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보성 대원사 현장 스님이 일행들과 함께 내 산거를 찾았다. 스님은 일지암을 좋아하여 벗들과 가끔 들르는데 매번 나와 길이 어긋난다. 며칠 세간에 일이 없어 암자에서 독서에 전념하고 있던차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아하! 이번에는 법인 스님이 현장에 있으니 현장 스님을 만나게 되네요”.
재기 넘치는 현장 스님은 늘 밝고 유쾌하다. 스님은 우리 절집에서 유머재조기로 통한다. 그날도 차담을 하면서 법명으로 시작하는 에피소드를 펼친다. 한번은 법정 스님이 이른 아침 지인에게 전화를 했는데 부인이 받았다. “저, 법정인데요, 00 선생님 계십니까?”. “여보! 전화 받으세요. 당신 무슨 일 있으세요. 아침부터 법원에서 당신을 찾네요”. 이밖에 절집에서 법명에 얽힌 웃음거리는 많다. 탤런트 최불암 씨가 대원사를 방문했다. 현장 스님 왈 “ ‘한국인의 밥상 ’ 끝나면 내가 암자 지어줄터이니 와서 사세요 암자의 이름은 최불암”. 암도 스님은 누가 “암도(아무도) 없으십니까?”라고 물으면, “암도 여기 있소”라고 응대한다. 도범 스님은 절에 사니 자기는 ‘절도범’이라고 소개한다. 아마 십대들이 들으면 아재 개그라고 할지도 모른다.
과장과 허세는 입담의 또 다른 맛이다. 조선시대 여러 절의 스님들이 모여 자기 절이 얼마나 크고 대중이 많은지를 겨루었다. 먼저 속리산 법주사 스님의 자기 절 자랑, “우리 절 대웅전의 문턱은 큼직한 네모의 무쇠덩어리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추나무 같은 단단한 통나무로 들이 대봤자 사흘이 못가서 다 달아 없어진다구요. 그래서 무쇠덩어리로 바꿨는데 하루에 쇠 가루가 서 말이 쏟아집니다”. 이에 맞서 가야산 해인사 스님이 응수한다.“우리절 해우소가 아마 천지간에 제일 큰 해우소일꺼요. 한번은 저녁에 변을 봤는데 이틋날 아침에 겨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디다”. 마지막으로 지리산 화엄사 스님이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 “우리절은 매년 동지날 팥죽을 쑤는데 솟이 너무 커서 나룻배를 띄어 노를 저어 가면서 팥죽을 휘젖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떠난 배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또 수행의 경지를 가늠하는 찰나간의 진검승부도 있다. 전해오는 말인데, 사명대사가 서산대사의 도력이 높다 하여 방문했다. 방을 나오려는 서산에게 사명이 마당에서 새 한 마리를 잡고 묻는다. “큰스님! 제가 이 새를 놓아 주겠습니까? 아니면 손에 잡고 있겠습니까?” 이에 서산이 즉시 한발을 문턱 밖으로 내놓고 하는 말,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겠느냐?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침묵하거나 진리에 대해 토론하라고 했다. 잡담을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엄숙하게만 살겠는가? 가끔은 지대방처럼 삶에도 느슨하고 여유있는 허술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적절한 유머로 가벼워지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날 현장 스님은 작곡가 한보리의 시를 낭송하며 찻자리를 마감했다. “ 바람이 숲에 깃들어/솔향 가득 머금고 돌아가듯이/그대 산에 들어 푸르러지는가/구름이 산에 들어서/비를 뿌리고 가듯이/그대 근심 두고 가소/깃털처럼 가벼워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