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히말라야 트레킹기
5.발길을 멈춰야 보이는 것들
» 3천미터대 아름다운 마을 쿰정의 아이
통증이 만성이 되면 오직 통증을 벗어날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러나 내가 어디를 가든 통증은 나를 놓치는 법이 없다. 그럴 때는 피하기보다는 또 하나의 통증을 가해주는 것도 때론 대안이 된다. 평소 통증에 시달리던 몸을 산소가 희박한 고산으로 데려간 것은 ‘설상가상’이었다. 그런데 물 밖에 나온 올챙이처럼 숨을 헐떡이는 동안엔 숨쉬는 게 힘든 때문인지 등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고산증은 고통이기보다는 희망이고 희열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산 트레킹을 너무 희망적으로만 말한 걸까. 쿰부히말라야를 내려와 카트만두대학에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파견 교수로 있는 임종인 전 의원과 며칠을 보내며 고산 트레킹을 권했다. “고산 트레킹 무경험자도 가능할까”라고 묻는 그에게 “팔십 먹은 할머니도 하더라. 걱정할 거 하나 없다”고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얼마 뒤 문자가 왔다. “당신 얘기만 듣고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하다가 준비부족으로 생고생을 겪었다”고 했다. ‘포터와 갔는데도 4천~5천대에선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나처럼 포터도 없이 갔으면 어쩔 뻔했으랴. 그러니 20~30대 젊은이라면 모를까 가급적 가이드와 포터와 함께 가는 게 좋다. 가이드와 포터 둘 다 고용해도 하루 40~60달러면 된다. 내 경우 별나게 자유인 기질이 강해 훠이훠이 홀로 다니길 좋아하지만 말이다.
고산증은 폭탄주 20잔을 원샷으로 마시고 밤새 방바닥을 기었던 초년 기자 시절 고통의 재생이랄까. 그러니 도전은 하되, 무리는 금물이다.
히말라야에 가보면 애초 생각과 달리 마음이 급해진다. 남이 가는 정상은 가야겠고, 부담은 되니, 숙제를 빨리 마치고 하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평생 쫓기듯 해온 숙제를 히말라야에 와서까지 해야 한다면 미친 짓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히말라야에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휴심할 때라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 눈을 피해 절벽 위로만 다니는 산양들과 20분 넘게 어울려 놀았고, 야크 떼와 놀멍쉬멍 갔다. 하산 때 3천 고지쯤 내려오면 그동안 땀에 찌든 몸도 가려워져 하산할 마음이 더 급해진다. 이때가 바로 큰마음 먹고 한 박자 쉬어줄 때다.
쿰정의 모습과 아이들
3천미터대에서 하산을 멈추고 쿰중이란 곳으로 들어갔다. 설산과 바위로 둘러싸인 3천 고지에 그런 평야와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니. 3일의 꿈이 다디단 곳이었다. 선경은 산 넘고 물 건너가 아니라, 바로 쉼표 뒤에 있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