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의 '적정선'은, 편안한 듯하나 실상은 피상적이고 공허하다. 공동체에는 '적정선'의 관계를 넘어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사진 정동철 제공
적정선 너머의 샬롬고지전의 기념비
잠자리에 누웠는데 어둠 속에서 아내의 이런저런 푸념이 흘러나온다. 옆집 자매와 점심 식사를 함께했는데, 마음이 상한 모양이었다. 음식이 넘쳤으면 좋았겠지만 모자라서 생긴 문제였다. 살림살이에 익숙지 않은 새내기 주부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자려는데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단순히 낮에 아내가 겪은 속상함에 대한 깊은 공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막 출항한 배와 같은 공동체가 항구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의사소통에 적신호가 들어온 느낌이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시계를 보니 아직은 희망이 보이는 자정 전이었다. 그날 밤 두 자매는 관리사무소 앞에서 단둘이 만나 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일화는 울산광역시 언양읍 반천리 일대에서 전해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공동체가 수시로 되새김질하는 이유는 공동체 내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나 다툼을 유발할 만한 불씨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이런 불화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상기시킨다. 어느 전쟁이든 교두보가 될 만한 고지를 점령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한두 가지쯤은 전해 온다. 우리 공동체의 갈등 해법은 이 고지에 남겨진 기념비적 사건으로 일축된다.
공동체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우리를 만드신 이의 섭리를 따라 살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거창한 미션들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삶의 궁극적 지점은 행복이다. 만약 이 땅에서의 미션의 끝지점이 행복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우리를 기만한 것이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내 아버지 집에 우리가 쉴 곳이 많다고 하셨으며, 이 땅에서 고난의 행보를 할지라도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지기 못할 것이라고 보증하셨다.
물론 그 행복은 개인에 국한된 단순한 행복은 아니다. 그의 나라의 행복은 자기를 부인하여 전체의 행복을 경험하며 지금의 가시밭길을 지나 최종적으로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우리의 전 여정과 영역의 주인이신 주님이 항상 함께하심으로 가시밭길 같은 고난의 시간을 신비로운 치유의 손길로 잊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또한 최종적 미래의 시점에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매순간 또는 최종적으로 행복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소박한 꿈을 꾸며 함께 살아보려고 모였는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공동체를 방문하는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내부 갈등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어떤 갈등이 있으며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이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역시 갈등은 피하고 싶은 것이고, 관계는 어려운 것이며, 나는 그런 상황을 넘어설 자신이 없으니 좀 쉬운 방법은 없는지 묻는 건 아닐까? 누군들 다툼이 즐겁고 갈등이 익숙할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심성 안에는 모두와 잘 지내고 싶은 의지가 있다. 그래서 적정선을 지키고 싶어한다.
미워하지 않을 거리, 원망하지 않을 거리, 부딪치지 않을 거리… 그만큼을 유지하면 별 문제없이 친절한 이미지를 서로에게 남길 수 있다. 멀리서 좋아보였던 사람이지만 다가갈수록 충격과 실망, 수치와 분노에 휩싸였던 경험이 저마다의 적정선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적정선이 보장해주는 관계가 바로 피상적 관계라 생각한다. 겉보기엔 다툼이 없는 편안한 관계인 듯 보이나 실상은 외롭고 공허한 관계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지만 오래 머물러서도 안 될 관계의 상태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적정선을 넘어 충만의 바다에서 항해하는 모험을 권면한다. 성경에 200회 이상 언급한 인생의 이상적 상태인 샬롬은 단순히 별 문제 없이 편안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샬롬’은 완전하다, 온전하다, 꽉 찼다는 뜻을 가진 ‘실람’이라는 명사의 동사형이다. 완전히 꽉 찼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한 번도 이런 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을지 모른다. 오직 ‘관계의 끝판왕’ 삼위일체만이 순도 100%에 이르는 상태를 경험하실 것이다. 우리는 도달하지 못할 경지이다. 갈망하지만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체념으로 항구에 배를 묶어둔들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그러나 바다로 나가지 않는 공허함을 견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엔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우에 정박해 있던 배들끼리 부딪혀 상처를 입는 황당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사실 우리의 체념과 달리 샬롬은 우리를 감싸고 있다. 죄가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 그리고 완성될 그의 나라에서, 그때 샬롬은 우리의 흔한 상태이고 그럴 것이다. 다만 지금이 문제다. 우리가 사탄의 제의에 손을 내밀어 하나님을 거역하기로 선택한 이후부터 관계는 죄로 오염되어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극복할 희망은 없는가? 놀랍게도 우리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묘안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신의 한 수는 십자가이다.
내가 성경에서 만난 예수님은 관계에서 그리 매끄러운 주도자가 아니셨다. 훅 들어오는 돌직구를 던지는 남자였고 쌍욕하는 분이셨고 무리와 다투시는 분이며 구설수에 휘말리는 분이셨다. 요즘 국회인사청문회에 나오셨다면 앞뒤 맥락 없는 기사로 뽑아낼 만한 그의 어록 몇 마디만으로도 인성 검증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일 분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온전한 사랑이었음을 십자가에서 증명했다. 관계를 위해 우리가 노력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해와 모욕과 폭력과 슬픔을 이기고 성큼성큼 다가서는 것이다. 사탄은 다가서는 우리 앞에서 발악할 것이다. 험한 꼴 보지 말고 편안한 관계에 머물러 있으라고 경고하고, 욥에게 그랬던 것처럼 상해를 입힐 것이다. 손해를 끼칠 것이다. 누명을 씌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으려 할 때 진심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잠시 ‘샬롬’이다. 애쓴 시간과 노력을 생각할 때 순간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경험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갈림길에서 헤어진 앞차처럼 서로 이해불가의 상황으로 접어든다. 순간, 그것은 결코 부실한 경험이 아니다. 카메라의 셔터가 순간을 엄청난 시간으로 확장하는 힘을 가졌듯이 두려움 없는 사랑, 완전한 희생, 샬롬의 순간은 우리 마음 속 스냅사진 한 장으로 남아 무모해 보이는 관계의 모험을 감행하게 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독교라고 믿는다. 그리스도가 좋다고 말하면서 관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몸으로 따르지 않는 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싸움의 기술
행복하려고 모인 공동체가 돈독해지기 위해 제일 먼저 익혀야 할 것은 역설적이게도 싸움의 기술이다. 좋은 이미지만 보이려고 적정선을 지키는 것을 넘어설 때 부대끼는 싸움, 이런 우리를 가만히 놔둘 리 없는 사탄과의 싸움, 싸움이 일상이 되고 때로 상처가 깊어 물러서고 싶을 때 품안에서 샬롬의 순간을 꺼내보며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싸움의 기술이다.
공동체 내부에는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다. 한창 아이를 키울 때다 보니 육아 방식에도 불씨는 존재한다. 관대한 부모와 엄격한 부모의 차이는 아무리 적절한 태도를 공유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때론 애들이 심하게 다투어서 어른들을 민망하게 할 때도 있다. 물론 어른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점을 도출해 내기도 전에 아이들은 화해의 공식적 절차도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놀고 있다. 아이들이 취학 시기가 되면, 교육을 논의하던 중 서로의 다른 기대치를 보게 된다. 내 아이가 대상이다 보니 말 한마디에도 예민해진다. 때론 공동체 일의 분배와 재정운영에 대해서도 긴장이 흐른다. 모든 수입을 한 통장에 모아서 사용하다 보니 수입이 부족할 때는 염려로 인해 정서적인 위축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일하는 방식과 이상의 충돌도 더러 있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다. 조금씩 빨리 자주 얘기할 때 큰 싸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이 싸움은 우리의 지략과 화력으로는 맞설 수 없는 것이었다는 걸….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싸움에 능하신 주님이 우리의 수고와 비교할 수 없는 승리를 주신다. 그리고 샬롬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누구도 패자가 아니다. 오직 사탄만이 어둠속에서 슬피 울 것이다.
갈등
갈등(葛藤)은, 문자대로 해석하면 칡과 등나무가 얽힌 상황이다. 밤을 세워 얘기를 해도 쉽게 풀 수 없는 얘기가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칡과 등나무가 얽혀 자라기 전에 자주 조금씩 전지를 했어야 했다. 밖에 나가기 싫은 긴 장마철이 지나고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황량했던 대지가 녹지로 변해 있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다. 여기에 언제 이렇게 밀림이 생겼지? 하며 의구심에 잎사귀를 들춰보면 등나무와 칡이 서로 부둥켜 안고 깊은 갈등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본다.
글머리에서 우리 공동체에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교훈을 경시하고, 관계를 돌보는 자잘한 싸움을 쉬고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다. 방법은 하나뿐 찬찬히 살펴야 한다. 잎사귀 몇 장, 줄기 몇 개를 제거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잎사귀에서 줄기로, 가는 줄기에서 굵은 줄기로, 굵은 줄기에서 뿌리로…. 거기를 잘라야 한다. 그러고 나면 머지않아 밀림이 고엽제를 맞은 양 황폐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작년 이맘 때 우리 공동체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깊은 대화를 시작했다. 중요하고 긴 논의는 한 집에 모여 애들을 재우고 나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시작된다. 그날은 공동체 영토의 매입, 건물의 리모델링, 네 가정의 올인 멤버 이주가 주요 사안이었다. 몇 차례 이어온 화두였고 신중해야 할 주제였으며, 흔쾌히 만장일치가 되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을 얘기였다. 한참을 토론하던 중 내가 먼저 이번 일은 안 되겠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이 일에 찬성하는 몇 사람이 주저하는 다른 이를 설득하는 형국이 이어지면서 무엇인지 모를 긴장이 내재된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설득하여 일이 되게 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 짐을 지고 갈 것이 두려웠다. 공동체의 형이라는 위치가 때론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을 가로 막을 때도 있지만 그런 시간이 지속되어 나도 모르게 피해 의식이 생길 때가 있었다. 솔직하면 다투게 될 것이 분명했지만 나와 아내는 솔직해지기를 연습한다.
나의 싸늘한 감정 표현에 반응은 다양했다. 안도하는 사람, 분노하는 사람, 실망하는 사람 등. 그러다 이야기의 불씨가 부동산 매입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옮겨 붙었다. 서로에 대한 섭섭함, 긴장감, 답답함이 드러났고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갔다. 그 사이 나는 열 번도 넘게 후회했다. 형답지 못한 얄팍함으로 공동체를 다투게 하고 수렁에 빠뜨렸구나 생각했다. 또 한편 우리 공동체를 덮고 있던 풍요와 평화가 무성한 칡과 등나무의 이파리였다고 생각했다.
길고 두려웠던 그날 밤 우리는 어둠 가운데 더듬더듬 잎사귀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뿌리로 문제의 근원을 찾아갔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모두 잘 견뎌 준 덕에 서로의 마음속에는 그럼에도 결별하지 않는다는 배수의 진을 발견하고 희망을 얻었다. 베란다 창으로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아침인 줄 알았고 대화는 끝이 났다. 그날 결정하려 했던 안건들은 모두 부결되었다. 저녁에 만나 아침에 헤어진 우리는 폭탄을 맞은 듯 황폐해졌다.
나도 이제 하룻밤의 강행군으로 3일간 탈진하는 나이가 되어 견디기가 어려웠다. 잠이 없었던 밤을 뚫고 나온 아침, 자가운전으로 출근을 하다가 앞서 있던 트럭의 꽁무니를 박는 사고를 냈다. 분명 앞차가 멀찍이 있었는데 눈을 한 번 감았다 떠 보니 내차의 보닛이 트럭의 적재함 아래에 끼어 있었다. 다행히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서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콕 부딪힌 느낌에 비하면 보닛이 너무 험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차량이다 보니 사고를 낸 나는 미안하여 얼굴을 못 들었고 전 날 함께 밤을 세운 탓에 험하게 찌그러진 차를 보는 전우들의 심정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싸움에서 돌아온 용사의 찌그러진 철모 같은 자동차가 우리의 마음을 이어준 것일까? 아님 다시 한 번 전의를 불사르게 해준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부결되었던 안건들이 극적으로 되살아났고 두렵고 떨리는 영토 매입과 리모델링의 대업이 추진되었다. 쉽지 않은 일이고 심호흡이 필요한 일이며 지금보다 더 많이 다투게 될 것이 뻔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그렇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살림을 합치기 전 반천리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그려냈던 공동체의 연애시절은 지나갔다. 지금의 싸움은 풋풋함과는 거리가 먼 묵은지 같은 갈등들이 원인이다. 그래도 마주앉으면 우린 또 가족이다. 묵은지를 건져 올릴 때마다 막막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돌아가지 않고 싸움을 걸어 볼 생각이다. 하루이틀 싸울 거 아니니까, 헤어질 것도 아니니까 싸우는 거다. 나는 오늘도 품 안에서 그날의 치열했던 싸움과 순간의 샬롬을 꺼내 본다.
정동철
1971년생으로 울산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뒤 IVF(한국기독학생회) 캠퍼스간사로 14년 동안 섬겼다. 지금은 ‘디자인잇다’ 대표로 일하면서, 몸된교회 전도사로 섬긴다.
이 글은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