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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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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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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니라 행실을 볼 따름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요즈음 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65세 넘은 노인들은 선거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세금은 한 푼도 안내면서 조금만 아파도 부리나케 병원엘 가서 국가의료보험 축내는 주제에, 투표 엉뚱하게 해서 제 자식 손주들 앞길 막는 짓만 한다는 겁니다.


북에 퍼준 돈으로 핵무기, 미사일 만든다며 햇볕정책을 나무라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정치인들 말장난 탓이 큽니다. 햇볕 때문에 핵 개발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햇볕을 없앴기에 미사일을 쏘는 겁니다. 우리가 햇볕정책을 계속했더라면 북이 전 세계의 극심한 정치, 경제제재를 무릅쓰고 핵무기, 미사일 개발에 나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북풍한설 몰아치면 나그네는 당연히 옷깃을 단단히 동여매지만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면 외투를 훌훌 벗어젖힌다는 게 이솝우화 아닙니까.


전처럼 북과 오손도손 왕래하고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갔더면 지금쯤 남북은 물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서로 을러대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싸드 배치문제도 그렇습니다. 이에 반대하면 종북이요 안보관이 의심스런 사람으로 몰아대는 것 역시 말의 유희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싸드로는 남한 핵심 지역인 수도권을 전혀 방어하지 못합니다. 이런 마당에 중국, 러시아 견제라는 미국의 군사적 이익을 위해 우리 땅에 미군 미사일기지를 설치해 국제적 분쟁 소지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햇볕정책이나 싸드 배치문제를 둘러싼 말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이 땅은 구한말 때처럼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목사 신부님들이 아무리 고상한 천사의 말씀을 전해도, 도 닦는 스님들이 무슨 고차원의 깨달음을 열심히 논파해도 전처럼 그렇게 그 말씀이나 깨달음의 거미줄에 걸려 허둥대지 않습니다. 그 분들이 쳐놓은 거미줄 말고 그분들의 현재 행실, 그 분들이 여지껏 걸어온 삶의 행적에 눈길이 갑니다.

말은 그저 말일 뿐.


말로는 그렇게도 열렬히 하느님을 받들어 모셨던 유대교 수석 사제와 율법학자들이건만, 하느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신 예수가 당신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했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러셨습니다.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하였다 해서당신은 하느님을 모욕하고 있소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을 믿어라.”


스승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받아야 할 그 제자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들처럼, 믿어야 할 신조(信條), 을 둘러싸고 천주교, 동방정교, 무수한 개신교 종파들로 분열을 거듭하여 서로 죽이고 죽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관용과 평화의 종교라는 불교도 그보다는 덜했지만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삼유(三有)는 오직 가명(假名)일 뿐 진실한 법체(法體)가 없는데도 이 임시시설로 말미암아 분별하고 허망하게 계탁하네.” 대승경전 <능가경>에 나오는 구절로 이 세상만물이 연기되어 고정불변의 실체란 없고 그저 임시방편으로 개념, 이름을 말로 붙였을 뿐인데, 그러고나니 그 말에 상응하는 실체가 있는 양 착각을 한다는 뜻입니다.


삼유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실론 섬의 소승불교도들과 인도 본토에서 이 <능가경>을 들고 쳐들어온 대승불교도들은 서로 엎치락 뒤치락 처절한 싸움을 벌려 상대방 책을 불사르고 추방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스승 붓다의 연기(연기) 가르침의 해석을 둘러싸고 제자들이 서로를 해치는 건 연기의 가르침에 정반대되는 행동입니다.


조선 말엽 내노라는 성리학자이자 권력자인 송시열은 <중용(中庸)>에 대한 주자의 해석에 반론을 편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敵)으로 몰았다는데 이 역시 하늘의 명을 따르라는 중용의 가르침과는 영 거리가 멉니다.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넘어선, 그리고 있슴과 없슴을 넘어선, 그리하여 어떤 모양을 띔 없이 그저 자비와 사랑으로 나타나는 이치(理致)’를 일컬어, 각 문화마다 혹은 하느님이라, 혹은 공()이요 부처라, 혹은 도()요 하늘()이요 역() 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러니 그 이라는 손가락 말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 곧 사랑과 자비를 바라보고 이를 행할 일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간단히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라 했습니다.

말은 우리의 소통 수단이요, 우리가 본디 하나로 묶여 있슴을 보여 주는 징표입니다.

우리 필부필부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정치인, 종교인, 선생님들은 말 가지고 먹고 삽니다. 그렇긴 하지만 말은 그저 제대로 행함으로 이끄는 방편일 따름이니, 정치인이 아무리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말을 하여도, 신부님이 아무리 거룩한 기도의 말씀을 하여도, 스님이 아무리 도를 깨쳤노라 오도송을 읊어도, 나는 그 거미줄에 걸리지 아니하고 그 분들의 행실을 볼 따름입니다.


김 형 태 변호사(공동선 발행인)

<공동선>. 5, 6월호 머리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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