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그것답고 제값을 하면 아름답다
으레 입에 붙어 쓰는 말인데도 ‘이게 어떻게 생겨났고,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일까?’하고 어원을 따져보는 내 버릇은 아마도 아주 오래된 듯싶다. 공연한 질문으로 할머니, 어머니를 어지간히 성가시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우물가에 버려진 푸성귀를 헤집는 오리들을 가리키며 “자덜은 꽤엑 꽤엑 허는디 왜 오리라고 헌대요? 꿩은 꾸엉 꾸엉 허고 웅께 꿩이라고 허잖여요”라거나, 다디단 오디를 한입 가득 밀어 넣으며 “어메, 겁나게 다네 잉! 오지게 단게 오디게라고 허까요?”라고 묻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내게 퉁 반, 이뻐 죽겠다는 눈흘김 반을 섞어 피식 웃으시며 말했었다. “쪼깐 것이 머시 그리 궁금헌 게 많다냐? 걍 오리는 오리고 오디는 오디겄지이~!” 마지막 음절을 그리 높고 길게 늘여 빼는 건 더 이상 시답잖은 질문을 사절하겠다는 경고지만 그 약발은 졸지에 떨어지고 만다. 이 나이 들어 지금도 그런 식의 호기심이 발동한다는 것은 재앙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암튼 오늘은 유치원 꼬맹이들도 알 법한 영어 단어 ‘ugly’로 한나절을 꼬박 보냈다. 문득 이게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영어 어원사전에 따르면 ‘무서움, 두려움’을 뜻하는 노르웨이 옛말 ‘ug’에 영어 ‘like’(~와 같은, ~하는 경향이 있는)를 붙여 ‘ug-like’ ‘무서운, 혐오스러운’이 되고 다시 ‘ug-ly’, ‘추한, 험악한’ 등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좀 어수선한데, 줄이면 미운 것은 두려움, 공포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그 단순한 영어 단어를 따져보게 된 것은 오래전에 타계하신 은사님의 강의를 회상하면서였다.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아름답다는 게 뭔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달가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름다운가? 예쁜 형색이나 고운 소리를 아름답다고도 하지만 고운 마음씨, 갸륵하고 칭찬해 마지않을 행위 또한 아름답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이 말은 그렇게 바깥 대상이나 내면의 심성에도, 즉 안팎에 다 쓰이는 거지. 예전에 조지훈 시인이 그러더라고. ‘아름-답다의 아름이 실은 공(公)의 반대인 사(私)를 뜻하는 우리말인데, 아름답다는 건, 그러니까, 그것이 그것답다는 뜻’이라고. 말하자면 꽃이 꽃다울 때, 나비가 나비다울 때 아름답다는 거야.”
지금 와서 조지훈 시인의 온 저작을 훑어 정확한 출처와 그다음 설명을 확인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꽃다움, 나비다움, 인간다움에서 꽃, 나비,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져 머리가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 그러나 더 이상 미학 강의 없이도 우리네 개돼지는 이미 알고 있다. 때와 자리를 어기거나 가리지 않고, 제값을 못 하면 추하고, 혐오스럽고, 무섭다. 누군가 똥이 똥답고, 독사가 독사다운 것도 아름답다고 우겨대도 틀린 건 아니다. 딴은 그렇겠지. 하지만 그럴 때 직관에 능한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은 정말 사납게 눈을 흘기며 외치시겠지. “으이그, 저 모지리, 꼴값허고 자빠졌네!”
재연 스님(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