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무슨 일이라도 척척, 우리마을 건달
*영화 <홍반장> 중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 도움을 주는 영화 속 홍반장.
‘밝은 누리’에는 그런 홍반장이 여럿 있다. 특별한 직업 없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이런 사람을 재밌게 마을건달이라 부른다. 직장에 매이지 않고 적게 벌면서 하고 싶은 일 하거나, 휴직과 실업 상태에 있는 이들이다. 불안과 무기력한 소외감에 휘둘리기 쉬운 세상이지만, 오히려 마을에 활력을 주고 새로운 삶 꿈꾸며 산다.
마을서원에서 함께 공부하거나, 밭일, 집짓는 일, 밥상, 교육 등 마을에 필요한 일을 도우며 지낸다. ‘밝은 누리’로 함께 살며 주목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삶을 지탱하고 윤택하게 만든다는 거다. 마을에 갑작스런 일이 생길 때, 중요한 첫 대처는 모두 이들 몫이다. 이사, 집수리, 장례, 혼인, 마을잔치 등 중요한 마을 일 어디에도 이들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서울 인수마을을 토대로 홍천에 농촌마을공동체를 분립할 때, 필요한 역할에 따라 귀촌 모둠을 꾸렸다. 농사짓고 집지을 사람, 학교 세우고 가르칠 사람, 문화와 복지 관련 된 일 을 할 사람, 그리고 마을건달! 마을건달은 어느새 우리 꿈을 현실화 하는 주체로 설정되어 있었다. 더불어 사는 삶은 쓸모없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생명들에 의해 이뤄진다. 규격화 되거나 상품화 되지 않은 작은 힘들이 모여 서로 살리는 삶을 만들어 간다.
서울과 홍천마을에 늘 술 취해 있는 이웃 분이 계신다. 서울 분은 그렇게 많은 도시인들 속에서 늘 홀로이고, 정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취직 못하고 돈 없고 늙고 병들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이 된다. 문제는 이런 생명 소외 현상이 구조적으로 이뤄진다는 거다. 홍천마을에 계시는 분은 늘 술 취해 있지만, 어떻게든 밭일을 하신다. 마을 분들이 서로 잘 알고, 함께 하는 마을 일과 놀이에 소외되지 않는다. 백발 할머니들도 밭일하고 함께 놀며 젊은이들을 여러모로 가르치신다. 생명 소외가 구조화 된 곳에서 노인은 불필요한 존재로 외면당하지만, 더불어 사는 마을에서 노인은 마을이 살아온 역사와 지혜를 품고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청년실업과 조기퇴직, 중독과 우울 등 우리시대 중요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는 마을공동체 삶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명을 상품으로 대하고 효율과 경쟁을 기본 처세로 삼게 하는 구조와 생활양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밝은 누리’로 더불어 살며 깨닫는 것은 아무리 연약한 존재라도 이미 늘 다른 생명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깨닫고 공유하는 만큼 감격과 활력이 넘친다. 더불어 사는 삶은 연약한 생명이 행복한 만큼 행복한 거다. 가난하고 애통한 자에게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노자는 쓰임이 존재를 결정하지만, 비어있음이 그 쓰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같은 깨달음 속에 있으리라.
최철호(밝은누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