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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누리, 무에서 유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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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울 인수동·강원 홍천 밝은누리
-전체1.jpg» 강원도 홍천 서석면 효제곡길에 있는 홍천밝은누리 식구들. 뒤 왼쪽건물이 학생들 기숙사인 생활관이고, 뒤쪽건물은 교실 겸 마을밥상. 윗쪽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최철호 교장


 설립자이자 학교교장 최철호 대표
 목사보다 형·오빠·삼촌으로 불려

 신학생으로 교회도 운동권도 실망 
 더디 가더라도 스스로 답 찾아

 마을밥상 저녁식사는 ‘장터 국밥집’
 엄마들도 아빠도, 아이도 신나는 수다

 서울에는 150명, 홍천엔 100명 한가족
 직장인도 있고 이곳이 일터인 사람도

 공부와 삶이 별개가 아니다
 집짓기 수업하며 생활관 뚝딱 짓고

 어린이집·초등 과정은 서울서
 중등-고등·대학 통합은 홍천

 정부 인가 ‘학력’ 매달리지 않고
 기성의 답습이나 권위주의 버려

 
서울 강북구 인수동 청수탕골목 안으로 100여미터를 들어가면 담장 허문 1,2층 단층 주택들 뒤로 인수봉과 도봉산의 진경산수가 펼쳐져 있다. 인수동 516번지 일대는 그야말로 ‘밝은누리’다. 밝은누리는 공동체이지만 울타리가 없다. 이 빌라 저 빌라, 이 집 저집에 흩어져 마을사람들과 공존하고있다. 밝은누리가 운영하는 도토리어린이집과 저학년초등학생 12명이 배우는 살구나무배움터와 고학년초등학생들 18명이 배우는 감나무배움터도 각기 떨어져 있다. 

 그 중심에 마을밥상이 있다. 저녁식사를 하는 ‘마을밥상’은 정겨운 시골장터 국밥집처럼 시끌벅적하다. 식사를 끝낸 꼬마들 셋은 한데 엉켜 뒹굴며 만화책을 읽는다.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엄마 곁 너댓명은 수다잔치다. 이 방에만 아이들이 수십명이다. ‘저출산민국’의 모습이 아니다.

 마을밥상에서 몇미터 떨어진 카페 ‘마주이야기’에선 밥상에서 못다한 수다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품앗이로 보니 어른에겐 자유시간이 많다. 윗층 마을서원과 공방에서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인수동밥상1.jpg-인수동밥상2.jpg-인수동밥상3.jpg-인수동밥상5.jpg
서울 인수동 마을밥상

-마주이야기1.jpg» 밝은누리가 인수동에서 운영하는 카페 마주이야기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밝은누리 식구들. 마을밥상과 마주이야기는 밝은누리 식구가 아닌 마을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다


 철학과 마음닦기도 실제적으로
 10년전 밝은누리에 들어와 살면서 강남의 직장 인터파크로 출퇴근하는 김현기(36)씨는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금방 풀리는 밥상으로 오는 퇴근길이 설렌다”고 했다. 아기를 낳아 덴마크대사관을 1년 휴직중인 심지연(35)씨는 “이곳에 오기 전에 ‘불금’이나 해외여행을 통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했는데, 그렇게 자본의 유도대로 소비행렬에 가담해도 해소되지않던 스트레스가 오아시스같은 밥상에서 대화하거나 퇴근후 함께 공부하면서 정화되었다”고 했다. 11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4명의 벗들과 마을밥상을 운영하는 고경환(37)씨는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사표를 낼 때 아버지로부터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한숨을 들으며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을텐데 내 결정을 지지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쉬면서 마을밥상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밝은누리엔 어른 아이 150여명이 함께 산다. 어른들은 다른곳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지만, 고씨처럼 밝은누리가 운영하는 밥상이나 마주이야기, 어린이집과 초등과정배움터를 일터로 삼은 이들도 적지않다.

 밝은누리는 강원도 홍천 서석면 효제곡길에도 있다. 도시-농촌 상생을 위해 10년전 터를 잡은 홍천밝은누리에도 100여명이 산다. 산기슭 기와집과 토담집들이 예스럽다. 홍천밝은누리는 생동중학교와 ‘고등·대학 통합과정’인 삼일학림이 중심이다. 

  학생들에게 학문과 삶은 별개가 아니다. 이곳에서 ‘하늘땅살이’이라고 부르는 농사도 교과의 일종이다. 학생들의 기숙사 격인 생활관에선 교사와 학생 8명이 집짓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1년간 수업하면서 생활관 한동을 뚝딱 지어낸다. 이 마을 모든 건축물들은 외부의 도움없이 이렇게 손수 지은 것들이다.

 핸드폰이나 텔레비전 속 공상을 벗어나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직접 가꾸는 것들과 함께 한다. 무엇하나 관념적이지 않다. 집짓기나 농사, 건강을 위한  태극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철학과 수신, 마음닦기 같은 고준한 과목들도 실제적이다. 어떤 책을 보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하니, 얻는 것도 실제적이다. 허울좋은 지식이나 관념을 쌓아가 지적교만만 커지는 공부는 이들의 방식이 아니다.

 중학교 교사로 육아휴직중 아이를 키우며 삼일학림에서 배우는 학생이기도 한 서진영(36)씨는 “저도 교사지만 편협성을 내려놓고 열린 눈으로 공부하면서 배움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면서 “이곳은 종교적 용어는 없지만 신앙을 삶과 별개로 두지않고 신앙을 삶에서 살아내려는 진정한 분투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삼일학림 2년차인 김다인(17)양은 서울에서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다 5학년 때 이곳에 왔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들처럼 핸드폰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화장도 하고 싶고 대중문화도 누리고 싶어 방황도 했다”면서 “그러나 세상적 욕망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 스스로 삼일학림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삼일학림 3년차인 최성은(18)양은 부모님이 밝은누리에서 사는 공동체원이 아니어서 초등학교를 일반학교를 나오고, 6년전 생동중학교에 입학에 이곳에서 살게 됐다. 그는 “일반학교에서는 학업과 학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뒷담화와 왕따로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면서 풀고 선생님들고 별 신경을 쓰지않고 서로 상처를 받는 그렇고 그런 관계가 지속됐었다”면서 “하지만 이곳에선 일반학교처럼 친구들을 ‘쌩깔수’도 없어서 수없이 얘기하고 풀고 서로 잘 지내며 남다른 관계를 만들게 된다”고 했다.

 삶과 유리되지않는 공부는 밝은누리 설립자이자 학교교장인 최철호(48) 대표의 정신이기도 하다. 그는 개신교에서도 보수적인 신학대의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그는 ‘문제 의식’으로가득한 젊은이였다. 그는 대학 때 신앙과 실천의 괴리, 사회정의와 현실의 괴리에 무기력한 교회에 실망해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목사가 되려고 간 신학생이 교회를 떠났으니 방황은 크고 깊었다. 그는 학교 밖 타대학이나 강연장으로 숱하게 청강을 하고, 온갖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문제들’을 파고 들었다. 그를 좌절케한 것은 부조리한 사회현실과 동떨어져 화석화한 교회나 대학만이 아니었다. 운동권 선배들조차 치열한 고뇌없이 문건학습에만 치중해 경직화하거나 교조화되었고, 자기 중심이 없었다. 그들이 비판하던 우익의 영웅주의와 군사문화를 답습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대학시절 사회의식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듯하던 선배들도 금새 변해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놀기1.jpg» 엄마들이 삼일학림 마음닦기 강의를 듣는 시간에 아이를 돌보는 아빠. 자기 아이 남의 아이 구분 없이 품앗이로 아이들을 돌보기에 부모들이 육아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울 때도 많다


-닭밥1.jpg» 코스모스를 따서 닭에게 주는 밝은누리 아이들
 

 -생동중아이들.jpg» 생동중학생들의 수업시간.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기보다는 늘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다

-수업1.jpg» 고등 대학 통합과정인 삼일학림에서 수신 강의를 하는 최철호 교장. 삼일학림에서 고교 대학생 정도 나이인 청소년학생은 12명이지만, 어른들도 배우고싶은 수업을 듣기에 전체 학생수는 70명에 이른다


-수레끌기.jpg» 생동중과 삼일학림은 삶과 공부가 분리되지않는다. 하늘땅살이(농사)와 집짓기도 수업이지만 실제 농사를 짓고, 집을 지어낸다

-집짓기1.jpg» 삼일학립의 집짓기 수업 현장. 1주일에 하루씩 집짓기 수업을 통해 이들은 기숙사격인 생활관 한동을 직접 뚝딱 짓는다


-태극권1.jpg» 태극권도 삼일학림의 수업이다. 최철호 교장이 가르친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함께 하기도 한다

신문사 지국이 그만의 수도원
그는 더디가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았다. 갈등과 방황이 깊어져 몸이 상할 정도가 되면 그는 한겨레신문 지국에 들어가 숙식을 하며 신문배달로 수도를 대신했다. 그는 청년시절 3년을 지낸 그곳이 ‘나의 수도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수도를 통해 청년의 신념조차 무력화시켜버리는 쓰나미같은 ‘돈의 힘과 기성문화의 위력’을 직시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혼자서 이겨내기 어려운 쓰나미를 어깨 걸고 함께 이겨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함께 공부하던 벗들과 1991년 대학 4학년 때 신학대 근처에 허름한 방을 얻어 밝은누리를 시작했다. 함께 산지 7~8년이 돼 벗들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시작되자 청년시절 혁명의 마음은 혼수와 부동산 등 기성세대의 문화에 젖어 추풍낙엽이 되었다. 

그는 기성세대와 변절자를 비판만 하면서 결국 똑같이 닮아가고마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군목(사)으로 1998년 군대에 가보니, 군종병들도 구타관행에 젖어있었다. 그가 ‘앞으로 구타하면 영창에 보내버리겠다’고 하자 한 친구가 와서 진솔하게 충고했다. 이곳은 군대지 교회가 아니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단 한곳이라도 대안과 성과와 사례를 만들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구타를 없애는 한소대를 만들어냈다. 일단 구체적 사례가 등장하자 역사가 변하기 시작했다.

 밝은누리도 기성의 답습이 아니라 ‘무에서 유의 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곳이다. 젊은시절 기존 목사들의 권위주의를 욕하다 결국 이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을 답습하지 않는 것도 그답다. 이 마을에서 그는 목사가 아니라 형이나 오빠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를 다른 어른들 부르는 것과 똑같이 ‘철호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는 “우리 안의 권력, 내적 파시즘 앞에 정직해져야 하고, 이를 집요하게 파고 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회 목회를 하는 그의 동창들 대부분은 교인들과 정직한 속애기를 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는 공동체식구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서 언제든 편하게 속얘기를 주고받는다. 그는 “이곳에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다”며 자신도 “그들에게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아기보기1.jpg» 홍천밝은누리 밥상을 물리고 나면 이렇게 삼삼오오 아기들을 보며 웃음꽃을 피운다


-풋살.jpg» 금요일 저녁이면 밝은누리 여자들 20여명이 서석면 체육경기장에 가서 풋살을 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흙손.jpg» 밝은누리 어른들은 외부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일터를 만들어낸다. 공동체 안 학교, 밥상, 카페도 공동체가 만들어낸 일터다. 밝은누리가 만든 건축팀 흙손 멤버 5명이서 생활관을 짓고 있다. 밝은누리는 모든 집을 자체 일손으로 짓는다


비판만 하며 결국 닮아가는 굴레
 그는 그런 무작정 앞으로 전진하는게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성찰은 필수다. 공동체원들이 철학 인문학 공부를 했다고 지적 교만에 빠지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모든 것을 중지했다. 지난 1999년에도 침묵의 시간을 가졌고, 2007~2008년에도 한달 한번의 연합예배외엔 모든 것을 중지하고, 성찰을 위해 침묵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밝은누리는 그리스도교공동체지만, 교회건물이 따로 없다. 열명가량씩이 기초공동체여서 이들은 주일이면 함께 모여 성경 한구절을 읽은 뒤 삶과 신앙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나눈다. 친밀도는 그지없다. 공동예배는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서 각각 한달에 한번씩만 드린다. 이 때도 최 목사 혼자만 아니라 목회위원의 추천을 받은 두명이 추가로 함께 말씀을 나눈다.

 생동중과 삼일학림은 정부 인가 학교가 아니다. 이곳 학생들이 정부 인가를 거부한 것도 ‘학력’이란 허위의식에 매달려 원치도 않는 관념과 지식들을 습득하느라 삶의 에너지를 다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삼일학림에선 어른 학생들도 많다. 교사들도 자신이 필요한 과목은 배운다.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학교다. 어른학생들은 아기를 옆에 보자기에 누여놓고 강의를 듣기도 한다. 수업에 방해가 될법한 서너살 아이들은 품앗이육아로 이웃에 맡긴다. 이들은 공동체를 한몸살이라고 부르는데, 네 자식 내 자식 상관없이 서로 이렇게 돌봐준다.

-태껸1.jpg» 밝은누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청량분교를 살려냈다. 청량분교 부설유치원과 학생들 절반 이상이 밝은누리 식구들이다. 통상 나이든 은퇴자들이 유입되는데 서석면엔 밝은누리로 인해 젊은 20~40대가 대거 유입되자 홍천군도 놀라워하고 있다. 밝은누리는 매주 토요일 청량분교 아이들에게 태껸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 홍반장같은 고영준씨가 토요일에 농사일에 바빠 방치되는 (밝은누리 밖)동네 아이들을 모아 함께 놀아주기도 한다.

 밝은누리에선 아빠가 육아를 돕는다고 하지않는다. 육아는 부모가 함께 한다. 또 온마을이 함께 한다. 모두가 이모 삼촌이 되어준다. 부모뿐 아니라 이모, 삼촌, 언니, 오빠, 형, 친구가 수십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날 사이가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밖에서는 꺼리는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오히려 독박육아에서 자유롭다. 금요일 저녁엔 전광등이 설치된 서석면체육경기장에 가서 20여명이 서너시간씩 운동장을 뛰며 풋살을 한다. 생리가 시작되면서 억압된 몸을 마음껏 풀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밝은누리 여성들의 풋살경기엔 에너지가 넘친다.

 17명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작시를 읊는 생동중학생들의 수업시간에 들어가보았다. 아이들은 자작시에 곡을 만들어붙여 노래까지 만들기도 한다. 승민이의 차례다.
 ‘해적들은 자유롭지/늪같은 공부에 발을 디뎌놓지도 않잖아/머리공부를 하기 보다는 몸으로 배우며 살고/몇 번 겪어야 학습하지/해적들은 자유롭지/나침반에 의존해서/가고픈 곳 찾아가며 살잖아’
 거센 바다를 스스로 헤치고 나갈 생동감 넘치는 해적들이 이렇게 커가고 있다. 

 밝은누리(서울·홍천)/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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