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인간관에 의하면, 영성은 우리 마음속 깊이 감추어져 있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다. 인간이 인간인 한 대면해야 하고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인간성 자체에 속한다. 표피적 자아 아래 숨겨진 심층적, 영적 참자아와의 대면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겹겹으로 단단히 포장된 사회적 자아가 갑자기 무장해제 되는 순간 우리는 영적 눈이 뜨이는 것을 경험한다. 선불교에서는 이런 개안의 경험을 돈오라 부른다. 선에만 돈오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유사한 영적 체험은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고, 종교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욕심이 만든 허상에서 벗어나 세계와 인간의 실상을 보게 되며, 자신의 참다운 모습과 가치를 발견한다. 소유보다 존재에 성취보다 살아 있음에 더 큰 행복을 느끼며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되어야 할'당위적 자기와 현실적으로 '실존하는'자기, 본래적 자기와 비본래적 자기, 본질과 실존 사이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한다. 부처와 예수, 공자나 노자 같은 성인은 이러한 괴리와 소외를 완전히 극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두터운 표피적 자아를 뚫고 영혼의 심층에 이르러 깊은 자아를 만나 새롭게 사는 진정한 사람들이다.
이 심층적 자아는 이런저런 우연적 특성을 지닌 표피적 자아, 끊임없이 경쟁하고 갈등하는 차별적 자아가 아니라 무차별적 자아, 순수한 자아, 보편적 자아, 초월적 자아다. 만인을 품을 수 있고 만물과 하나 되는 우주적 자아이며, 하느님과 하나 되는 신적 자아다.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거부하도록 추동하는 자아다. ... 이것이 세속적 휴머니즘과 구별되는 종교적 인간관이며, 영적 휴머니즘이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참인간'이라 부르며, 임제 선사가 '무위진인'이라 부르는 참사람이 사는 모습은 어떠할까? 욕심이 없으니 다툴 일이 없고, 소유하지 않으니 잃을 것이 없으며, 잃을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성과 속, 진과 속 어디에도 걸리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다. 성직자들처럼 유별난 복장을 하지 않고, 특별히 근엄하게 행동하거나 이상한 말투로 말하지도 않는다. 상식을 무시하지 않고, 권위로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으며, 떳떳하지만 목에 힘주는 일은 없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가리지 않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물처럼 부드럽고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되 슬픔과 기쁨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많은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모든 것을 누리지만 소유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버림으로 온 세상을 차지한 사람, 이런 사람이 영성을 사랑하는 자들이 흠모하는 참사람의 모습이다.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길희성 지음, 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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