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기자 덕질기]
2.분노와 애욕의 벼랑 끝에 서다 4.설산의 화려한 나신보다 반가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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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빛이 어둠을 부수고 찬란히 빛나는 체험에 일단 사로잡히면, 이를 외면하고 살기는 어렵다. 안나푸르나에서의 고산증이나 고행의 기억쯤은 간데없고, ‘죽어도 좋다’고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사 복직을 앞두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쿰부히말라야로 향했다. 이번엔 당시 광주5·18트라우마센터장이던 강용주 원장과 함께였다. 5·18 당시 변두리를 맴돌던 나와 달리 그는 겨우 한살 위인 고교 3학년생이었지만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켰고, 의대 본과 1학년 때 끌려간 감옥에서 14년을 보냈다. 그를 초대한 데는 그가 병원문을 닫고 1년 안식년을 가져서이기도 했지만, 짠하고, 어쩐지 미안해지는 마음을 덜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짙은 운무가 가득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가운데 명상하는 도중 갑자기 개어 모습을 드러낸 쿰부체 로라 에베레스트 로체
그런데 강 원장은 300여미터 이상은 올라간 적이 없다고 했다. 인왕산에 올라가본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배낭도 등산화도 없다고 했다.
많이 쉬고 충분히 놀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는 ‘사부작산행’엔 그런 초보라도 문제 될 게 없다. 나만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문제라면 절망의 무게다. 그는 이념 같은 건 일찌감치 버렸지만 강압에 굴하지 않으려 ‘비전향’을 택해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서 차마 인간으로서 당해내기 어려운 고문과 징벌을 당해야 했단다. 그가 그 어두운 지하에서 나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걷는 것이다.
나처럼 가이드나 포터 없이 가도 별문제는 없다. 그러나 정상 등반을 위해 어두운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마지막날엔 경험 많은 가이드나 포터를 따라붙어야 한다. 그래서 고참 포터를 고용한 미국인 부녀와 말을 터, 함께 5550미터 칼라파타르에 올랐다.
그런데 푸모리봉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드러난 것도 한순간, 짙은 안개가 덮쳤다. 100여명의 등산객들도 추위와 바람을 못 이기고 내려갔다. 한시간을 더 버텼으나 안개는 걷힐 기미가 없었다. 하산해야 했다. 미국인 부녀가 포터를 따라 앞서가고, 강 원장도 저만치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갈 수 없었다. 설산의 서광이 강 원장을 가뒀던 그 징벌방의 절망을 부수길 소원하며 빌었다. 내가 눈을 감고 명상하는 사이 저 아래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들렸다. 짙은 운무가 한순간에 걷힌 것이다. 쿰부체 로라 에베레스트 로체 4대 명산이 화려한 나신을 드러냈다. 결코 웃지 않던 강 원장이 두 손의 족쇄가 풀린 듯 모처럼 호쾌하게 웃었다. 내게 가장 큰 선물은 여신의 나신이 아니라, 그의 웃음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안개가 갑자기 걷힌 설산을 배경으로 미국인 부녀와 강 원장(왼쪽 둘째)과 조현 기자(맨 오른쪽).
*새벽 고랍셉에서 칼라파타르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
*칼라파타르 정상에 선 조현기자. 뒤에 푸모리의 위용이 드러나있다.
*설산에 핀 야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