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타인 생각에 갇히지 않고 늘 마지막처럼 살았던 선수행자
<법보신문> 알랭 베르디에 | yayavara@yahoo.com
▲ 20대 시절 인도 여행에서 불교를 만난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를 창업한 뒤 선문화를 활용한 상품들을 선보였다.
‘단순함과 명료함’을 강조한 애플사의 IT제품들은 전 세계인의 삶을 바꿔놓았다.
미국의 기업가였으며 애플사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에게도 고난의 시기는 있었다. 1975년,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 입학한지 6개월 만에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자퇴했다. 이후 수개월을 방황하다 동양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향했다. 인도로 떠나기 위해서다.
대학 중퇴 후 인도로 여행
삭발 후 명상하며 불교 매료
고향 돌아와 선불교 만난 후
수행 프로그램도 적극 참여
출가 뜻 접은 후 사업에 매진
선불교 활용해 아이디어 개발
명료하고 간결한 제품 출시
세계에 ‘디자인 혁명’ 일으켜
그는 미국 오리건(Oregon)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리드대학(Reed College) 철학과에 잠시 몸담았었다. 재학시절, 전공 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동양철학이나 종교에 관한 서적들을 들고 캠퍼스 구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가 캠퍼스에서 읽었던 책들은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쵸감 트룽파 린포체(Chogyam Trungpa Rinpoche)의 ‘영적 물질주의를 해부하다(Cutting through Spiritual Materialism)’(1973)와 인도의 영적 스승 파라마한사 요가난다(Paramahansa Yogananda)가 집필한 ‘영혼의 자서전(Autography of a Yogi)’(1946)은 그가 항상 곁에 간직하고 아꼈던 책이다.
잡스가 인도로 향한 첫 번째 이유는 인도의 종교지도자 님 카롤리 바바(Neem Karoli Baba)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잡스가 인도에 도착했을 땐 안타깝게도 그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잡스는 목표도, 목적지도 없이 인도 곳곳을 여행했다. 특히 종교 행사나 의식 등을 지켜보며 자신 또한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도는 수도승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그는 삭발하고 명상을 배우면서 점차 불교에 빠져들었다.
애초 그가 인도로 향했던 이유는 힌두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인도를 여행하며 힌두교의 지나친 차별과 강압적인 율법을 발견했다. 이에 반해 불교는 인류에게 큰 위안을 주고 평화로운 종교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불교에 매료됐다.
특히 잡스는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다는 불교사상에 매료됐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일에 대한 그의 왕성한 에너지뿐 아니라 창조적이면서도 획기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의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잡스는 입양아였다. 시리아 출신의 무슬림 이민자였던 아버지와 미국 국적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갓난아기 시절 부모에게 버려져 폴과 클라라 잡스(Paul and Clara Jobs) 부부에게 입양됐다.
▲ 일상 속 수행을 강조했던 순류 스즈키 선사. 잡
스는 순류 스즈키 선사가 저술한 ‘선심초심’을 통해 선불교를 처음 만났다.
인도에서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잡스를 마중 나왔던 그의 부모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잡스가 삭발을 했을 뿐 아니라 피부가 완전히 검게 그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의 부모님은 물론 잡스 자신도 인도 여행이 그의 인생과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런 예상을 하지 못했다.
불교에서는 인생이란 “변화무쌍한 강물과도 같다. 모든 사물과 생명체는 쉼 없이 변화를 위해 움직임이고 이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한다. 이런 철학은 잡스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불교를 사업에 적용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인의 삶을 바꿔놓는 상품들을 내놓은 회사, ‘애플(Apple)’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도 여행 후에도 잡스는 그곳에서 배운 명상을 계속 이어나갔다. 당시 그가 머물던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에는 선불교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는 일상 속 수행으로 전 세계에 획기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순류 스즈키(Shunryu Suzuki, 1904~1971) 선사가 저술한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1970)을 통해 선불교를 만났다.
▲ 스티브 잡스에게 선불교 가르침을 전한 코분 오토가와 선사.
그는 수행자가 될 것을 고민하던 잡스에게 “그 대신 미래를 바꿀 큰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스즈키 선사의 제자였던 코분 오토가와(Kobun Otogawa, 1938~2002) 스님으로부터 선불교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오토가와 스님은 잡스에게 선불교의 기본 철학과 수행에 관해 명료한 해답을 주었다. 잡스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토가와 스님을 찾아가 부처님 말씀을 새겨듣고 수행을 했다. 불자로서 잡스는 매우 신중하며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명상했다. 당시 미국에 최초로 세워진 선불교센터인 타사자라(Tassajara)선불교센터에서 열리는 수행 프로그램에도 적극 참여했다. 선불교에 큰 매력을 느꼈던 잡스는 훗날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스님이 돼 일본에서 선불교 수행과정을 밟고자 하는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토가와 스님은 그에게 “일본에 가는 대신 캘리포니아에 남아 미래를 바꿀 큰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오토가와 스님은 통찰력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잡스는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미래를 바꿨기 때문이다. 잡스가 만들어낸 상품 곳곳에는 선불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500년 동안 선불교는 불자들로 하여금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절제의 삶을 살도록 이끌었다. 잡스는 타사자라 선불교센터 수행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기업인이자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cson)에게 이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그냥 앉아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들을 구경만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마음이 평화스럽기는커녕 불안상태에 빠질 겁니다. 일을 시작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작은 것에도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직관력은 더 발달되고 사물을 좀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되며 현실감각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이고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매일 수행해야 합니다.”
잡스도 격랑의 시대였던 1960년대 젊은이였다. 히피 운동이 만연했던 시대를 살았던 그는 “환각제 사용조차 나에게는 상상력을 넓히고 창조력을 향상시키는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실리콘 벨리에서 잡스와 마주친 이들에게 잡스는 성질 급하고,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다. 사업에서건 가정생활에서건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친부모에게 버려져 입양이 되었던 경험과 젊은 시절 지나친 방황이 어찌보면 그의 이런 모난 성격에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잡스의 이런 성격이 단순함을 강조하는 선불교에 빠져들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잡스는 언제나 단순한 검정색 옷을 즐겨 입었다. 회사 상품의 모든 디자인에서도 ‘단순함 혹은 간소함’이라는 덕목을 강조했다. 선불교는 그가 제작하는 모든 상품들을 완벽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잡스의 성격은 종종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성격과도 비교된다. 잡스는 고흐가 환생한 인물이었을까?
고흐가 1888년 그린 자화상은 수행자를 닮은 듯하다. 그 자화상을 보면 이런 상상이 그저 우스갯소리는 아닌 것 같다. 고흐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가리켜 “영원히 부처님을 섬기는 스님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라고 했다. 몇몇 미술 평론가들은 “반 고흐는 광기 넘치는 자신과 상반된 수행자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고자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흐 동생 테오는 그를 가리켜 “빈센트는 재능 있고 섬세한 창조자이자, 동시에 무정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고 묘사했다.
이는 잡스의 성격과도 매우 비슷했다. 잡스는 고흐처럼 영적인 것을 갈망했으며 창조적 에너지가 넘쳤던 사람이다. 하지만 고흐와 잡스는 괴팍한 성격과 복잡한 내면세계로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잡스는 졸업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남의 인생을 살기 위해 삶을 낭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생각에 갇히지 말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우리는 그가 만들어 낸 수많은 디자인 혁명을 즐기는 동시에 그가 비교적 짧았던 인생 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해 수행했던 그의 명상에 그 공을 돌려야 할 것이다.
알랭 베르디에 yayavara@yahoo.com
*이 글은 법보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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