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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려운 걸 하나요? 내 안에 있는 쉬운 걸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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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려운 걸 하나요? 내 안에 있는 쉬운 걸 해요”
박정은 수녀, ‘여정은 계속된다’ 주제로 강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수진 기자  |  sj1110@catholicnews.co.kr


“왜, 어떤 사람은 고통을 겪은 뒤 큰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고통으로 망가지는 걸까요? 그 밑에 무엇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바로 공동체입니다.”

박정은 수녀는 삶의 여정을 이끌어갈 원동력을 공동체에서 찾았다. 1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지난 19일 오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마련한 독자와의 만남에 초대돼 하느님과 함께 걸어온 여정에서 얻은 보석들을 풀어놓았다. 그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연재해온 칼럼에서 보여준 깊이 있는 통찰은 그의 진솔하고 유쾌한 수다를 만나, 자리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놓기에 충분했다. 박 수녀는 미국 홀리네임즈 수녀회 소속으로,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영성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9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홀리네임스 대학에서 ‘영성과 사회정의’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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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은 수녀 ⓒ문양효숙 기자 


박 수녀는 먼저 영성은 “개인적인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개인 혼자만의 성화(聖化)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수녀는 “내 안에서 정말로 하느님을 만나면, 나의 눈이 열리고 타인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세상은 나와 점점 연결된다”고 말했다.

박 수녀를 하느님과 만나게 해 준 다리는 주일학교 교사 시절 만난 어린이들이었다. 주일학교 캠프에서 며칠을 아이들과 붙어 지내는데, 심술스러운 아이는 심술스러운 대로 예쁘고, 말 잘 듣는 아이는 그대로 예쁘고, 삐치는 아이는 삐친 모습이 너무나 예쁜 거였다. 박 수녀는 캠프를 마칠 시간이 되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게 하늘나라구나.”

“하늘나라는 첫째,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나오는 거예요. 둘째, 쉬운 거예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게 쉬우면, 싸우세요. 줄넘기하고 노는 게 쉬우면, 장애인과 친구가 되는 게 쉬우면, 그걸 하세요. 왜 어려운 걸 하세요? 내 안에 있는 거, 쉬운 걸 하세요. 저는 아이들과 노는 게 제일 쉽더라고요. 어떤 아이도 예뻐할 수 있는 것이 제 카리스마인걸 그렇게 깨달았어요.”

하느님은 아이들을 통해 그를 회심시켰다. 마음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하느님과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그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이 바로 회심이다. 박 수녀는 회심은 “확실히 사람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그를 수녀원으로 이끈 것은 주일학교 캠프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한 아이들, 사람이었다.

‘여성신학자’로서 박 수녀의 길이 시작된 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본당 구조가 예수의 제자로 헌신하려는 젊은 수녀들의 꿈을 무너뜨리는 소리, 또 ‘조당’ 때문에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여성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성체를 바라보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면서, 그는 교회 안의 여성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화재로 그을린 성당을 정리하고, 물이 닿아 한 덩어리로 달라붙은 성체를 나누며 함께 예수를 그리워한 자매들은 그에게 성체성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줬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성서 모임을 하던 자매들은 어떤 성서학자들보다 깊은 묵상으로 박 수녀를 감동시켰다. 특히 그들이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외로움에 공감하며 절절히 들려줬던 이야기는 박 수녀에게 ‘고통스러운 삶에서 인간은 어떻게 의미를 찾아낼까’라는 신학자로서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겼다.

“상처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아요”

박 수녀가 삶의 여정에서 보석 같은 깨달음을 건져 올린 건 공동체 안에서였다. 박 수녀는 한국 수녀회에서 “쫓겨난” 와중에 그해 여름을 무당 공동체에서 지냈다. 본래 굿을 연구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는 무당들의 공동체에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먼저 배웠다.

“상처를 가졌다는걸 알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는 따뜻해요. 반면, ‘나는 상처도 없고 우리 남편은 잘났고, 자식들도 공부를 잘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게 뻥이라면 연민이라도 느껴지지만, 정말로 그런 사람에게는 무너지고 부서진 부분이 없어서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아요.

힐링은 성형수술로 자국을 없애는 게 아니에요. 내 상처 안에 난 자국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했는지, 그 상처를 통해 얻은 보물을 어떻게 남에게 나눠줄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치유가 되는 거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아요.”

박 수녀가 한국 수녀원에 있던 때의 일이다. 가까운 사제에게 박 수녀는 수련을 받는 동안 남에게 상처 주기가 싫어 본래 성격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제는 “그늘이 없는 때가 언제인지 아냐”고 되물었다. 정답은 12시. 그 시간에는 사물을 세워도 그늘이 없지만, 대신 사진을 찍으면 사물이 찌그러지고 작게 나온다. 사제는 “(그늘을 없애는 것은) 참 폭력적인 일”이라면서, “네가 가진 그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네 장점으로 누가 아파도 그걸 겸손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처는 스타킹에 난 구멍과 같아요. 모르고 걷다가도, 알게 되면 그때부터 갑자기 다리가 저려요. 온 사람이 이걸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근데 아무도 안 보거든요! 봐도 괜찮거든요! 그리고 그 정도 구멍은 남들도 다 났거든요! 하지만 그 구멍이 내 것이 되면 참 힘들죠. 사실 그냥 걸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또 알면 어때요? 내가 가리고 걸어가면 오히려 더 티가 나요. 참 위안이 되는 건, 너도 죄졌고 나도 죄졌다는 거예요. 너도 상처가 있고 나도 상처가 있고. 달팽이 뿔끼리 키 재는 거랑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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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은 수녀는 19일 오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마련한 독자와의 만남에 초대돼 하느님과 함께 걸어온 여정에서 얻은 보석들을 풀어놓았다. ⓒ문양효숙 기자 


박 수녀는 상처를 감추려 애쓰거나,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라고 당부했다.

“20~30대에는 실컷 깨져보세요. 야망도 가지고요.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하느님께 알려달라고 청하세요. 그리고 중간에 그 길이 아니다 싶어서 때려치우더라도, ‘이츠 오케이(It's OK)’. 뭐 어때요?

그리스 신화에서 신이 인간을 질투하는 이유는 인간의 인생이 한 번이라 모든 순간이 귀하다는 거예요. 인간이 가진 일회성, 즉 영원히 살지 못함을 신이 질투하는 거죠. 우리가 살아있는 이 순간은 너무 귀한 거예요. 오늘 우리가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고요. 앞으로 우리 삶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박 수녀는 한국 수녀회에서 쫓겨난 아픔이 지금의 삶을 살게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듯 바닥에 떨어지고 난 뒤,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박 수녀는 “내 아픔을 나누면 모든 사람의 아픔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제3세계 출신 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고향에서 겪은 식민잔재와 빈부격차로 인한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다. 공감은 서로의 고향이 먼 곳이 아님을 알려줬다. 박 수녀는 “하느님은 제3세계 친구들을 선물로 주셨다”고 말했다.

당신의 ‘순명’은 어떤 순명인가요?

한편 박 수녀는 강연 후반부에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자신이 바라본 한국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의견을 말했다.

“저희 언니는, 제가 (언니네) 본당 신부님이 틀렸으니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해도 괜찮다고 따라가요. 너무 아름다운 순명이에요. 이것이 미덕인지, 맹점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교회가 참된 순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할 때예요. 여러분의 순명은 세상을 거스르고 하느님을 따르는 건가요? 아니면, 하느님을 거스르고 세상을 따르는 건가요?”

박 수녀는 신앙인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과 하늘나라,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진 경계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에 발을 걸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경계인의 영성”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회에 애정을 갖고 교회 쇄신과 개혁을 위해 싸우는 신자들에게 “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미국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여성사제직을 주장하는 게스트에게 ‘여성을 억압하는 교회를 왜 떠나지 않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여기는 내 교회, 내 공동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저는 교회에서 박해를 받는 사람, 과격한 사람들을 보면 ‘바보, 그렇게도 교회가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사랑하지 않으면 화도 안 나요. 소리 지르거나 미워할 것도 없어요.

우리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화나고 아픈 모습 덕분이에요. 그래서 교회에 대한 분노를 고마워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에요. 아무나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거든요. 못난 모습을 알면서 사랑하기는 어렵죠. 그러니 열심히 싸우세요.”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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