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식사하는 밝은누리 공동체 사람들. 사진 밝은누리 제공
“또 뭘 하려고 해?” “마을식당 하려고요.” “웬 식당! 다 망하는 거 보면서 어쩌려고 그래!” 마을밥상을 시작할 때, 이웃집 아저씨가 염려하며 한마디 하신다. 이미 어린이집, 마을학교 시작할 때도 비슷한 걱정을 하셨다. 조용하던 마을이 아이들과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것 보고는 신기해하셨는데, 새로운 일을 볼 때마다 여전히 걱정이 앞서시나 보다.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북한산 아래 한적한 마을, 2년 넘긴 가게가 별로 없다. 문 닫은 식당을 임대해 또 식당을 차리려 하니 걱정하실 만도 했다. 마을밥상은 눈에 잘 띄는 간판도, 손맛 좋아 보이는 주방장도 없다. 요리도 뒷정리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 유기농 밥상이라 재료비가 많이 들고 밥값은 싸 수익 내기 어려운 구조지만, 지난 12년 동안 마을을 든든히 살리고 있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점심과 저녁밥을 함께 먹는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퇴근 후 저녁 밥상에 참여한다. 마을밥상에서 함께 먹으니 집집마다 김치냉장고나 큰 냉장고가 없어도 된다. 혼수품으로 갖춰 두던 비싼 그릇도 필요 없다. 손님이 오면 마을밥상에서 밥 먹고, 마을찻집에서 차를 마신다. 밥상과 찻집이 공동 부엌이고 거실이 된다. 집 부엌과 거실 공간이 줄고 비용도 준다. 자동차를 같이 타고, 생활용품 나눠 쓰고, 책 모아 마을도서관에 두고 함께 보니 이래저래 생활비도 줄어든다.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두렵게 만드는 취업경쟁, 도시 생계비, 혼인 자금이라는 것 속에는 많은 허상이 있다. 허상에 쫓기다 보니 늘 불안하고 돈에 주눅든다. 홀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다. 문제를 느껴도 다른 삶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된다. 대학을 두 번 그만둔 청년이 있다.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에 간 건 부모님 바람을 따른 거였다. 행복하지 않았다. 취업경쟁에 발목 잡힌 창백한 대학 문화도 싫었다. 다시 마음먹고 들어간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잃어버린 자기를 찾고 싶은 갈급함이 더 컸다. 새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며 용기를 얻었다.
마을수도원에서 기도하며 지난 삶을 돌아봤다. 언제 행복을 느꼈던가? 의외의 곳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취사병으로 밥할 때 행복했단다. 마을에서 밥 짓는 일을 하면 행복하겠다고 나섰다. 밥상지기로 함께하다 주인장이 되었다. 밥상을 차리다 혼인해 아이를 낳고, 귀촌해 새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밥상지기도 청년 때 밥상 주인장이 되었다. 회사에서 경력도 쌓이고 나름 인정받고 만족했지만, 더 근원적인 생명운동에 관심 갖고 밥상을 차리는 일을 시작했다. 밥상을 차리다 혼인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산다. 농촌에서 살아갈 새 꿈을 꾼다. 자기를 찾는 것은 주어진 대로 사는 것보다 모호하지만, 깨어 있게 한다. 생명을 살리고, 꿈을 현실로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