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 즉 하느님 뜻으로 예수를 잉태했던 어미 마리아가 불렀던 그 노래는 예수가 교만한 사람을 흩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며 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권력자를 빈손으로 떠나보낸 자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자신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세상과 사람을 전혀 달리 보는 관점을 가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늘 우리의 개념으로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가 꿈꿨던 세상은 이전 세상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흔히들 인간에게 보수주의가 본성상 더 적합하다고들 말한다. 익숙한 것을 수용하고 낯선 것을 배척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사인 까닭이다. 보수주의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 보편적 모습일 뿐이다. 그럴수록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은 참 어렵다. 새로운 사유 습성을 창조해 그것을 지배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즉 본능을 거스르는 일인 까닭이다. 성서의 예수는 우리에게 이 길을 제시한다. 그 일, 곧 우리를 다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 말할 뿐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한마디로 본능을 넘어선 사랑이 이기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성서는 거룩한 패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을 역주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성서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그 패배 안에서 나아갈 길이 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이 오려다가 문득 멈춘 그 자리, 그 암담한 고개를 결코 포기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성서의 텍스트인 것이다. 바로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거룩한 패배의 역사가 꽃피운 절정이다. 마태가 전하는 예수의 족보 속에는 창기의 피가 흘렀고 이방인의 아픔도 있었으며 억울한 여인의 한도 서려 있고 배고픔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런 예수가 가슴에 사랑을 품고 머리에 하느님 나라라는 지도를 갖고 우리 곁에 오신 것이다. 족보 속에 담긴 인간 불행의 역사를 끊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그 심지를 갖고 그 지도에 따라 살아갈 존재라는 것이 성탄의 뜻일 것이다. <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이정배 지음, 모시는사람들) 중에서 *이정배 교수는 1955년 7월 15일 서울에서 출생했고 어린 시절 잠시 시골에서 자란 경험이 있다. 대광(大光) 중고등학교에서 기독교 정신을 배웠으며 영락교회와 평동교회에서 행복한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다. 이후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입학했고 토착화 신학 전통을 배웠으며 동대학원에 진학하여 一雅 변선환 선생을 사사했다.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 5년 남짓 유학했고 그곳에서 유교와 기독교 간의 만남을 주제로 긴 논문을 썼다. 1986년 모교 교수로 부름 받아 후학들과 20년 이상을 함께 지냈다. 그간 한국 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동시에 素琴 유동식 선생님을 모시고 한국문화신학회를 창립하여 10여년 이상을 이끌어 왔다. 1990년 서울에서 열렸던 JPIC 대회의 자극으로 생태신학에 눈을 떴고 토착화 신학과 생태(환경)신학을 한국적 생명신학이란 이름하에 연결 짓고자 애써 왔다. 이 선상에서 종교와 과학 간 대화의 중요성을 숙지했고 이 주제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쓰기도 했다. 鉉齋 김흥호 선생님을 통해서 多夕 유영모 사상을 접한 것을 큰 축복으로 알고 있다. 그 덕으로 多夕학회의 일원으로서 多夕을 연구해 왔고 그 결과로 이 책을 엮을 수 있었다. 향후 서구 신학은 물론 일본 교토 학파를 능가하는 多夕학파의 신학 형성에 일조할 생각이다. 마지막 관심은 신학사, 과학사 그리고 예술사를 아울러 서구 기독교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기독교의 근본을 추구했던 故 李信 박사님의 ‘영의 신학’ 덕분으로 이런 꿈을 갖게 되었다. 이를 위해 어려운 일이겠으나 주역에 대한 공부도 해 볼 생각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독서와 기도 그리고 노동이 아우러지는 ‘顯藏 아카데미’를 꾸미는 일도 삶의 몫으로 알고 준비 중이다. 우리 시대 대안교회인 겨자씨 공동체와의 만남을 소중한 인연으로 알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다. 그동안 출간된 10여권의 저서 중에서 『한국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연구』(기독교서회, 2003)가 기독교 출판대상을, 『켄 윌버와 신학』(시와진실, 2008)이 문화관광부우수도서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기독교 이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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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의 생명과 종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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