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죄인들이 구원받는 방법
<당당뉴스> 지성수 목사 지성수 sydneytax1@hanmail.net
한 번은 돈이 아주 많은 분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뜻밖에 나에게 “선생님은 돈 걱정이 없으시지요?”라고 물어서 순간적으로 당황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을 듣고서야 그 말은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남들은 자기에게 돈이 있어 좋겠다고 하지만 자기는 잠시도 돈 걱정에서 떠난 날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돈을 이렇게 처리하고, 저 돈을 어떻게 굴리고, 당좌를 어떻게 막고, 첫 번째 안이 안되면, 두 번째 안으로 해야 되고’ 등등 자나 깨나 돈 걱정뿐이었다는 것이다.
이 분은 지난 날을 생각하면 사업 하느라고 스트레스 받는 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흔히 내가 만났던 돈이 많은 분들의 머리 속에서는 ‘돈’과 발음이 비슷한 ‘똥’만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이도 이 분의 머리 속에는 ‘돈’과 ‘나름대로의 생각’이 들어 있는 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돈 때문이 죄인이 된다. 어떤 이는 100불이 없어서 죄인이 되고 이건희는 10억 불이 없어서 죄인이 되고 빌 게이트는 100억 불이 없어서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돈이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영화 <타짜> 중에서
자본주의 안에 살면서 자본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레닌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만든 공산당은 '만국의 자본이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엥겔스와 맑스가 신약 성경의 바울의 쓴 글을 읽으면서 초기 공산당 조직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루카치와 지젝은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을 하나의 당의 형태로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고 보았다. 즉, 바울이 로마 제국에 대한 대안적 정치학으로 새 정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것이 바로 에클레시아, 소위 현재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만이 제국의 정치학을 벗어난 형태의 정치적 비전, 정의에 대한 인식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바울의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그들이 생각했던대로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돈 앞에서 이길 장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와 아프칸에서 각국의 아까운 젊은이들과 죄 없는 민중이 수 없이 죽어나가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전쟁에서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굴까? 간단하게 말해서 무기를 만드는 세력이다. 무기는 전쟁이 벌어져야만 팔리는 상품이 아닌가?
나는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미국의 군수물자 조달 능력에 그야말로 까물어칠 뻔 했다.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도 나트랑 부두에 산처럼 쌓여 있는 군수물자들. 한 마디로 월남전은 돈을 퍼붓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현금을 퍼부으면 오죽 좋으련만 그러면 준 사람에게 남는 것이라도 있을텐데 돈 대신 돈으로 만든 폭탄을 퍼붓는 전쟁이었다.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과 경쟁이 되는 것은 돈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은 존재 할 수가 없으니 가능한한 돈이 적게 필요한 사회, 즉 공동체적인 삶을 건설하는 것이 대안이다.
호주의 한 공동체를 방문했더니 차고에서 1.000불을 주고 산 헌 차를 고치고 있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차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 헌 차를 싸게 사서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동체들은 가급적 소비 생활을 피하고 노동을 하며 자급자족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옷도 직접 만들어 입거나 빈민들을 위해서 자선 기관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중고품들을 사서 세탁해서 입는다.
그들이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자본주의적 삶의 가치와 방법을 포기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이야말로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들이다.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news.com)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