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대인들의 희생지역에서 무릎 꿇고 독일 나치의 잘못을 비는 빌리브란트 총리 사진 <연합뉴스>
독일에 살면서 가장 긍금하고 관심있던 일은, 인류를 대상으로 세계 역사상 전대미문의 잔혹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어엿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법치국가가 될 수 있었나 하는 것이 었습니다. 작금에 한국의 국민들이 뜨겁게 요구하는 적폐청산, 그릇된 과거를 제대로 잡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력,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들은 물론 종교, 문화, 교육, 사회 전반에 걸쳐 그들은 노력했고, 지금도 그릇된 과거를 청산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숱한 노력 중에서도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상기되고 시간이 흐를 수록 더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0년의 일이었으니 당시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제게 이 소식이 와 닿았는지, 유신으로 치닫는 당시의 한국에 보도가 되기는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사진만 봐도 목이 울컥할 정도로 감동을 주는 사건입니다.
1970년 12월, 당시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종전 25년 후 폴란드를 방문한 첫 총리로서, 1943년에 있었던 유대인 게토 (격리지역)의 항쟁과 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탑에 헌화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떨궜습니다! 동행했던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고 당황해서 쥐죽은 듯 침묵했습니다. 한 나라의 총리가 스스로 무릎을 꿇다니요? 보도진도 놀랐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고 합니다. 굴욕적이며, 과장된 처사라고 비난하는 쪽이 반, 옳았다고 한 쪽이 반이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바로 이 방문을 통해 동유럽과의 화해의 길을 열 수 있게됐고, 다음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을 순간적으로 행동에 올겼던 것이라고 후에 회고했습니다. 그 자신은 오히려 나치독일의 억압을 받았지만, 용서를 빌지 못하는, 빌고 싶어도 빌 수 없는 독일국민을 대표해서 무릎을 꿇었답니다.
» 이승연 화백의 그림
빌리 브란트 총리의 행동은 물의를 일으킨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독일국민 스스로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아주었다고 평가됩니다. 국민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독일인임이 창피했던 국민들에게, 과거를 인정하고 책임지고 용서를 청함으로서 오히려 당당한 미래가 가능하다는 용기를 준겁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은 엄청난 용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용기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실어 새로운 관계,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게 합니다. 진정한 '한강의 기적'은 그 때에 꽃을 피우고 아주 실한 열매를 맺으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