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마을 전남 해남에서 감자캐는 농사일을 돕고 있는 법인 스님
산중을 찾아온 벗들이 차담을 하면서 품격있는 삶을 말한다. 많이 배우고 좋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과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인생의 후반부를 명예롭지 못하게 맺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겠다. 품격있는 삶은 모두의 바람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남에게 크게 비난받지 않는 삶은 마음먹기에 따라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이웃에게 믿음과 존경을 받는다면 더없이 훌륭한 인생 성적표이겠지만, 비난과 외면을 받지 않는 삶도 그런대로 무난한 성적표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난한 삶도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이 세상사의 현실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사회라는 그물망이 욕망의 외적 확장과 경쟁을 제어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히말라야산을 황금으로 가득 채운다고 해도 한 사람의 욕심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하겠는가.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넘치고 있는 시대에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모략하고 곤경에 빠뜨리는 일들도 볼품없는 우리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최근 어느 정당에서 발생한 제보 조작의 사건 또한 높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뻔한 거짓말로 세상을 속인 것이다.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저런 짓 하려고 그 많은 공부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만도 하다.
왜 이성과 지성을 가졌다는 인간이 품격을 잃어버릴까. 그 주요한 원인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것에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떤 규칙을 정하여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한다. 지금도 절집에 내려오는 스님들의 잔잔한 일화는 자신을 다스리고자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어느 큰 절의 주지를 지낸 어떤 노스님은 지금도 새벽 도량석을 손수 하신다. 도량석이란 새벽 3시에 일어나 목탁을 치고 염불하며 경내를 도는 일이다. 당연히 출가 연수가 낮은 신참이 하는 일이다. 노스님에게 왜 새벽 도량석을 손수 하시느냐고 여쭈었다. 게으름을 누르고 부지런한 습관을 기르고 겸손한 몸가짐을 갖추고자 하기 때문이란다. 또 나에게 불경의 진수를 가르쳐 준 스승님은 개인의 방에서도 가사와 장삼의 예식복을 입고 한여름에도 경전을 독송한다. 누가 보지 않아도 삼가면서 마음에 경건함을 깃들게 하고자 하는 깊은 뜻을 읽는다.
중세 가톨릭의 수도원 수도자들의 겸손하고 당당한 태도는 다름 아닌 자발적 청빈에 있었다. 영주들이 토지를 기부해도 그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황무지를 개간하며 자족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어느 신부님은 항상 통장과 수중에 현금 30만원을 넘지 않게 한다고 한다. 자발적 규칙을 통하여 유혹과 욕망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높은 도덕과 자족의 삶은 자신을 당당하고 품격있게 한다. 요즘 내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는 인생길에서 실수하지 않는 법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오르지 못할 나무는 오르지 말자’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규칙이 좋은 격을 만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