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식능력, 심미안, 소양, 감각 등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제4 자본
창의자본 또는 매력자본으로 불려
자유직업인에게 꼭 필요한 자본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니 확실히 계절이 변한 것같습니다. 콘크리트 숲에 갇혀 있던 도시인들을 유혹하는, 너무나 매혹적인 바람입니다. 사무실 밖 먼 하늘을 바라보는 횟수도 크게 늘었습니다. 요즘처럼 신비한 하늘색이 계속되는 날에는 대책없는 탈출 욕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1인 기업을 꿈꾸는 사람들, 글과 강연을 하며 ‘스토리 유목민’으로 살고 싶다는 직장인들로부터 부쩍 자문 요청이 많아졌습니다. 멋진 로망이지만, 일과 수입 없는 독립과 자유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이기에 저는 우선 이 질문부터 던집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자본이 있나요? 혹시 제4의 자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당황하거나 반발합니다.
자본이 있으면 큰 사업가가 되지 왜 굳이 프리랜서(자유직업인)가 되겠느냐, 조직과 거대 자본을 피해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데 웬 자본이냐고 항변합니다. 또 자본 없이 오직 맨주먹으로 시작해 성공한 사람들도 많은데 어찌 그렇게 말하느냐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자본이라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인듯싶습니다.
하지만 독립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그 열정이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독립했다가 차가운 현실 앞에 머리 숙이고 다시 조직으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목격합니다. 물론 사업이나 독립에는 운이 따르지만, 그것은 따로 논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독립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본 또는 자산인데, 다만 제가 생각하는 자본의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자본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토지, 건물 같은 부동산 자본입니다. 부모에게 유산으로 받은 땅이 있거나 건물이 있을 경우, 그 부동산을 활용한 자영업을 하면 됩니다. 취향을 살려 커피집, 선물가게, 예술 공방을 여는 경우입니다. 자기 건물이니 임대료가 없고 소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금융자본과 동산(옮길 수 있는 재산)입니다. 문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 자동차나 중기계, 은행 예금, 증권이나 그림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에 특허, 영업권, 자격증 같은 것들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잘 아는 자본입니다.
독립을 선언하는 직장인들은 대부분 첫번째와 두번째 자본이 별로 없습니다. 특별히 유산을 받지 않은 다음에야 대개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무형자본(기능, 저작권처럼 형태가 없는 자본)에 특별한 관심을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선 사회 자본입니다. 소위 인맥이라 하는 네트워크의 힘이지요. 특정 업종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사회자본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관시’(关系)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중국에서는 이 자본을 무척 중시합니다. 한국에서도 마케팅, 홍보, 영업, 정보를 다루는 직종이 더욱 그렇습니다. 1인 출판사를 꿈꾸는 이들도 예외는아닙니다.
조직 생활의 인간관계에 지쳐 독립을 선언했지만, 프리랜서 생활은 혼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해야 하기에 오히려 세번째자본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유명작가, 인기 작곡가, 많은 팬을 거느린 웹툰작가 등 인기 창작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수요가 몰리지만 그들은 지극히 예외적 존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회적 자본에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맥주의 거품처럼 지나치면 곤란합니다. 허세를 조심해야 합니다. 화려한 인맥을 과시하거나 주고받은 명함의 숫자를 자랑하고, 동창회, 사회인 모임에서 얼마나 많은 감투를 썼는지 떠벌리고 다니는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함은 휘발성이너무도 강하다는 그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직장 문을 나오는 즉시 명함의 효력 또한 끝납니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면이기도 합니다. 사회자본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사회독(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이라 하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네번째는 ‘문화자본’ ‘매력자본’이라 말하는 무형자산입니다. 문화자본은 프랑스의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것을 원용한 개념인데, 특히 학술,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본입니다. 특정한 학위, 전공, 외국어 능력 같은 것들입니다. 감식능력, 심미안, 소양, 감각, 창조적인 아이디어 같은 비정형화된 것들도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의자본’이라 할수도 있습니다.
매력자본은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였던 캐서린 하킴이 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논문 <매력 자본>(Erotic Capital)을 바탕으로 펴낸 책 제목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외모, 건강하고 매력적인 몸, 뛰어난 사교술, 유머감각, 패션 스타일 등을 말합니다. 방송, 강연 등 대중을 상대로 하는프리랜서에게 더 중요시되는 자본입니다.
실력 못지않게 매력이 중시되는 세상이기때문입니다. 글과 말에도 남다른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스타일,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지식, 문화, 예술 분야에 종사하길 원하는 프리랜서들에게는 특히 이 네번째 자본이 중요합니다. 이 자본은 계량화하고 객관화하기 힘들다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주관적 가치와 시장이 평가하는 객관적 가치의 차이 때문입니다.
많은 프리랜서들이 겪는 혼란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독립을 원한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제4의 자본을 갖고 있겠지요, 물론?