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들에게 병의 상태나 향후 진행방향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 주는 것을 통상 ‘나쁜 소식 전하기’라고 말한다. 난 이 말이 마음에 안든다. 물론 병이나 죽음이 기쁜 소식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병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또 그 병이 앞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을 나쁜 소식이라고 하면 그 누구도 나쁜 소식을 환자에게 알려주는 것을 불편해 하기 마련이다.
죽음 교육이나 호스피스 강의를 가서는 늘 강의를 듣는 대상자에게 물어본다. ‘당신들이 어느 날엔가 질병이 걸리거나 혹 죽음에 이르는 임종 말기가 되면 여러분에게 가족이나 의료진이 진실되게 상태를 이야기해주기를 원합니까?’ 거의 예외없이 ‘예’라고 대답한다. 그럼 또 묻는다. ‘그러면 여러분은 최근에 여러분 주변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이 그런 상황일 때 백프로 진실되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까?’ 그러면 대답은 거의 ‘아니요’이다. ‘나쁜 소식’을 못 전하겠단다. 왜 그럴까. 분명히 그 사람들도 당신들처럼 알고 싶었을텐데....
위암으로 사망하신 배씨 아저씨는 기존의 병원에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31년 동안 내 아내와 두 아들에게 권위 있는 남편, 아버지로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병이 걸리니까 특히 치유할 수 없는 암이 걸리니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만 빼놓고 지들(의료진과 가족들)끼리 쑤근거리고 결정한다 나는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껴서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다. 마치 내가 집안의 붙박이 장이나 통나무로 취급당하는 것 같아 31년 동안 헛 살았다는 생각이 들고 인생이 허무해진다’ 왜 우리와 함께 살았던 가장을, 아버지를 우리 집안의 대들보로, 기둥으로, 삶의 중심으로 이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식이라며 질병이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스스로를 붙박이장이나 통나무로 취급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떠나게 하는 것일까. 이렇게 가족을 떠나보내고서는 남겨진 이들은 늘 후회를 한다.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하는 데, 미안하다고 용서를 청했어야 하는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보냈어야 하는 데....
사망자의 27.9%가 암으로 사망한다. 암이라는 병은 치료할 기회도 주고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느끼면서부터 가족들과 함께 이별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기도 한다. 사별가족 모임을 하다보면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나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한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호스피스에서 가족을 떠나 보낸 분들을 부러워한다. 당신들은 치료도 해줘보았고 떠날 것을 알고 이별준비도 하지 않았느냐면서 부러워하던 그들은 나중에는 그들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할 것 다하고 보낸 당신들은 뭐가 그리 아쉽냐고... 내 남편은 아침에 출근했다가 교통사고로 즉사하여 돌아오지 못했다고, 등산을 가겠다고 힘찬 발걸음으로 대문을 나선 딸이 실족사로 영 이별을 하게 되었다고, 수학 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3년이 지나도 그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지 않았다고....
아쉬운 이별이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떠나가는 이와 남는 이를 위해 진실을 공유하며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