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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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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절경보다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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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기자 덕질기③

사람 한명이 천하절경보다 낫다


안나푸르나의 폭포들은 높고도 길다. 배낭보다 무거운 마음의 짐이 오래도록 미끄럼을 타고 쓸려내려간다. 그러니 그 ‘물소리가 장광설이요, 산색이 청정한 몸’이라는 소동파의 시를 어찌 실감치 않겠는가.


그러나 세인에겐 무인지경이 서너날만 계속되면, 그 무엇보다 더 반가운 것이 인간의 목소리다.
미국에서 막 대학을 졸업한 카터 롱과는 며칠 간격으로 가끔 만나 함께 걷다가 헤어지곤 했다. 그러나 청춘이 역시 빠르다. 그가 한 점으로 멀어져갈 때는 ‘무정한 녀석, 뒤도 안 돌아보네’라며, 가슴 한켠이 허해진다. 그러니 누군들 반갑지 않으랴. 할머니 두 분이 지나가자 삶은 감자 한 알씩을 건네주니, 안나푸르나 여신 같은 미소를 보내준다. 80살 인도인과 77살 독일인으로 친구라는 이 두 할머니는 5416미터 토롱라 고개에서 다시 만났다.


가장 오래 함께한 이들은 달바와 마르코 모자였다. 독일에서 음악교사를 했던 60대 후반의 달바는 3년 전 고향 브라질로 돌아가 살고 있고, 아들 마르코는 스페인에서 일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모자가 랑데부한 것이다.

가이드와 포터를 대동한 마르코는 대포만한 카메라를 메고 다녔다. 쓸만한 사진들은 그때 마르코가 찍어 보내준 것이다.


덕33.jpg

*브라질에서 온 달바와 조현 기자가 걷고 있는 모습을 달바의 아들 마르코가 찍었다.



4000미터를 넘자 랜드슬라이드가 나왔다. 바위와 돌이 굴러떨어지고 자갈이 미끄러운 곳이다. 한 트레커가 낙석에 맞아 계곡으로 추락하는 사람을 봤다고 했다. 달바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토롱페디에서 점심을 먹고 한시간 낮잠을 자고도 하루 더 쉬어야겠다며 손을 들고 말았다. 쓸쓸하지만 또 혼등할밖에.


4950미터 하이캠프는 꽁꽁 얼어 있었다. 숙소에 가니 서양인 두 명에 이어 잘생긴 한국인이 들어섰다. 마낭에서 본 적이 있지만, 한국인들과 거리를 두느라 내가 시선을 피했었다. 그런데 숨쉬기 어려운 고지대에서 다시 보니 산소를 만난 듯했다. 30대 초반인 서성일씨는 한국에서 길이 안 보여 카트만두로 날아와 중고 핸드폰을 팔며 무역을 개척했단다. 새 세상, 새 일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장하고 대견해 두 달간 아낀 김과 고추장을 내놓고, 다음날 새벽 토롱라를 넘는 동지가 됐다.


온천수가 있어서 산행의 피로를 씻는 타토파니에 가니, 달바 모자, 카터 롱, 서성일이 다 있었다. 그날 밤 우리의 마음이 설산보다 환해졌다. 혼등이 짜릿한 것은 설사 못난이라도 천하절경보다 더 낫다는 진실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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