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죠”
10년 만에 한국 찾은 브루더호프 공동체 원마루·원아일린 부부
이범진 기자 poemgene@goscon.co.kr
» ⓒ복음과상황 오지은
영국 남동부 로버츠브릿지로부터 한국을 방문한 부부를 만났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일원으로 본지에 ‘브루더호프 통신’을 보내주었던 원마루(45) 씨와 원아일린(36) 씨. 지난 4월 이 땅에서의 소명을 다한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의 추모식과 그의 새 책 출간 기념회를 위해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 브루더호프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과 비폭력을 추구하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성원으로서 브루더호프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마루: 브루더호프는 1920년 독일에서 시작됐어요. 우리나라의 평양 대부흥운동처럼 독일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이 회개하며 여생을 예수의 길을 따르며 살겠다고 결심하는 청년운동 콘퍼런스가 있었어요. 그 운동에서의 만남으로 개신교 신학자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아내 에미, 그리고 에미의 자매인 엘자 폰 홀란더가 자네츠(Sannerz)라는 외진 시골에서 처음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산상수훈을 실천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방을 빌려서 시작한 것이죠. 얼마 안 되어 이들은 나치의 박해를 받아 추방당했고, 전쟁이 커지면서 1936년에 영국 코즈월드 지방의 농장을 구하며 새 출발을 합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다시 추방되어 남미 파라과이에 정착하게 되지요. 1960년대에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에 굶주린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파라과이에 와 일원이 되었어요. 너무 많이 오게 되니까, 미국에서 공동체를 다시 시작했죠. 현재는 4개 대륙에 스무 곳 넘는 공동체가 있고 구성원은 약 3천 명 정도 됩니다. 모든 구성원은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공동으로 모든 것을 나누며 살아요.
― 격동의 역사를 겪고 현재에 이른 거네요.
마루: 그렇습니다. 길고 복잡한 역사를 간추려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10년 넘게 살면서 경험했지만, 모르는 게 많아요. 그만큼 제가 부족하기에 공동체가 저를 받아주고 있는 거겠죠?(웃음)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브루더호프 홈페이지(bruderhof.com/ko)에서 더 객관적인 설명을 접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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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라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
마루: 미국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만났어요. 저는 펜실베이니아에 머물 때였고, 아일린은 뉴욕에 있을 때요. 한국 손님이 뉴욕에 가셨는데 그때 제가 통역을 하러 갔다가 만나게 되었죠.
아일린: 저는 뉴욕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공동체로 살기로 결정했고요.
― 프로필에 보니 자녀가 셋이라고….
아일린: 네. 10살, 6살, 5살. 모두 남자아이들이에요. 큰애가 이번에 한국에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일 때문에 온 것이라 함께 오지 못했어요. 지금 공동체에서 돌봐주고 있죠.
― 저도 사내아이 하나를 키우지만, 남자아이들 셋, 힘들지 않으세요?
아일린: 재밌어요. 물론 늘 평화롭지는 않지요.(웃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우리에게 선물이라는 거예요. 가족을 이루는 기쁨도 있고요.
마루: 크리스토프 할아버지께서 아이들 관련 조언을 자주 해주셨습니다. 내가 뭔가 거창하고 장황하게 아이들에 관해 말하면, 할아버지는 “지금 너희 아이들을 사랑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다잡아주셨어요.
아일린: 할아버지께서 “아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셨어요. 큰일을 하는 거죠.
이번에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신 이유가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책 출간 기념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마루: 크리스토프 할아버지는 많은 이들의 벗이며 형제였습니다. 지난 봄에 돌아가셨는데요. 사실 이번 모임이 추모식이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이 책 《희망이 보이는 자리》(비아토르)가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몰랐고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메시지를 한국에 계신 분들과 더 나누고 싶었어요.
―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의 책들을 많이 번역하셨잖아요. 마지막 책이기에 더 애착이 가겠어요.
마루: 할아버지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도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특별히 이 책에는 탈출구 없이 지친 영혼들이 어떻게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데요.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뿐 아니라 길 잃고 방황하는 세계의 모든 외로운 영혼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요. 저도 이 책 작업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네요.
― 그분의 이야기 중 꼭 함께 나누고픈 게 있다면요?
마루: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6일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진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우리 중 아무라도 자그마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뛰어나거나 위대해서가 아니라 자비로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도 서로 작은 역할을 하며 힘을 합치면, 하나님 나라의 진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나누고 싶었어요.
― 어제 추모식 사회 때 맨발로 오르셨어요. 발이 꽤 거칠게 보여서 일상이 궁금해지더라고요.
마루: 사는 게 다 똑같죠. 밥 먹고 일하고 차 마시고. 아이들 재우고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예배를 드리거나 누군가를 초대해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우리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을 알아가는 시간입니다. 그때가 재밌죠. 우리 공동체는 300명 정도 되는데 서로의 숟가락 젓가락 다 알아요.
―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마루: 가구도 만들고, 건축도 하고, 출판 일도 해요. 바빠요.
아일린: 저는 간호 일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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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린 씨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는데,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공동체에 남기로 결심한 이유가 뭔가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공동체를 떠나고 싶었어요. 대학에서 간호사 공부를 하던 때였는데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그때 공동체의 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까, 얼마나 어렵게 예수님 믿음을 붙잡고 싸우셨는지 아니까 저도 도전을 받았어요. 예수님 따라 살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 형제자매와 함께하는 삶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 새삼 깨닫게 되었고요.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인 것 같아서 남기로 했어요.
― 마루 씨는요?
10여 년 전부터 평생 살고 싶은 공동체를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그게 브루더호프는 사실 아니었어요. 한 번 방문한 후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죠. 내 계획과 이기심을 버려야 하니까 자신이 없더라고요. 지금도 자신 없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공동체 삶이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런데도 형제들과 뜨겁게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살며 배워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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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 해결에 관한 지혜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텐데요.
마루: 공동체 초기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자네츠에서 만든 첫 번째 약속이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형제자매에 대하여, 또 그들의 개인적인 성격에 대해 그들이 없는 곳에서 험담하거나 빗대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갈등이 있을 때 서로 솔직한 대화로 풀어야 앙금이 남지 않아요. 갈등을 풀어가는 근간은 마태복음 18장에 두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인터뷰를 통해 우리 공동체나 우리 두 사람의 삶이 주목받기보다, 지금 각자 자기 자리에 계신 분들의 소중함이 더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이 글은 <복음과 상황>(http://www.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