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운 최제우는 처음에는 상제와의 대화체험을 했고, 다음엔 상제가 곧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신비주의 체험을 통해 인간 해방을 시작한 동학을 창도했다 그는 자신이 먼저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변하고, 이처럼 세상 변혁의 불을 당겼다
한국 근대에 사회 변혁의 횃불이 된 동학(천도교) 교조 수운 최제우(1824~1864)를 ‘신비주의적 종교’ 관점에서 본 책이 나왔다. <수운 최제우의 종교체험과 신비주의>(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이다. 저자는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다.
수운은 13세에 혼인하고 4년뒤 아버지를 여위고 3년상을 마친 후 장사와 의술, 복술 등 잡술을 배우거나 서당 훈장노릇을 하다가 32세에 천성산에 들어가 적멸굴에서 49일 수도를 하며 도를 닦기 시작했다. 이어 35세에 고향인 경주 구미산 용담정에서 수도하던중 1860년 4월 5일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하고 1861년 동학을 창도해 포교를 시작했고, 1863년 11월 20일 경주에서 체포돼 1864년 3월 10일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대구장대에서 41세의 나이로 참형을 당했다.
저자 성 교수는 수운에게 나타난 두번의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이렇게 분류한다. 먼저 경신년 상제와의 만나 대화를 나누는 첫번째 경험은 수운이 궁금한 것을 상제에게 물어 답을 받고, 이를 통해 상제의 권위를 점진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이원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보았다.
이와 달리 두번째 체험은 상제께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한말을 듣고, 이제껏 공중에서 들리던 상제의 말이 자신의 마음 속으로 울려나온 것을 본 ‘일원성’의 특징을 갖는다고 보았다.
성 교수는 “경신년 9월20일 오심즉여심의 핵심적인 심법을 받으면서 수운은 시공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신의 참된 본성이 상제임을 깨닫는 신비적인 체험에 이르게 되었다”면서 “천사문답이라는 상제와의 이원적인 관계가 상제와 수운의 근원적인 일원성을 확인하는 사건으로 완결돼 영적 구도 과정을 매듭지었다”고 해석했다.
성 교수는 동학이 동서양 종교를 포괄하는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나 동학혁명과 3.1운동을 주도하며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는 현실참여 종교가 된 이유도 이런 신비체험을 통해 인내천(사람이 곧 한울)과 사인여천(사람 대하기를 한울 대하듯 하라) 등을 확인한 때문으로 보았다.
» 왼쪽부터 동학을 창도한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 동햑혁명의 지도자인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3.1운동 민족지도자 대표였던 동학 3대 교수 의암 손병희 성사
“천사문답은 수운에게 유·불·선과 같은 동양 종교 전통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격적 지고 존재 개념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상제가 형이상학적인 보편 원리에 머무르지 않고, 수운 앞에 인격적 존재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동학의 사회 윤리성을 강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상제는 경신년 첫 만남에서부터 세상의 혼란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분명한 의도를 전한다. 이런 상제의 의도는 그 권위를 전적으로 수용한 수운에 의해 필연적으로 동학의 강력한 사회 참여적 윤리 규범으로 구체화될 수 밖에 없었다. 즉 일체의 존재를 공경하라는 상제의 뜻은 동학의 철저한 경천, 경인, 경물 사상으로 구현되었던 것이다.”
특히 동학의 평등주의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사회 윤리는 수운이 상제로부터 직접 전해 받은 가르침(계시)과 오심즉여심이라는 신비적 합일 체험(신비주의)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라는 것이다.
성 교수는 수운의 두번째 일원성 체험이 자타동일시와 인간중심을 낳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수운은 종교적이며 역설적인 중심을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찾아냄으로써 타자를 주변화하는 이분법적인 차별의 논리를 넘어서고자 했다. 지고 존재인 한울님이 모든 인간의 내면에 굳건하게 자리하므로 특정한 개인과 공동체가 타자를 소외시켜도 되는 배타적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제 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의 뜻을 현실속에서 있는 그대로 구현하는 인간과 공동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다. 수운이 전하고 싶었던 가르침은 ‘지금 이곳’에서 한울님과 인간, 그리고 일체의 생명체와 사물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 21자 시천주 주문수련을 외고 있는 천도교 교인들
수행을 마친 수운이 자신의 부인에게 절을 올리고, 노비 두 명을 면천해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았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파격이었고, 이는 당대에 만연하던 차별과 불의, 그리고 불평등과 폭력을 받아들이지 않겠따는 수운의 단호한 선언이었다는 것이다.
천도교의 기본 수행은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란 21자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주문은 ‘내 몸 안에 한울님의 영이 있고, 밖에 한울님의 기운이 있음을 깨달아 한울님의 덕에 합하기 위해 한울님과 하나가 되려는 기원문’이다.
저자는 “각자의 정성과 믿음을 강조하는 21자 주문 수행은 우리와 타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체득하고, 그 앎에 기초하여 지금 이곳의 현실을 바꾸라는 수운의 조언”이라며 이를 강조했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세우면, 자신과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한울님이 자연히 드러나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놀라운 앎이 자신과 이웃은 물론이거니와 이웃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