사람들, 상처가 있고 용서가 안 되는 마음들, 계속 그런 것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자기를 만나는 시간,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대면하고 자꾸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걷기만 해도 거기서 오는 메시지도 있고. 복잡한 생각들을 안고 걷는데 점점 걷는 것이 좋아지더라. 매일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이 있고,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안도감. 그 만족감이나 평안함과 뿌듯함으로 위로가 되고 의미가 있었다.
선용: 다양한 사람들이 걷는 길에 나도 동행하면서 이 힘든 길을 단지 즐겁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열 번 온 사람도 있다는데, 기회가 되면 또 가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마지막에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찬송을 부르는 수녀의 노랫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와중에도 정말 천상의 소리 같았다. 한 가운데 향을 퍼트리는 향로에도 감명을 받았다.
*이 글은 <복음과상황>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