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중심가에 있는 지구 최초의 대학 아카데미의 모습. 오른쪽이 소크라테스, 왼쪽이 플라톤이다.
두 철학자는 원시적 신화 속에 잠자던 인간의 이성을 일깨운 대표적 인물이다.
"그리스라는 경탄할 만한 민족이, 희망봉을 도는 항로를 발견한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사고방법의 혁명을 가져왔다."
훗날 18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칸트의 찬사다. 고대의 인도나 중국에도 철학은 있었지만 통상 고대 철학이라면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이를 이은 고대 로마 철학이 철학의 조상으로서 위상을 독차지하다시피 한다.
철학의 탄생지를 보면 그리스인의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외지인과 '소통'이 낳은 선물인데도 말이다.
기원전 7~6세기 자연철학이 출발한 곳은 지금은 터키 땅인 에게 해 항구 도시 밀레토스다. 에게 해는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페니키아 등 오리엔트의 선진 문물과 활발한 해상 왕래가 이뤄진 장소다.
철학은 소크라테스란 인물의 출현으로 대전환이 이뤄진다. 탐구 대상이 자연에서 인간 영혼, 선, 덕과 같은 인간의 본성과 윤리적 문제로 바뀐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글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플라톤과 크세노폰 그리고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남긴 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영국 출신의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 화이트헤드(1861~1947)는 말했다.
"2000년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에 각주(풀이)를 단 것에 불과하다."
'플라토닉 러브(플라톤식 사랑)'는 독신자이자 이상주의자인 그로부터 유래했다. 플라톤은 신비주의자다. 그의 묘사를 보면 감각과 마음이 쉰 상태의 황홀경을 체험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를 '이데아'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수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불교식으로 보자며 플라톤은 선승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승이다. 플라톤은 인문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이다. 플라톤은 범인이 체험하지 못한 정신적인 상태를 체험했지만, 이것만 절대화해 민중의 다양성을 무질서라며 두려워했다. 그들 속에도 천심이 있고, 모든 생명에게도 지혜의 본성이 관통함을 가볍게 여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바닷물을 마셔봐야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큼 억지스런 면이 없지 않다. 그는 사실적 관찰자이면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치아의 개수가 적다는 등 많은 실수를 범했다.
이상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고 관통해야 한다. 정신은 하늘에 있되 땅으로 내려온 석가나 그리스도처럼, 고뇌에 찬 현실을 부둥켜안고도 마음은 천상을 노닐었던 소크라테스처럼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행복한 시절에는 아름다운 장식에 불과하나, 불행한 시기에는 피난처가 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0~1511년)
그림 정중앙에 있는 두 인물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 옆에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파하는 소크라테스가 보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아래쪽 계단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는 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다.
인생의 불안과 고통에서 피난처를 찾는 이들은 그래서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그러나 영혼의 휴식을 얻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신이 보낸 등에(gadfly)'라고 했다. '등에'는 쇠파리처럼 시끄럽고 톡 쏘는 곤충이다. 자장가를 불러주기는커녕 잠들거나 취해 있지 못하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아테네시민들은 그의 경고음을 꺼버리고 편히 잠들고 싶어 그를 죽였다. 그래서 아테네의 황금시대는 내리막길로 접어 들었다. 삶에서 성찰의 등을 꺼버리면 영혼이 깨어날 길은 요원하다. 조직과 국가도 피곤하다고 경고등을 없애면 추락을 면키 어렵다.
헬레니즘 시기에는 아시아, 남이탈리아, 아프리카 북동쪽의 광대한 지역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그리스 철학이 펼쳐진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이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자족)주의, 회의학파 등이다.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아테네가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와 로마에 먹혀, 자기들이 크게 기여했던 국가가 사라지자 철학의 관심을 '개인 구원'에 집중했다.
<그리스 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9장 '인생 철학 교실, 아테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